책방을 전전하며 글방을 열고 있습니다.
회사 퇴근 후, 동네 책방을 전전하며 글방을 열고 있다. 요일마다 출근하는 장소가 다른데 그것도 나름의 재미다. 온라인 글방을 여는 월요일에는 집으로, 수요일은 1시간 거리의 칠곡으로, 금요일은 회사 근처로 향한다. 수요일은 대중교통을 가장 오래 타기 때문에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넣어 다닌다. 특히, 지상철은 감성으로 책 읽는 나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다. 창문을 뚫고 쏟아지는 노을빛이 페이지를 비출 때면, 누가 날 찍어줬으면 싶다. 금요일은 회사로부터 15분 걸으면 도착하는 곳에 있다. 지나가는 길에는 초등학교와 편의점이 있다. 초등학생들이 단골인 편의점의 야외테이블에는 불닭 볶음면이 마를 날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초등학생들은 불닭 볶음면에 고개를 내어주고 면을 후루룩 들이킨다. 가끔은 핫바나 치즈 같은 간식과 조합해서 먹는데 멀리서 봐도 먹음직스러워서 레시피가 뭐냐고 물어보고 싶다.
출근길만큼이나 책방 사장님들도 각양각색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각양각색으로 다정하다. 사장님들과 한배 타게 된 순간을 떠올리면, 내 팔자에 귀인이 없다는 점집에 침을 뱉고 싶다. 퉤. 지난 1년 동안은 ‘귀인 열전’이었다. 귀인이 다른 귀인을 불러오고, 그 귀인이 또 다른 귀인을 불러왔다. 그 시작에는 칠곡 책방인 ‘치우친 취향’이 있다.
회사 동료였던 예림 씨가 퇴사하고 책방을 차린 곳이 바로 ‘치우친 취향’이다. 나였다면 상상 못 할 전개를 예림 씨는 착착 진행시켰다. 사장님이 되려면 저 정도의 추진력은 기본이구나 싶다. 간간이 오가던 연락에 두께감을 더하게 된 건, 예림 씨의 글방 제안이었다. 물론 내가 치근덕거리긴 했다. 치우친 취향의 4주년 파티에 다녀온 후기도 올리고, 요즘 혼자서 글을 끄적이고 있다고 어필도 했다. 제안에 넙죽 좋다고 질렀지만, 일주일 동안 자지도 못했다.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따져봤기 때문이다. 예림 씨는 내 하소연을 듣더니, 볼펜을 책상에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움츠러드는 내 어깨를 양쪽 빳빳하게 세웠다.
“지은심. 나한테 이 책방 정말 소중한 공간이에요. 그래서 아무에게나 일 같이하자고 안 해요. 지은심이 쓴 글 다 읽고 제안한 거예요. 그러니깐 어깨 좀 펴요.”
글쓰기는 읽어주는 이가 없을 때, 몹시 외롭다. 외롭다고 말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해서 끙끙 앓는다. 마음이 휑한 건, 책방도 마찬가지다. 치우친 취향 4주년 파티 때, 단골손님이 예림 씨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며 말했다.
“블로그에는 손님도 없고, 외롭다고 해서 왔더니 인기가 많네요.”
예림 씨의 블로그에서 하소연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근데, 서글프지 않고 웃기다. 손님 한 명과 책방이 떠나가도록 수다를 떨었다든지, 모임을 열었는데 참가자가 1명이라 오랜만에 모집 실패의 냄새를 맡았다든지, 웃겨서 슬픔이 말랑해진다. 예림 씨의 블로그를 읽다 보면 외로움을 겉으로 꺼내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아간다.
얼마 전, 예림 씨가 쓰는 동료가 되었다. 첫 책을 출간한 것이다. 사인도 받을 겸사겸사 같이 밥을 먹었다. 쓰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출판까지 했다니 그녀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림 씨가 전해준 출판 과정은 그야말로 자갈밭이었다.
“표지 디자인한 친구가 책 팔면 얼마나 남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말해줬더니, 책을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묻는 것에요.”
나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책이 팔리지 않아도, 지속하는 힘은 어디서 얻는 것인지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다.
“근데 나도 몰라요. ”
허무한 대답에 배꼽 잡고 웃었다. 남들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웃음 포인트가 분명히 있었다. 글쓰기는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꿋꿋하게 쓴다. 세상에 돈이 안 되면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깐. 오랜 수다 끝에 사인받았다. 예림 씨가 써준 문장을 집에 오는 내내 곱씹었다.
‘앞으로도 계속 저의 글쓰기 동료가 되어주세요.’
글쓰기 동료로 오래도록 남는 방법은 단 하나다. 또 다른 글쓰기 동료를 만들면 된다. 쓰고 읽고 합평하고 때로는 외롭다고 하소연하는 것만으로 연대가 된다. 김하나 작가의 <힘 빼기 기술>에서 해외여행 중에 현지인에게 받은 친절에 관해 쓴 문장이 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빚 따위는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거니깐.’
내 글쓰기 인생에 공간과 시간을 내어준 귀인들이 많다. 그들에 대한 보답으로 더 많은 글쓰기 동료를 영입하고 싶다.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 헐렁해도 좋다. 가끔은 빡빡한 사랑을 가진 나에게 헐렁한 사랑을 가진 동료들이 묻는다. 글을 왜 써야 하는지. 남김없이 좋아한다고 모든 걸 알 순 없다. 오히려 답을 아는 건, 그들이다.
"작가님. 글 쓰다 보니, 어디에 매료되어 있는지 알 것 같아요."
"글 쓸 때에는 괴롭고 귀찮거든요. 근데 막상 모임에 올 때에는 쓴 글이 든든해요."
이 이야기는 빡빡한 사랑을 가진 나와 헐렁한 사랑을 가진 동료들이 어떻게 글쓰기로 일상을 유영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혼자 쓰는 이들에게 여기에 똑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주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