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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Jan 03. 2024

기억, 다시듣기

Aaron Tayler, <Home>

나는 19년부터 5년째 애플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에 매달 13,500원을 내고 음악을 듣고 있다. 단지 음악만 듣는다면 이 비용이 아까웠겠지만 애플의 dj직원들이 추천하는 재즈러브송, 크리스마스 k-pop, 로맨틱 피아노, 서울재즈페스티벌에 나왔던 밴드음악 등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추천해 주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심지어 반신욕 용 음악, 어린이용 자장가 등 생활 밀착형 음악 리스트도 제공해서 필요할 때 찾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스포티파이나 멜론 등의 다른 스트리밍서비스도 이런 서비스는 아마 다 갖춰져 있을 것이다. 애플 뮤직의 강점은 바로 재즈와 클래식을 깊게 다루며, 나아가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취급한다는 것에 있다. 음악적 네트워크가 넓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가지를 뻗을 부지런함만 있다면 클래식부터 중국계 대중음악인 만다린 팝, 아이슬란드 출신의 재즈 가수까지 만날 수 있다.




매년 12월쯤이 되면 앱에서 ‘리플레이 ‘00’ ‘라는 아이콘을 보여준다. 그 해 가장 많이 들은 곡들을 모아 추억의 플레이리스트를 생성해 제공하는 것이다. 이 리스트는 내가 애플 뮤직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능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 많이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그 당시의 느낌과 기분, 심지어 냄새까지 생생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replay ‘19 리스트에 있는 음악 중 

Aaron Tayler의 <Home> 은 마치 붉게 물들어 땅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담은 뜨거운 트럼펫 소리와 변함없는 베이스와 드럼비트가 마음을 울리는 노래이다. 나는 이 곡을 독서실에서 오후 공부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들었다. 이 곡의 주된 가사는 'I will keep the lights on till you come back home'(당신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불을 켜둘 거에요)이다. 나는 가사를 정확히 모를 때 'lights on'을 'red sun'으로 들어버려 '내가 집에 올 때까지 저 붉은 해를 잡아두고 있겠다고? 이렇게 멋있는 가사를 짓다니!'라고 감탄하며 혼자 낭만에 빠졌던 적이 있다. 이건 내가 했던 수많은 착각 중 가장 기분 좋고 낭만적인 착각이었다. 

이제 나는 이 노래를 매일 듣지 않는다. 하지만 매년 연말이 되면 애플에 의해 이 노래를 들으며 다시금 저녁 무렵 붉은 해가 기다리고 있던 집에 가는 길을 떠올린다. 




올해, 아니 작년 2023년의 노래들도 이제 하나로 묶여 나의 새로운 Replay '23 플레이리스트를 형성하게 되었다. 올해는 어떤 새로운 음악을 듣게 될까 기대하는 동시에, 데이트가 끝나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안녕을 고하는 연인처럼 작년의 내 귀때가 묻은 음악들에게 그리움이 머무른다. 내 목소리와 높이가 비슷한 싱어송라이터 김수영, 아이슬란드 가수 라우페이, 선우정아 그 자체인 선우정아, 달콤 씁쓸한 스윗소로우 등 일면식도 없는 가수들이지만 마치 일 년 동안 함께한 친구처럼, 혹은 룸메이트처럼 내 마음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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