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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내 Jul 07. 2024

1층에 살고 있습니다만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만 일 년이 되었다

1층으로 이사 올 수 있었던 건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 chuttersnap, 출처 Unsplash

2015년에 결혼을 했고 전셋값이 하루하루 계속 갱신되던 시기 영끌로 대출 없이 집을 마련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미련했다. 대출받고 그 돈으로 다른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



신혼부터 시작해 9년을 살았던 곳은 일명 백세권, 몰세권이라고 불리는 서울 도심의 주상복합 아파트 32층. 교통도 편리하고 문화/여가시설 좋고, 탑층의 막힘없는 시티뷰까지 나의 생활반경에 너무 근사한 집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동대표 4년을 역임(?)하고, 아이 둘을 출산하며  애정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살아가면서 탑층을 왜 사면 안되는지 몸소 체험했다ㅎㅎ 그래도 나는 동대표가 아니던가? 똑똑하게 요구하고 야무지게 해결하며 살았냈고 그때 결심했지! 절대 절대 절대 탑층과 1층은 사는 게 아니라고


아이들 커가며 활동량이 점점 늘어감에 따라  내 목소리도 점점 더 커져갔다


"뛰지 마!!!!!!" "살살!!!" 을 외치고 다니지만 아이들이 내 말을 들어줄 리 없다.



남편과 집중토론에 들어갔다.

아이들 교육과 집에 대한 투자 비스무리한 이야기였다. 이곳이 살기는 좋은데 아이들이 있다 보니 결국 집을 보는 기준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지금 집을 팔아서 현금화시키고 집값을 보며 갈아타기를 해야 된다는 남편의 의견과 첫째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이사를 꼭 해서 초중고를 전학가지 않고 보내고 싶다는 결론이었다

초등학교를 3번 전학 다녔던 내가 강력하게 주장한 의견이다


정들었던 첫번째 집



2022년 겨울 미친 듯이 올라가던 집값이 주춤했다. 호가는 높지만 실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은지 오래다. 아파트상가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몇 달째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

사실 내 집이라 팔리면 그만 안 팔려도 아쉬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아니면 이 집을 더 팔 수 없을 것 같아서 몇십 군데 부동산에 공격적으로 집을 내놓았다. 그게 작년 5월이다



내놓자마자 집을 보러 온다고 전화가 계속 들어왔고

첫인상이 맘에 들어야 집이 빨리 나갈 것 같다는 생각에 정리해도 뒤돌아서면 다시 원상복귀지만 집을 보러 온다고 할 때마다 계속 정리정돈을 해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여정은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집이 덜컥 팔려버렸고 그제야 부랴부랴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4살 2살 애들을 데리고 집을 보러 가는 건 쉽지 않았다. 둘째를 아기띠로 안아 돌아다닐 때 정말이지 허리가 나가는 줄 알았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학군지라고 불리는 동네에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왔다. 물론 전세로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1층에 살아보겠어'



1층을 살아보니 장단점이 확연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폭염이 지속되던 6월 중순(아직까지 에어컨을 안 틀고 있다) 이게 1층의 장점이랄까?

 뿌염예약을 해놓고 밥을 먹는데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우두두두둑 들린다


'어? 이게 뭔 소리지?'

뭐가 터지는 소리 같은데 소나기가 오는지 창밖을 봤는데 햇빛은 쨍쨍!

앞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쪽으로 물이 쏟아지듯 흘러 우리 집 실외기로 물이 떨어지며 창문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윗집 실외기가 터진 줄 알았다. 빨리 말해줘야 같아 다급하게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윗집 실외기 쪽에서 물이 많이 흘러내려서 저희 집으로 물이 들어왔어요 확인 좀 해주세요"


잠시 후 관리실 직원분이 왔고 같이 바깥으로 나가서 확인해 보니 에어컨 실외기 위쪽으로 화분이 올라가져 있었고 그 화분 물을 촉촉하게 머금고 있었다(태양이 강렬한 날이었다)


화분에 물주었는데 아니 물을 호수로 아부은 것 같다. 물의 양이 꽤 많았으니까


관리실 직원이 올라가서 벨을 누르자 인기척이 난다

"관리실에서 왔습니다"

곧 문이 열렸다. 그 아저씨다(나는 꼰대라고 부르고 싶다)

"아랫집으로 물이 샜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실외기에 화분을 치워주셔야 합니다"

"계단에 자전거나 치우라고 하세요"

"예?.. 아 자전거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실외기 위로 화분을 올려두시면 안 됩니다."

"일주일 만에 물 준거예요"

"거기에 물을 주면 밑에 집으로 다 들어가요"

.

.

나는 밑에서 듣고 있다가 욱 해버렸다




1층으로 이사 오고 나서 첫째에게 16인치 자전거를 선물해 줬다

1층이다 보니 현관문 앞에는 내놓을 수 가없어서 1층과 2층사이 계단에 자전거를 두었다

1층-지하층 중간계단에도 다른 세대 자전거들이 놓아져 있었다

이 아파트 특성상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어린이자전거는 아파트 중간계단에 많이 비치가 되어있다 밖에서 봐도 자전거들이 유리창을 통해 보이니까


관리실 여쭤봤었다. 아무래도 소방법에 어긋나는 부분이라(동대표시 법적인 부분을 많이 접했기도 했고) 관리실에서는 물론 법은 그렇지만 동선을 가리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 주민들이 서로 이해한다라는 의견이었고 그렇게 자전거를 비치한 지 1년이 다돼 가고 있었다


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바깥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자전거를 2층으로 올리려는데 어떤 아저씨가 능청스레 묻는다

"이 자전거가 이 집 거요?"

"네~"

자전거를 집에 두던지 해야지 왜 계단에 놓으냐는 이야기..

"집에 둘 곳이 없어서요"

"우리 집에도 어른자전거 2대를 집안에 놔요"

"네.. 죄송합니다. 애들 짐이 많아서 집안에 놀데가 없어서요^^;;"

길을 막네 어쩌네 잔소리 같은 혼잣 중얼중얼 거리 한차례 대화가 있었다



'아랫집에 물이 들어와서 피해를 입었다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치우라고?'


욱하는 마음에 계단 위로 올라갔다

 언성이 높아졌다

물을 일부러 뿌린 거냐.. 1층 2층 공용 계단이 아저씨꺼냐.. 블라블라블라!!


인정사정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자기도 손주들 가끔씩 놀러 와서 엄청 뛰던데 참 쌀쌀맞다. 애들 키우는 집인 거 뻔히 알면서 우리 애 자전거가 그렇게 거슬렸나 보다


그날 당장 나는 자전거를 지하로 내려보냈고 지하에 있던 둘째 푸쉬카를 바로 당근행으로 보내버렸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는지 둘째가 붕붕카 달라고 울어댄다



짜증남과 억울함과 화남이 섞여있었고 화를낸 나 자신에 후련함보다는 찝찝함이 뒤섞인 감정이 며칠 동안 머물렀다.




1층의 불편한 점

사생활 보호가 취약함

택배나 새벽배송도 빨리 가지고 들어와야하며 문앞에 아무것도 둘 수가 없음

겨울에 춥다(난방비를 매달 조금씩 모아둬야 할 듯싶다)




1층의 좋은 점

집에서 마음껏 뛰어도 잔소리 안 해도 됨

분리수거, 음식물 배출이 편하다

아파트 광장을 우리 집 앞마당처럼 느낀다(?)





이웃집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인데 나는 어쩜 윗집 옆집 다 지뢰밭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키우기에는 1층은 최고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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