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심 Jul 04. 2024

나의 20대, 나의 아저씨

애증의 당

29살의 12월 31일. 20대의 끝자락을 방구석에서 혼자 보냈다. 속절없이 끝나가는 20대에게 작별인사는 꼭 해주고 싶은 마음에 특별한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넷플릭스의 강에서 리모컨으로 몇 번이나 노를 저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콘텐츠를 고르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특히나, 20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콘텐츠라 더욱 신중했다. 결국은 돌고 돌아, 내가 신청했던 목록으로 왔다. 시청 습관이 하나 있다면 마음에 드는 드라마는 대사를 외울 만큼 다시 보는 것이다. 한번은 1화부터 봤다면, 다른 한번은 마지막화부터 거꾸러 내려오면서 보는 것이 루틴이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안정감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청 목록을 쭉 넘기다가 드라마 하나에서 멈칫했다. <나의 아저씨>였다.      


드라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울적하나 등장인물들의 은근한 귀여움이 중독적이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아저씨들의 귀여움이란 강력했다. 평상시 가지고 있던 아저씨의 부정적인 어감을 정화사킨 드라마였다. 동네에서 정년퇴직하고 다시 백수가 된 아저씨들끼리 뭉치는 장면들을 볼 때면 가까운 아빠도 생각났다가 손님이 타면 기다린 듯이 말 거는 택시 기사님도 떠올렸다가 굳은 몸으로 저녁 요가에 참여하는 아저씨도 생각나곤 했다. 다들 시큰둥한 분위기가 기본값이지만 친구들과 있으면 저렇게 귀여운 구석을 보이곤 하는구나.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인 박동훈은 달랐다. 형보다도 더 형다운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었다. 삼형제 중에 둘째이자 유일한 회사원인 동훈은 동네 아저씨들의 자랑이었다. 그 자랑의 부담이 동훈을 더욱 차분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기대가 동훈의 내면을 더 봉쇄했다. 무채색 동훈을 배우 이선균이 잘 소화했다. 너무 울적하지도 않게 너무 듬직하지도 않게 적당한 무채색 아저씨였다. 만약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그저 울적한 인물이 되었으리라.      


나의 다시보기 리스트 중에서 배우 이선균이 등장하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초여름을 온전히 느끼고 싶을 때면 <커피프린스>를 꺼내봤다. <커피프린스>는 이선균이 맡았던 서브 커플이 메인 커플만큼 인기가 있었다. 이선균이 연기했던 최한성과 한유주가 농촌 트럭에서 밀짚 모자 아래로 뽀뽀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잡고 있던 배게를 던질 만큼 달달하다. 최한성이 한유주를 잡을 때,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이선균의 목소리가 더욱 애절했다. 최한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찢어질 만큼 애타게 부르는 이름이 애석하게만 느껴졌다. ‘최한성이 저렇게 울면서 빌잖아! 한유주!! 이제 그만 용서해줘!!!’     

다시 보기가 질리지 않는 이유는 깨끗한 몰입 때문이다. 오로지 작품 속 내용만 집중하는 것이다. 배우가 잘생겼거나 출연료가 얼마였거나 이런 건, 드라마를 볼 때 중요하지 않다. 탁월한 연기로 그 외 요소들이 포커싱 날아가고 오로지 배역에게만 몰입하게 되는 작품만 선택한다. 이제는 <나의 아저씨>도 <커피프린스>도 깨끗한 몰입이 어렵다. 배우 이선균의 부재 때문이다. 깨끗한 몰입은 사실 배우의 전무한 노이즈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선균의 여파는 나에게도 직격탄을 주었다. SNS에서 쉴 틈도 없이 퍼다 나르고 사실 확인조차도 되지 않은 배우의 사생활에 동요했다. 기사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제목만 보고 바로 프레임이 씌워버리는 내가 싫어질 지경이었다. 연예인의 일이라면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자부했는데 똑같은 것이다.      


자주 듣는 팟캐스트에서 이런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사람과 작품을 따로 보는 게 맞을까?> 홍상수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으나, 불륜으로 뭇매를 맞았다. DJ는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 영화계가 더 부흥하겠지만 사람인지라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작품을 보면 불륜을 응원하는 기분이 들어 죄책감마저 든다는 것이다. 공감되고 생각이 많아지는 주제였다. 이선균의 경우에는 더 복잡했다. SNS에 동요했다는 죄책감과 쏟아지는 말들 중 어느 부분이 사실이라면 찝찝한 마음이 뒤섞여 복잡미묘했다. 

     

다시 12월 31일. <나의 아저씨> 속 박동훈과 이지안을 봤다. 아니. 이선균과 이지안을 봤다. 드라마를 보며, 나의 20대와 이선균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나의 20대에게는 <나의 아저씨> 속 주인공 지안이처럼 힘든 시절이었지만 잘 견뎌주었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선균에게는 잊을 때 쯤, 다시 드라마 꺼내보겠다고 잘 가라고 인사했다. 

작가의 이전글 가족은 나를 비추는 전부가 될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