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가면 늘 그곳 시장에 들린다. 어떤 사람은 잘 모르는 곳에서도 실패할 걱정이 없다며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점을 찾기도 하지만, 성공을 목적으로 그곳에 가는 것은 아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부쳐나온 김치전을 맛보고, 맛있다고 환호하면 한 장 더 서비스로 주는 인심을 맛보고, 긴 벤치 옆으로 앉은 낯선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다가 끼어들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시장이 아니면 어디에 있을까.
그중에서도 삼척중앙시장은 바다를 보러 갈 때마다 꼭 들리는 곳이다. 떠들썩한 호객행위와 눈부시게 밝은 조명이 없어서 더 좋다. 어떤 시장에 가면 음식은 음식대로, 채소는 채소대로 파는 곳이 나뉘어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은 것도 내 마음에 쏙 든다. 그릇 가게 옆에 꽃집이 있고, 그 옆에 전집과 튀김집이 있고, 그 옆에는 신발을 팔며, 그 옆에는 국밥을 판다. 작은 골목에 다양한 종류의 가게들이 모여있으니 지나갈 때마다 재미있다. 멈추었다 또 가고 또 멈춘다. 삼척중앙시장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귀여운 꼬마였을 때, 이곳 시장에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깔깔거렸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 저게 뭐야. 저게 물고기야?”
수줍음 많던 딸이 조용히 내 다리를 붙잡고, 얼굴을 올려다보며 지은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 이 물고기는 평범한 모습이 아니다. 배는 남산만큼 불뚝 튀어나왔고, 얼굴은 대문짝만하고, 입은 얼굴 전체를 가릴 만큼 크다. 거기다 피부는 울퉁불퉁 자갈 섞인 모래를 먹물에 묻혀 뿌려놓은 듯하고, 지느러미는 거친 사포를 아무렇게나 찢어 붙여 놓은듯했다. 호기심 많은 아들은 킥킥거리며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쿡 찔러본다.
“사장님, 이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이놈이요? 삼식이예요.”
“네?”
물고기 얼굴만 봐도 웃기는데, 이름이 삼식이라니.
“아빠, 이게 삼식이래, 삼식이. 크크크…. 야, 삼식아.”
장난꾸러기 아들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말을 붙여본다.
예전에 아는 분 집들이에 가서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때라 친하게 지냈던 네 집이 한곳에 모이면 자연스레 아이 키우는 얘기가 펼쳐졌다.
“아휴, 방학 되니까 힘들어 죽겠어요. 우리 집에 삼식이가 세 명이나 있어요.”
“애가 둘인데, 한 명은 또 누구예요?”
“누구긴요. 애들 아빠가 요즘 휴가예요. 휴가.”
“호호호. 우리 집도 삼식이가 둘인데.”
“우리 집은 삼식이 하나, 이식이 하나예요.”
삼식이! 삼시세끼를 모두 집에서 해결하는 사람이다. 이식이는 점심을 밖에서 먹나 보다. 그렇게 한숨 반, 웃음 반, 여자들이 말하고 있는데, 불쑥 남자가 끼어들었다.
“나는 영식인데?”
영식이? 순간, 모두 얼굴이 멍해져서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여자가 답변하듯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삼식이가 부러워요.”
이번 여름, 어머니께서 고향에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잘됐다. 더위도 피할 겸,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인사도 드리고, 어머니와 오랜만에 데이트도 할 생각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강릉으로 향하는 영동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는데, 어머니가 점심 얘기를 꺼내셨다.
“얘,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말복이네. 강릉에 도착하면 삼숙이탕 먹으러 가자.”
삼숙이는 또 뭐지?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삼계탕이 아니고?”
“그런 게 있어. 엄마 어렸을 때 아주 많이 먹었어.”
“그게 뭔데요?”
“삼숙이라고, 아주 매력적으로 생긴 생선이야.”
어머니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시더니 사진을 하나 보여주셨다. “음…. 정말 매력적이네요!” 내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거 삼식이 아니에요? 삼식이?”
“다른 데서는 그렇게도 부르더라. 나 어릴 때 동네에서는 삼숙이라고 했거든. 거기 강릉중앙시장에 삼숙이탕 잘하는 데 있어. 거기로 네비 찍어봐.”
