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절대적인 갈등은 없는지도 모른다.
앳된 얼굴의 한 동료가 스마트폰의 경각심을 알려주는 글을 써왔다. 스마트폰으로 휑해진 가방 속을 통해서 우리가 낭만과 여유가 없어진 게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산다는 것과 낭만을 잃고 산다는 것에 대한 차이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글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 그립긴 해도, 지금 낭만을 잃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설명만으로는 모두를 설득할 수 없기에 주장이 있는 글은 어렵다. 이걸 어떻게 피드백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다른 동료의 합평을 들었다. 백발의 동료가 합평할 차례였다.
“책 좀 읽으세요.”
순간, 분위기가 턱 막혔다. 헉하며 짧게 놀란 소리도 들렸다. 나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글쓴이와 백발의 동료를 번갈아 보았다. 글쓴이의 기분이 상하진 않았을지 걱정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내가 강조한 규칙이 와장창 깨졌기 때문이었다. 글에 대한 평가는 무엇이든 가능해도,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절대 하지 않을 것. 사실, 백발의 동료는 이전에도 규칙 파괴자였다.
글쓴이는 합평이 진행되는 동안, 변명할 수 없다. 책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작가가 찾아와서 변명해주지 않듯, 글쓴이는 글에서 전하려는 바를 다 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백발의 동료는 글에 자기 생각을 다 못 담았는지 합평마다 중간에 끼어들어 변명을 남겼다. 글과 작가를 분리해서 인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글 속의 이야기가 작가의 100% 실화라고 생각하면 서로가 힘들다. 기억은 그날의 기분과 상황, 환경에 따라서 달라진다. 당시에는 심각하기만 했던 일이 지나고 보면 별일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작가와 글을 따로 분리하면 평가를 하는 사람도 편안한 객관성을 가질 수 있고, 평가를 받는 사람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불안 증세를 경쾌하게 고백하는 다른 글에 백발의 동료는 글쓴이를 빤히 뚫어지게 보며 합평했다.
“살아보니, 불안은 없어지지 않더라. 불안을 없애겠다는 마음을 비우면 편해.”
드라마 속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실제 일상에서 “그렇게 살지 마!” 같은 욕을 먹는 것과 같다. 드라마처럼 글에 몰입해서 읽다 보면, 충분히 겹쳐 보이기 마련이다. 백발의 동료는 글쓴이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껏 위로하고 싶어 했다. 이 정도의 규칙 파괴는 글방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하지만, 대뜸 책 좀 읽으라는 이번 합평은 명백히 무례하고 선을 넘었다. 분위기가 꺾인 걸 느꼈는지 백발의 동료도 흠칫했다. 다들 진행자인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서서 무슨 말이라도 중재해주길 바랐다. 글방을 수차례 운영하며 제지한 경험은 전무한데다 나보다 연륜이 훨씬 많은 노인을 어떤 말로 중재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평소에 나는 노인들로부터 잔소리를 듣기만 했지, 그 반대의 입장은 되어본 적이 없다. 당황을 열심히 감추고 숨을 고르며 할 말을 생각했다. 그 짧은 틈에도 백발의 동료는 자신이 뱉은 합평을 도로 담기 위해 여러 말을 덧붙였다.
“그게 아니고. 시대에 맞게 사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깐 했던 말이었어요. 좀 더 넓은 글을 썼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읽으라고 말한 건데 미안합니다. 나이가 많으면 가끔 이렇게 무턱대고 말하고 그래요.”
나이는 구겨진 상대방의 마음을 펼 만큼의 큰 무기가 되지 못한다.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글쓴이는 고개를 푹 숙였고, 적막이 돌았다. 중재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한 동료가 나를 대신해 적막을 깨주었다.
“음. 독서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요? 저희는 아직 땡땡 님만큼 긴 세월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쌓인 경험치가 달라요. 그 차이에서 나오는 시선인 것 같아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혜안이었다. 책이 세상에 모든 일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떤 일은 경험해야지만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산증인이 바로 나다. 평소 다독가라고 자부한 나마저도 이런 상황에서 적당한 한 마디를 찾지 못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세상에는 경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갈등이 많을지도 모른다. 육체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 <나, 블루칼라 여성>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여자라서 못한다는 이야기에는 여자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각자 어떤 경험을 가졌는지, 경험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졌는지를 알려고 하면,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동료의 혜안에 백발의 동료는 민망했는지 글쓴이에게 거듭 사과했다. 다음 글로 넘어갈 때까지 그녀의 사과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른 동료의 긍정적인 의견마다 글쓴이를 향해 양손으로 엄지 척을 들어주며 적극적인 공감을 표했다. 백발의 동료는 그날 이후에도 열심히 규칙을 파괴했다. 글이 아닌 작가에 대한 평을 남기고, 열심히 끼어들고, 자주 미안해했다. 덕분에 나도 모임이 거듭할수록 할 말의 경험치가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