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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소년 Jun 12. 2024

1. 마을길 해안길

21코스(하도~종달 올레) 1

 날씨는 그날그날의 대기상태를 말한다. 대기는 기온, 기압, 풍향, 풍속, 구름의 양, 이슬점, 강수량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 춥기도, 덥기도, 비가 오기도, 바람이 불기도, 흐리기도, 맑아지기도 한다. 올레길의 환경 또한 다양할 것이다. 환경은 자연의 상태일 수도, 나의 상태일 수도 있다. 날씨의 상태, 펼쳐진 풍경, 혼자인지, 함께라면 누구인지, 그리고 몸 상태 등등. 이런 환경들이 올레길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날의 느낌과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길 위의 느낌과 생각은 날씨와 닮았다. 날씨가 그러하듯, 느낌과 생각은 항상 맑지만 않을 것이다. 흐리기도, 비가 오기도, 눈이 내리기도 할 것이다. 그 속에서 느낌과 생각은 다양하게 펼쳐질 것이다. 오롯이 그것을 기록하고 싶다. 그러면서 나를 알아가길 기대해 본다.


 글은 부정기적일 것이다. 올레를 정기적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건기는 길고 우기는 짧은 아프리카의 사바나 기후처럼 긴 공백과 짧은 글이 될 것이다. 게릴라 같을 것이다. 

    


 

 파란 하늘이 아니다. 제주의 하늘은 흐렸다. 흐린 날은 세상에 엷은 무채색의 그늘을 드리운다. 그늘 때문인지 색은 반짝이는 생기를 잃어 무겁다. 사물은 자기 속으로 숨어든다. 다른 것엔 무관심하다. 그래서일까? 공항을 나서면 볼 수 있는, 야자수 밑의 HELLO JEJU는 속 빈 인사 같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인사. 하늘로 날던 나의 기분도 회항하여 아득히 착륙 중이다.           

     

 

 101번 버스가 왔다. 가라앉는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려 급히 탔다. 창에 기대 도심 풍경을 무심히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은 하나의 사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풍경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했다. 도심의 빌딩들은 고개를 들어야, 그 끝을 볼 수 있다. 하늘은, 산은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 직사각형으로 조각나있다. 도시는 직각의 골이 파인 테트리스 게임 세상 같았다. 빌딩과 빌딩이 겹쳐 있는 곳에서는 조각난 산조차 볼 수 없다. 시선은 빌딩을 넘어 자연으로 갈 수 없고, 오히려 중첩되어 통유리에 갇혀버린 안과 밖의 풍경이 시선을 어지럽게 했다. 눈은 급격히 피로해져 아파왔다.     


 제주의 건물은 아담하다. 건물 뒤로 자연이 시원하게 보인다. 세잔의 풍경화 같다. 건물은 자연에 안겨있다. 건물은 자연을 가르는 칼이 아니라 자연의 요소였다. 눈은 즐겁다. 한눈에 풍경 전체와 요소 하나하나를 편히 볼 수 있어서. 풍경과 요소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조화 속에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이런 풍경은 온종일 보아도 피로하지 않다. 흐린 하늘이 아니라 청명한 하늘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상상해 봤다. 생기 가득한 색들이 반짝이는 풍경을.     


<비행기 착륙 전에 본 제주>

 세화에 있는 제주 해녀 박물관에서 21코스는 시작된다. 나의 올레 첫 출발지였다. 설레는 맘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의 두근거리는 첫걸음 같다. 올레는 오래전에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서울 둘레길이나 해파랑길은 내륙에 있어, 우리에게 친근한 교통수단으로 갈 수 있다. 전철이나 기차 또는 버스로 말이다. 일반적인 대중교통수단이다 보니,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제주는 비행기 아니면 배다. 둘 다 대중교통수단은 아니다. 특별한 날에 이용하는 특수한 교통수단이다. ‘특별한’과 ‘특수한’이라는 단어가 제주를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 심리적으로 멀게 했다. 맘을 먹는다고 해서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느낌은 없다.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주변에서 올레를 다녀온 사람을 봤다. 그건 자극이었다. 추상적인 개념이 구체화된 사물을 본 것 같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있는 올레를 현실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돌처럼 단단해졌다.      