강릉중앙시장 주차장에 도착하니 말복답게 강렬한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시장 가까이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댔으면 좋았을 텐데, 여차저차 하여 너무 멀리 주차했다.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이 더위에도 강릉은 역시 여름의 도시인가보다. 시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중앙통로보다는 한쪽 옆으로 난 한적한 골목이 좋다. 텃밭에서 기른 푸성귀를 쌓아두고, 장사 생각은 접은 듯,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계셨다.
“할머니, 여기서 삼숙이탕 제일 잘하는 집이 어디예요?”
“아, 그거. 내가 가르쳐줄게. 어디냐면….”
“에이, 거기 못써. 내가 알려주는 데 가봐. 최고야. 우리 영감이 거기를 제일 좋아해.”
“니네 신랑 말하는 데, 다 맛없더라. 믿을 수가 없어.”
“뭐라고?”
아, 이를 어째…. 어머니는 호박이 맛있어 보인다, 어떻게 이리도 빛깔이 곱냐며 칭찬을 하시고는 얼른 호박 몇 개를 사셨다. 역시 어머니는 지혜롭게 상황을 마무리하셨다. 계획에도 없던 호박을 몇 개 사고, 먼저 말을 꺼내신 할머니가 알려준 곳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멀찌감치 보이는 간판 아래가 이상하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긴 했지만, 식당 앞이 어둑어둑한 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까이 가보니 역시나, “정기 휴일입니다.”라는 종이가 떨어질 듯 말 듯 붙어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종이에 화풀이한 것 같다. 실망이 컸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집이 있었다. 바로 영감님이 좋아하신다는 곳. 다행히 그곳은 영업 중이었다.
식당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던 사장님은 느긋하게 주문을 받고, 손수 끓여오신 전골 그릇을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셨다. 그리고 팔팔 끓는 탕을 국자로 휘휘 젓고 나서 그릇에 담아주시기까지 하셨다. 장사를 하루 이틀 하신 것도 아닐 테니, 이미 분위기 파악이 끝나셨나 보다. 서울서 아드님이 어머니 모시고 왔냐며 말을 건네더니, 아예 의자를 끌어와 옆으로 앉으셨다. 어머니랑 말동무하실 참인가보다.
“사실, 여기 말고 다른 데를 갈려고 했는데, 거기가 마침 문을 닫아서…”
어머니는 갑자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셨다. 내가 눈을 깜빡거리며 신호를 보내려는데, 다음 이어지는 말씀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여기가 훨씬 더 맛있네요.”
사장님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지긋이 웃으셨다.
“그 집이랑은 하는 방식이 좀 달라서, 거기서도 드셔보시고, 우리 집 것도 드셔보세요.”
“아, 이건 지누아리네요. 강릉 사람은 이게 없으면 안 돼요. 강릉에 오니 지누아리 맛을 다 보네요.”
“여기 분들이 그걸 너무 좋아하셔서 반찬으로 꼭 만들어요. 저는 안 먹어요. 고향이 경상도라 바다 냄새가 싫더라고요.”
“아, 고향이 경상도세요? 저는 여기가 고향인데.”
55년 전, 경상도에서 강릉으로 시집오셨다는 식당 사장님과 그즈음 강릉에서 서울로 시집간 어머니는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곳에서 오랫동안 함께 하신 듯,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시누이에게 삼숙이탕을 배워 식당 문을 연 지도 벌써 36년째. 시누이네는 강릉에서 횟집을 크게 하다가 장사가 잘돼서 조카가 서울에 분점을 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조카가 어머니의 제자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세상에,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라더니, 삶이란 숨은그림찾기인가보다. 아무리 찾으려해도 보이지 않던 것을 우연히 발견할 때의 놀라움과 즐거움. 그래, 그 정도면 인생은 재밌다고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사장님은 그릇이 비워질 때면 전골 그릇에서 뜨끈뜨끈한 국물을 계속 퍼주셨다. 더 먹으라며 공깃밥을 내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햇고춧가루로 아침에 만들었다는 반찬도 이것저것 내오셨다. 삼숙이탕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품고 있었다. 국물 한 숟가락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으니 그 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굳이 덧붙이자면 삼식이와 삼숙이를 겉모습으로 절대 판단하지 말라는 것. 그들이 합류한 여행길이 내내 즐거웠던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