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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Jan 02. 2024

짙은 남색의 비 오는 밤

No More Blues/보사노바

    2020년, 처음으로 재즈 라이브 공연에 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까지 재즈를 좋아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첫 공연에서 가장 깊게 빠져든 곡은 'No More Blues'. 재즈 곡에는 원작자가 있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보다는 원곡을 정확히 연주하는 것이 덜 중요하고 연주자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편이다. 대략 선율이 악보에 그려져 있고 이러이러한 길로 가니 비슷하게 가보도록 하렴. 이런 느낌이다. 이렇다 보니 재즈음악을 들을 때는 작곡가, 원작자보다 그 곡을 어떤 스타일로 연주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감상하게 된다.

    No More Blues(듣기). (여기서 blues는 우울, 슬픔을 이야기한다.) 이 곡은 영어버전으로, 원곡은 포르투갈어로 'Chega de Saudade,  '슬픔은 이제 그만'이라는 뜻이다. 위에서 원곡이 덜 중요하다고 해놓고 굳이 원곡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Saudade', '사우다드'라는 브라질 특유의 정서를 표현한 곡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를 다른 나라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사우다드' 또한 그 지역 특유의 감정인데, 고향을 향한 그리움, 향수, 이루어질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열정, 갈망을 의미하는 브라질, 그리고 브라질을 침략한 포르투갈의 감정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를 해안가 마을의 전통 노래 '파두'라는 장르에 담았으며, 브라질 사람들은 라틴 재즈의 한 장르인 '보사노바'에 담았다.

    '보사노바' , 'Bossa Nova' 새로운 경향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재즈 장르는 브라질의 삼바로부터 나온 음악으로, 빠르고 열정적인 춤곡인 삼바와는 달리 비교적 덜 격렬하고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보사노바는 생각보다 세계 각국의 음악에 퍼져있어서 음악적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도 누구나 한 번쯤은 보사노바를 들어왔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는 'The girl from Ipanema(듣기)', 우리나라의 경우엔 제주도 여행을 갈 때 꼭 들어보는 '제주도 푸른 밤(듣기)'이 있다.

    보사노바는 지나쳐가면 부드럽고 삼삼하지만 자꾸 듣고 곱씹다 보면 애절함이 더 많이 올라오는 음악이다. 기쁘고 즐거운 내용보다는 구슬프고 그리움 가득한 내용의 가사가 많아 음악에도 가사의 내용이 그대로 스며드는 것일까. 지금 소개하는 'No More Blues'의 포르투갈 가사 역시 사랑하는 여자에게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으니 더 이상 떠나지 말라는 애절한 내용이다. 그래서 각색되거나 혼합된 보사노바가 아닌 원형에 가까운 보사노바 음악은 대부분 어둡고 슬픈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조로 작곡되었다. 하지만 보사노바의 뿌리는 브라질의 신나고 열정적인 삼바이기에, 어두침침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감상적인 애절함을 담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음악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정말 한 귀에 반했다. 공연의 맨 마지막 곡이었는데, 라이브 공연인 데다 야밤의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감자튀김을 야금야금 먹으며 편한 자세로 읏치읏치 흔들어가며 음악을 들어서 그런지. 그날 밤 보사노바의 푸근하면서도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선율이 내 마음을 쏙 훔쳐갔다. 재즈를 접하며 내가 클래식 음악에만 반응하는 목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나아가 이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도 둠칫둠칫 혹은 팔을 휘휘 저으며 돌아다니는 정체 모를 춤을 추곤 한다. 뜻하지 않게 음악 감상에서 자유를 얻었고, 이 경험을 통해 재즈뿐만 아니라 메탈, 팝 등 더욱 다양한 음악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음악에 대한 감상은 청자 각자의 몫이기에 혼자 있는 공간에서 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음악만 들어보는 것이 좋다. 혹은 비 오는 저녁이나 여름밤에 들으면 이 곡만의 감성이 한껏 배가 되어 마음에 꽉 들어찬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교차하며 나타나는 감정선을 느끼며 잔잔히 흐르는 베이스와 드럼의 찬찬거리는 리듬을 들어보자. 오늘 밤은 이 음악과 함께 고요히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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