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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Mar 30. 2024

소리라는 실(thread)

2024 통영국제음악제, 3.29.(21:30) "스레드"

    만약 교통사고로 눈 혹은 귀 둘 중 하나만 잃게 되었을 때, 이 둘 중 어떤 것을 포기할 것이냐고 질문한다면 쉽게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눈과 귀로 수많은 자극과 신호를 받아들인다. 눈과 귀는 외부로부터 세상을 받아들이는 통로인 점에서 모두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것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눈으로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보고 귀로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 음악과 미술은 마치 이란성쌍둥이와 같은 사이이다. 미술작품을 보면 어울리는 음악이 떠오르고, 음악을 들으면 이에 어울리는 색깔이나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둘 사이를 연결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한다.




     3월 29일 금요일, 바로 어제저녁 9시 반의 공연이다. 제목은 "스레드". 우리말로 "실"이다. 티켓을 끊을 때 세계 초연이라는 설명을 보고 "현대음악이군. 이건 모 아니면 도겠구나" 생각했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지만 한 번도 현대음악을 작곡한 적이 없는 나에겐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음악은 아직도 실험실 속 음악이다. (현대음악이란?)

공연 팸플릿 설명에 따르면 더블베이스 연주에 따라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3D매핑 기술이 작용해서 영상이 움직이는 공연이었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미디어 아트를 가져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명이었다. 좌석도 만석이었고 좋은 자리를 잡아 기분이 좋았다.




    

    티켓을 예약할 때 설명에는 분명히 더블베이스와 멀티미디어의 실잣기...라고 되어있는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더블베이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모른 척했다. '더블 베이스'에서부터 다시 한번 티켓팅을 고려했어야 했다. 더블 베이스, 음역이 가장 낮은 현악기이다. 다시 말하면 잠이 잘 오는 음역대의 부드러운 악기인 것이다. 역시 고비가 여러 번 있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기억이 잘 안나는 부분도 있다. 공연을 많이 다니다 보니 안 그런 척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린 척하는 것도 능숙한 편인데, 이런 공연은 정해진 박자가 없어 난감하다. 휴.

    다행히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더블베이스가 4개의 현 모두를 빠르게 활을 그어 재빠르고 자극적인 소리를 내고 이에 맞춰 화면에 파도가 넘실대고 선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시간을 마구 몰아붙이는 듯한 속도감이 좋았다. 다만 더블베이스의 소리에 따라 그림이 변화한다고 했는데 가끔 버퍼링이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더블베이스가 화면을 보다 뒤서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다양한 색채와 모양의 실과 은빛 파도가 넘실거리는 영상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했다. 가끔 핏자국 같은 붉게 물드는 점들이 징그러웠지만 그 징그러움을 그냥 느껴보았다.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공연을 보면서 창작자가 소리와 그림을 어떻게 연결시켰는가에 집중했다. 음의 높고 낮음, 빠르고 느림, 거칠고 부드러움 등 다양한 음의 특성이 그림으로는 어떻게 나타날까. 어떤 실의 모양으로 표현했을까. 이 공연의 비주얼 아티스트 다쓰루 아라이는 다채로운 색과 실의 두께, 질감으로 음을 표현했다. 빨갛고 얇은 실, 파랗고 두꺼운 실, 자주색 점을 뿜어대는 노란 실 등이 섞여 음을 표현했다. 이 실들이 빠르고 느리게 움직여 음의 흐름을 우리의 눈으로 전달했다.




    이 공연의 주제가 "실"인 것은 더블베이스 즉 음이 끊기지 않고 쭉 이어지는 현악기의 음을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뚝뚝 끊기는 타악기의 음을 표현했다면 "스레드(thread, 실)"가 아니라 "닷(dot, 점)"이 제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연을 보고 나니 "우리 집 현관문 도어록 소리는 분홍색 작고 선명한 점이네", "아침을 깨우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는 뾰족뾰족하고 샛노란 선이네" 하며 일상 속 다양한 소리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게 된다.


화면 좌측 상단에 희미한 치킨 윙봉 같은 그림이 보이는가. (확대) 이 모양이 계속 나오는데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만들 때 치킨이 먹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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