 21코스는 마을 길, 해안 길, 지미봉을 중심으로 한 산길이 나무 제품의 모서리를 견고하게 맞물리게 하는 사개 물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먼저 마을 길이다. 마을 길에서 처음 만난 것은 검은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집들의 돌담이었다. 돌담은 미디어에서 많이 봐서인지 별 느낌이 없었다. 제주에 있다는 자각의 시그널일 뿐. 오히려 꽃들이 눈에, 마음에 들어왔다. 검정 돌담 아래에, 버스정류장 주변에, 밭담 아래 해맑게 핀 꽃들이었다.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는 말했다. 글을 쓸 때 '들판에 꽃들이 많이 피었다'라고 쓰지 말고, 어떤 꽃들이 피었는지 구체적으로 쓰라고. 이후 길을 가다 모르는 꽃들이 피어있으면, 인터넷의 꽃 찾기 기능을 이용해 알아보곤 했다. 마을 길에는 밝은 보라색의 송엽국, 노란 수술에 하얀 잎을 펼치고 있는 마거리트, 꿀벌을 연상시키는 노란 태양국이 피었다. 태양국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을 생각나게 했다. 밭에는 하얀 눈송이처럼 점점이 메밀꽃이 피었다. 또는 네 잎클로버처럼 생긴 하얀 잎의 끝에 연분홍이 수줍게 물들어 있는 무꽃도 있다. 이들 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찾기 위해 걸음을 멈춰 핸드폰으로 찍곤 했다.          


<태양국, 송엽국, 마거리트>

 

<무꽃, 메밀꽃>


 마을을 벗어나 밭 사이로 난 길을 걸을 때, 당황했다. 밭두렁 때문이었다. 육지의 밭은 흙으로 둘러막은 밭두렁으로 밭의 경계를 긋는다. 그러면서 밭두렁은 하나의 길이 된다. 그러나 제주의 밭은 현무암으로 된 돌담이 밭의 경계를 만든다. 육지의 흙으로 된 밭두렁만 보아온 나에게 이것은 무척 낯설었다. 돌이 많아서, 또는 바람을 막기 위해서 돌담이 필요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알려주었다. 밭을 고르다 보면 돌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 담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말이나 소가 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농작물 피해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무덤 주변에도 돌담을 둘렀다. 그리고 2코스 내수면을 걸을 때 본 ‘튜물러스’의 안내문을 통해, 밭에 있는 돌담을 ‘밭담’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주밭담은 천년의 역사를 이어 왔고, 구멍이 숭숭 뚫려 거센 바람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돌들의 아귀를 서로 맞물려 쌓았기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제주밭담은 2014년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밭담(우도), 무덤 돌담>

 

 21코스로 오는 버스 안에서 노래 한 곡만 들었다. Oasis의 <Don’t Look Back In The Anger>. 걷는 내내 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선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노래라는 장벽을 뚫고 귀속을 파고든 것이 있었다. 바로 새소리다. 도심에서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새소리였다. 그 소리는 그 순간의 어느 노래보다 좋았다. 매우 맑았다. 귀속을 깨끗하게 해주는 울음이었다. 새소리는 어느 한 곳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걷든 들렸다. 새소리를 들으며 걷을 때, 나 또한 자연의 일부분임을 기분 좋게 느꼈다.      


 마을 길은 하도 포구에서 끝난다. 더 정확히는 왜선을 막기 위해 설치한 별방진에서 끝난다. 별방진은 성벽이다. 지금은 바다로 향한 면의 성벽만 남았다. 젊은 연인이 성벽에 올라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도 올라 걸어본다. 검은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성난 해풍과 거친 파도에도 잘 견디며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내륙으로 향했을 성벽은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인간의 필요로 인해 허물어지고,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때론 필요 없음이 살아남은 조건일 수 있다.                 


<하도 포구와 별방진>


 별방진과 바다 사이에는 해안 도로가 길게 나아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난, 해안 길은 하도 해수욕장을 끝으로, 산길로 이어졌다. 아스팔트의 해안 도로에서 여러 생각이 피어오르고 사그라졌다. 계속되는 같은 풍경은 생각이란 모닥불의 장작이었다. 해안도로다 보니, 대부분 오른쪽은 밋밋한 평지이고, 왼쪽은 바다다. 잿빛 하늘을 이고 있는 바다. 이런 바다를 계속 보고 있으니, 마을 길을 걸을 때 느꼈던 재미는 없었다. 왜 그럴까? 마을 길은 미로처럼 골목들이 계속 꺾어있다. 그래서 다음 길의 풍경을 예상할 수 없다. 예상할 수 없으니, 궁금증과 기대감이 생겼다. 궁금증과 기대감이 마을 길을 즐겁게 했다. 이런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새소리라는 청각적 즐거움까지 더해져 재밌었다.     


<해안 길과 마을 길>

 

 반면 해안 길에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없다. 바다, 도로 그리고 밋밋한 평지. 전경이 탁 트여, 풍경이 충분히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궁금증과 기대감은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산길이나 마을 길을 걸을 때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다. 풍경이 계속해서 변하니 외부에 시선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해안 길은 생각이 깊어진다. 변화 없는 풍경은 완만하게 돌아도 바다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선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하게 된다. 생각으로 침잠된다. 어떤 생각을 했던가?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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