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군대 생활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

추운 겨울 입대한 직원의 아들을 보면서 든 생각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나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저도 군대를 제대한 지 40년이 되어 가지만, 해병대 채상병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다 보니 여전히 군에 대한 불신감은 남아 있습니다.


저희 직원이 년차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철원에 있는 부대로 입대하는데 훈련소까지 따라간다는 것인데요. 딱 9년 전인 2017년 1월 초, 철원으로 입대하는 아들을 데려다주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잊히지 않는 아픈 기억 하나

제가 군대에 있을 때는 부대 내 사망 또는 상해 사고에 대한 내용은, 거의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제가 속해있던 부대는 한때 수도경비사라고도 불렸던 서울 주둔 부대였습니다. 당시 매주 수요일은 '전투체육의 날'이라는 명목 아래 집단 권투를 실시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여기까지야 늘 있는 지시 사항이니 별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날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늘 전화기 앞에서만 근무하던 상황병을 갑자기 불러내 권투를 시킨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중대장의 강압적인 지시에 따라 무작정 덤벼들다, 상대의 주먹에 맞아 그만 뇌진탕으로 의식 불명이 되었습니다. 급하게 군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으나, 군의관이 저 보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상황병의 부모님을 급히 모셔 오라고 하더군요.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목이 메이더군요.


당시 시골에 계셨던 상황병의 부모님은 다음 날 오전에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병원에 도착하셨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시곤 오열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상황병은 군 병원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부대는 3개월 동안 모든 체육활동이 금지되었고, 외출과 외박도 중지되었지요. 물론 이 사고는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도 않고 조용히 묻혔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아픈 기억이 생생하네요.


아들의 입대

2017년 1월 9일,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하필이면 이 추운 겨울에 아들이 입대를 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서 굽이굽이 낯선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이 철원에 위치한 ○사단 훈련소입니다. 얼마나 추웠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당시 서울의 최저 기온은 -9.4도였으며, 철원의 최저 기온은 -17.1도였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콧속이 어는 듯한 느낌이고, 입었던 겨울 패딩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날 이후, 아들이 제대할 때까지 하루도 걱정 없이 지낸 날이 없었습니다. 군 생활을 경험한 남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군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지만, 집에서 있는 아내는 달랐습니다. 군대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며, 혹시나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늘 불안해했습니다.


걱정의 연속

하루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팀원들과 미팅 중이라 거절했더니 곧바로 다시 전화가 오더군요.

보통 근무 시간에는 카톡으로 연락을 하는데, 뭔가 급한 일인 것 같아 자리를 옮겨 통화를 했습니다.


아내는 다급한 목소리로 "뉴스 속보로 철원 모부대에서, 포병사고가 나 몇 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하는데 알고 있어?"라고 물어보네요.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조회를 해보니, '철원 K-9 자주포 폭발사고'라는 단신이 보입니다. 이게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하네요. K9 철원 K9 자주포 폭발 사고

k9 자주포 사고.png [철원 K-9 자주포 폭발 사고 뉴스]


전 아내에게 아들과는 관련이 없는 사고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들이 철원에서 군 복무 중이고, 포병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군인이 맨손으로 운반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무기인 81mm 박격포병입니다. 그러니 첨단 K9 자주포와는 거기가 멀어도 엄청 멉니다.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더니 곧바로 이해를 하더군요.



당시에는 내부반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할 때라, 외출이나 외박을 나올 때만 보관하였던 스마트폰을 지급받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급한 일이 있으면 소대장이 부모에게 카톡으로 연락을 할 때였지요.


어느 날, 아들이 잠시 철원 시내로 외출을 나와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다음 주부터 부대 내에서 진지 구축공사를 한다며, 당분간은 연락이 안 될 것이라고 합니다. 부대 내 진지 구축이야 다반사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업무 중 책상 위 스마트폰이 마구 떨고 있습니다. 힐끗 쳐다보니 아내로부터 온 전화입니다. 전화를 받아보니 다급한 목소리로 좀 전에 아들 부대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고, 상병 한 명이 유탄에 맞아서 사망을 했다며 아들이 걱정된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철원 총기사고

철원 총기사고.png [철원 총기사고 관련 중앙일보 뉴스 자료]


그날은 저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얼마 전 아들이 진지 구축 공사를 간다고 했었기 때문이지요. 일단 아내를 진정시킨 후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속보로 '철원 ○사단 소속 상병이 진지 구축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중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맞아 숨졌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저희 아들이 1월 입대이고,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 9월이니 딱 상병을 달고 근무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번에는 아내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더군요. 떨리는 마음으로 조바심을 내면서 계속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아내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무사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들의 소대장이 부모님들이 걱정하실까 봐, 직접 카톡으로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무사함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이후로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제대를 하였고, 지금은 IT 개발자로 훌륭하게 자기 몫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 때만 해도 통용되는 말이었고, 당연시되는 표현이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격려의 표현이기도 했고, 군 복무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려는 선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는, 법으로 규정된 국방의 의무입니다.

굳이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면 군 생활의 힘든 과정을 통해, 인내심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단체 생활을 통해 사회 적응력을 키우고, 협동심과 리더십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 생활 중 자신을 되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은 군대 생활을 아무런 문제 없이 순조롭게 마친다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지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군대 내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재 복무 중이거나 또는 군 생활을 하실 모든 분들이, 건강하면서도 보람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군대 내 각종 사고로 인한 사상자가 더 이상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으로, 군 복무 중 사고로 다치시거나 목숨을 잃은 분들과 그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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