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해보자'라는 제의를 받아, 감사하네요.

어제 은퇴하고 오늘 출발하고,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인생 1막의 커튼이 닫혔습니다.

어깨를 짓눌렀던 '주인공'이라는 무거운 역할의 짐을 내려놓고, 오롯이 '자연인'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많은 후배들이 지겹도록 반복하여 물어보는 것이 "퇴직 후 무엇을 하실 예정이신가요?"입니다.

여러 생각을 이야기했지만, "일단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겠다"라는 말로 모호하게 답변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퇴사하기 두 달 앞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협력사 사장님이 "정년퇴직하시는데 특별하게 하실 일이 있으신지요?"라고 물어보시네요. 아이고~ 이제는 협력사 사장님도 동일한 질문을 하시는 것을 보니, 정년퇴직이 정말 현실로 다가왔음을 실감했습니다. 정중하게 "일단은 잠시 쉴 예정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뜻밖의 제안이 돌아왔습니다.


"그럼 저와 같이 일해 보시지요."



퇴직 후 완전히 새로운 직종으로 전환을 준비하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희와 같은 일반직 은퇴자가 재취업을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요.


정년퇴직자 교육의 일환으로 직업상담사 분과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재취업을 원한다면 기존에 하던 일의 연장선에서 찾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취업이 최선의 방법입니다."라고 하신 것이 기억이 나네요.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감사함'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여전히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 그동안 쌓아온 나의 시간과 전문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내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함'과 함께 밀려오는 감정이 '망설임'입니다.

어제의 직급과 권위를 내려놓고, 새로운 위치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들을 다시 대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고민이 앞섭니다.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낯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혹여나 저의 평온을 깨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듭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조차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는 행복한 고민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익숙한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부담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다시 불러준 그들의 '신뢰'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연극의 커튼콜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며 지웠던 화장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합니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여전히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이보다 더 근사한 은퇴 선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승낙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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