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빛 May 14. 2024

신나는 대피 훈련

우리의 전쟁은 계속된다.

오늘 오후 두 시에 민방위 훈련을 했다. 모든 학생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대피를 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운동장에 나온 것만으로도 신나 보였다.

  대피훈련에 임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해맑다. 떠들고 소리치고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 즐거워 보이는 한 학생에게 이걸 왜 하는지 아냐고 물어보았다.


“아, 불나면 빨리 나가야 해서 하는 거 아니야?”(옆 친구에게)

“위에서 쳐들어 올까 봐요. 빨리 도망가려고 하는 거잖아요.”(교사에게)


 맞는 말이다. 내용은 심각한데 말해놓고 친구와 신나게 춤을 춘다. 우르르 몰려 나간 수백 명의 학생들 중 전쟁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학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나중에 이 훈련의 후속으로 마련한 교육을 받게 되면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썩 다르진 않다. 내 부모님 세대는 전쟁 직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가족을 이끌고 시련을 헤쳐나간 조부모님 밑에서 자란 부모님이다. 내 할아버지는 북한 출신이셨다. 북한에 가족이 있어서 90년대에 텔레비전으로 방송했던 이산가족방송을 큰집에서 몇 날 며칠 동안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도 역시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전쟁이 얼마나 무서울 것인지 짐작만 할 뿐이다.

15분 동안 잠깐 이루어진 대피훈련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휴전 중인 우리나라, 그리고 이 상황에 익숙해진 우리들을 떠올렸다.




 예전에 강원도 춘천에 살 때에는 아랫지방에 비해 북한과 거리가 가까워서 불안했다. 10월이 되면 공군 에어쇼를 하는데 굉음이 울려 퍼지던 전투기 비행 연습소리에 전쟁이 난 건가.. 하며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던 기억이 난다. 북한과 가까운 곳은 부대도 많고 군용 차량도 자주 돌아다닌다. 확실히 아랫지방으로 이사를 오니 마음이 편하고 오히려 일본이 더 신경 쓰일 정도다.




 국가별 여행 정보를 보면 그 나라의 안전한 정도가 표시된다. 우리나라는 휴전 중이어서 아무리 치안이 좋아도 점수가 좋지 않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고 있고, 한편 매번 이런 위험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살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 위험하고 건드리기 어려운 상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그러다가도 언젠가 한 번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나와 우리, 이 나라는 이 상황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걸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행복할 거리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