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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Jun 11. 2024

경미한 사고, 무거운 결과

자전거로 오른 출근길,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라리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는 직장인의 꿈이 이뤄진 적이 있다. 주유소에서 나오는 승용차가 자전거로 지나가는 나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아버렸다. 꿈이 이뤄진다는 건, 아프고도 복잡한 일이었다.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린 채 소리 내어 울었다. 운전자도 상황파악이 끝났는지 다급하게 나와 상태를 물었다. 울면서 답하려니 발라드를 절절하게 불렀을 때의 바이브레이션이 절로 나왔다. 몸을 겨우 일으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팔과 다리를 휘적였다. 다행히, 아픈 건 놀란 마음밖에 없었다. 한숨을 돌리는데 경찰차와 구급대가 5대가 와있었다. 애플워치가 넘어짐을 자동 인식해 신고했다. 구급차까지 잠깐 걸으면서도 아픈 구석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펑펑 울었는데 멀쩡하면 머쓱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운전자가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어색하게 절뚝거렸다.      


우리 사회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건, 한몫 건진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아빠가 트럭을 주차하던 날, 뒤에 서 있던 오토바이에 콩 부딪혔다. 오토바이 수리비만 청구하던 운전자는 하루 뒤, 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 왔다. 아빠는 수리비의 3배가 넘는 합의금을 줘야 했다. 구급차에 누워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금을 이체한 아빠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베테랑 구급대원은 응급실에 도착하자 말했다.      


“걸어가실 수 있죠? 내려서 응급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응급실에 걸어 들어가는데 절었던 발이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헷갈렸다. 검사결과는 이상 없었다. 직장인의 얼굴을 한 의사는 교통사고는 며칠 뒤에 통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지켜보자고 했다. 진료는 3분 카레보다 빨리 끝났다. 역시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드라마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운전자였다.      


“제가 지나가는 걸 못 봤어요. 죄송합니다.”      


사실, 사과가 와닿지는 않았다. 사고가 난 직후에 괜찮냐는 말은 해도 미안하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괜찮냐는 말은 지나가는 동네 사람이 해도 무관한 말이다. 이해는 한다. 사과하면 과실을 인정하는 것과 똑같다고 보험사에서 들었을 것이다. 보험사가 시킨 듯한 늦은 사과에 괜찮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뒤늦게 들은 남자친구가 출근하다 말고 달려왔다. 처음으로 달려온 곳이 수술 대기실이 아니라 물리치료실이라 안도했다. 짐을 챙겨 나가려는데 남자친구가 입원하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지금 입원하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돈이 달라진다 했다. 2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아빠가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수백만 원을 뜯겼다는 소식에 발끈했던 내가 떠올랐다.      


“미친놈한테 제대로 걸렸네. 그런 새끼들 때문에 보험 사기가 판을 치는 거야.”      


또 한가지는 밀린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바닥나버린 계좌 잔액이었다. 남자친구의 물음은 신의 물음으로 다가왔다. ‘미친놈이 될 것인가. 가난하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병원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고민했다.      

“차라리 마음씨 좋은 가난뱅이로 살겠습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병원을 뛰쳐나왔다. 신중한 선택을 남자친구가 칭찬해주자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며칠 뒤, 평소 소통이 없던 삼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운전자의 보험사가 삼촌이 다니고 있는 곳이었다. 삼촌은 걱정하지 말라며, 합의금을 많이 받아주겠다고 했다. 차마,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건,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병가가 따로 없어, 야간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녀야 했다. 진단서를 떼기 위해서는 초기 병원을 꼭 방문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눈치 보며 반차를 써야 했다. 운전자는 편하게 보험사에 맡기면 그만이지만, 당한 사람은 이렇게 번잡스럽다니. 마음이 삐뚤어졌다. 삼촌은 이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치라며 합의금을 보내주었다. 씁쓸했다. 어떻게 살 것이냐는 신의 물음에 미친 가난뱅이로 살겠다는 답을 한 것 같았다. 


그나마 날 위로해주는 건, 회사 동료들이었다. 직장에서 내 교통사고는 이슈였다. 어떤 팀장님은 내 합의금 이야기를 듣더니, 고작 그것밖에 못 받았냐며 지인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늘어놓았다.      


“내 친구는 교통사고 당하자마자 병원에 드러누웠는데 보험사에서 음료수 들고 찾아왔었어. 합의해달라고 조르더라니깐. 그래서 걔 오백만 원 넘게 받았잖아.”     


운전면허증은 있지만,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도로는 인간성을 잃은 무법지대와 같다. 마음보다 돈이 앞선다. 과실을 따지는 사이, 우리는 최소한의 인사말도 의도적으로 하지 않게 된다. 모든 일에는 감정과 이성이 동시에 공존했을 때, 순조롭다. 도로는 보험사가 개입된 후로 완전한 이성만 남겨졌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항상 긴장하고 불편한 상태로 운전하게 된다. 누군가 날 좀 쳐주었으면 좋겠고, 내 차를 긁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미한 사고는 결과도 경미해야 한다. “미안하다.” “괜찮다.” 정도의 인사만 가능해도 영웅담 같은 괴물담은 조금은 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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