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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정 May 01. 2024

북유럽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Restart



서른을 몇 개월 앞둔 2024년 봄, 6년간의 직장생활을 어영부영 마무리한 채 잠깐 스웨덴으로 이사를 왔다.

3개월 간의 관광객 신분으로 이 나라 언어와 문화생활을 체험하는 게 무던한 노력 없이 돌연 해외로 맘 편히 떠날 수 있는 꿈같은 얘기일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멋진 훈장을 달고 빛나는 커리어를 남기겠다고 밤낮없이 일해 보기도 하고, 부족한 내 모습에 자격지심 가득했던 지난날이 내게 남겨준 건 무엇인지 돌이켜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배움은 효율적인 리서치 능력도 풍부한 산업 지식도 있지만, 더 큰 의미로는 가족, 친구, 그리고 동료들이 함께 해준 시간들로 말미암아 긴 여정동안 잦은 실패에도 큰 불안함 없이 무의미한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여정을 위해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작은 종지부를 찍었다.

스웨덴은 북유럽의 춥고 긴 겨울에 눈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개인적인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외딴곳에서의 개인적인 일상에서 발현되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다.


이곳의 시간은 한국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여기서 내가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내 약혼자 M의 직장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 근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6시간 정도 직장에 할애하고 있다. 퇴근 후에도 운동과 가벼운 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평일에도 가정에 소홀히 할 수 없어서 매일 일상을 가족 구성원들과 같이 논의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아침,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고 주말을 같이 계획하면서 모든 구성원들이 가정을 안정적으로 설계해 나가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가족과의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 우선순위화 할 수 있다는 건 내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의 지분을 확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마음과 정신에 꼭 필요한 활동이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들은 개인의 지적활동과 사회적 주체로서의 의무이긴 하나 커리어는 우리 인생의 여정에 챙겨갈 짐들 중에 한 개의 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먼 나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고, 대기업의 워라벨이 보장되는 지원부서에서 좋은 사수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아두고 아쉬운 마음도 추스르지 못한 채 퇴사를 했다. 한국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매달렸던 경력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보니 내 몸에 벅찬 짐을 들고 먼 길을 오느라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토닥였다. 학창 시절부터 좋은 성적과 화려한 직장에서 일하는 게 성공이라고 확신하며 어려운 일도 자처하고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20대를 열심히 달려왔지만, 툭 끊긴 경력 앞에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지 눈앞이 깜깜했다. 과연 20대에 결실을 맺은 게 있는지도 의문일 정도로 그동안의 지적 노동에 대한 허무함이 몰아쳤다.


하지만 과거의 나에 대한 반추는 접어두고, 앞으로 스웨덴에서 남은 기간동안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있는 20-30대와 일상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개인 브런치북에서 다양한 에피소드와 단상에 대해 연재를 시작했으니

https://brunch.co.kr/brunchbook/siennajeong​ ​에 대한 독자분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정해진 길이 없는 항로처럼 자유로울수도 있지만, 끝없는 수평선을 항해하면서도 우리는 갇힌 기분에 사로잡힌다.
두려움에 말미암아 언젠가 맞닥들일 태풍과 암초에만 불안해 하는건
물결에 일렁이듯 반짝이는 햇살과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의 시원함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우리가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만들어낸 상상의 비극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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