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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Apr 01. 2024

'소리'에 담긴 그의 미소

2024. 통영국제음악제 <적벽가>, 김일구,  3.30.(15:00)


    우리는 서양의 악기와 목소리의 음색에 익숙하다. 마치 평소에 한복 입은 사람을 보기 힘든 것처럼, 평소에 국악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생활 속 국악을 떠올려보면 지하철이나 기차에서 흘러나오는 도착 알림음 정도이다. 이번 2024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작년에 이어 국악 한 무대를 준비했길래 반가운 마음에 얼른 티켓을 끊었다. 재작년 2022년엔 원일이라는 유명한 국악 작곡가의 창작국악을 보았는데, 컴퓨터 음악으로 목소리를 변주시켜 국악 관현악과 신명 나게 연주했던 '디오니소스 로봇'(소개영상 보기)이라는 공연이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좀 더 고전적인 국악인 판소리 '적벽가'를 들으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넓은 콘서트 홀에 소수의 인원이 연주한다면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느끼기 위해 가장 앞 좌석으로 예매하곤 한다. 이번 공연 역시 시간이 촉박하긴 했지만 나는 '1인 좌석'을 예매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예매했다가 취소했거나 깍두기 상태인 좋은 자리를 찜할 수 있었다. 앞에서 중간그룹의 바로 두 번째 자리였다. 덕분에 나는 김일구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 움직임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은 현장감이지!

    


    적벽가는 그 유명한 삼국지 적벽대전의 판소리 버전이다. 판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분의 목소리는 서양음악의 기준으로 하면 어떤 부분은 크고 용감하게 지르는 음이 있는 말소리에 가깝지 않을까. 서양 오페라의 아름답게 내려고 하는 발성과는 가치관부터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음악분야를 서양에선 '성악'이라 부른다면 우리나라에선 '소리'라고 칭한다. 서양의 성악은 인간의 목소리를 악기화 하려 했다면 우리나라의 '소리'는 말 그대로 소리. 다듬지 않은 날 것의 소리로 삶과 고통, 애증의 감정을 표현하는 삶의 현장과 같은 느낌이다. 마냥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을 느낀다. 

    



    사실 판소리를 들으며 가사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판소리는 아니리와 창으로 나뉘는데, 아니리는 일종의 리듬이 있는 상황 설명으로, 창은 음이 있는 노래와 비견될 수 있다. 아니리는 발음을 알아듣기 쉽지만 창은 음의 높낮이가 있고 리듬이 있는 선율이기에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축제 측에서 가사집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배부해서 이 점을 보완해 주어 좋았다. 가사집을 보다가 음악을 한번 들어보자 해서 연주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열심히 감상해 보았다. 처음엔 신기했고 중간엔 생각을 했고 마지막엔 공감을 했다. 듣다 보니 장단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리며 박자를 타고, 창이 휘몰아칠 때면 어이! 하는 추임새가 나왔다. 우리의 음악은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멀리 떨어진 채 조용히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라 서로 어울리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연주회 포스터를 보면 눈웃음을 짓고 있는 김일구 선생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10살 때부터 소리를 시작해서 지금은 70년이 지나 80대가 되었다고 한다. 아직 어린 나에겐 경이로운 세월이다. 그런데 공연 중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자 70년 음악인생에서 이렇게 환대를 받기는 처음이라고 하신다. 그의 눈웃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공연이 끝나고 네이버에 '김일구'를 검색해 보았다. 역시 적벽가 보유자다. 가족 모두가 판소리, 국악기 등을 하는 세습 예인 집안 출신이다. 아쟁산조, 가야금산조 등 다양한 국악 분야에 기여한 사람이다. 소리가 대범하면서도 세밀한 것이 이 사람은 소리를 가지고 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의 밀당이 기가 막혔다. 


흔하지 않은 기회, 좋은 연주였다. 내년엔 어떤 국악 연주가 있을지 기대된다. 

김일구, <적벽가 중 '동남풍 비는 대목'>

연주를 마치고 기립박수가 쏟아지자 기분이 좋으신지 함박웃음을 짓고 빙그르르 춤을 추곤 퇴장하셨다. 연세가 많아 앙코르는 무리인 듯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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