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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소년 Jun 19. 2024

2. 걷는 이유

21코스(하도~종달) 2

 360만 년 전의 일이다. 한 가족이 화산재로 덮인 길을 걸었다. 그리고 부부와 그들의 자녀, 이렇게 3명은 화산재에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 위로 다시 화산재가 쌓이고 쌓였다. 15cm 두께의 화산재에 덮인 그 발자국들은 결국 화석이 되었다. 1978년, 마침내 두꺼운 화산재 이불이 걷히자 화석은 빛을 보게 되었다. 탄자니아 라에톨리 유적이었다. 가족은 아파르 원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였다. 수렵 때문인지 화산폭발을 피하려 했기 때문인지, 하여간 가족은 걸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두 발의 직선 보행, 즉 직립보행이었다. 그들이 우연히 남긴 화석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발자국이 되었다.    

<360만 년 전 인류의 발자국/뉴턴과학 176 사진 참조>

 우리는 최소 360만 년 전부터 걸었다. 그리고 지난 세기까지 일반인들의 교통수단은 인간의 두 다리였다.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특별한 소수만을 위한 것이었다. 인류가 걸으며 지나온 긴 시간의 무게는 걷기를 압착하여 본능에 스며들게 했다. 빠름이라는 효율성으로 걷기를 최소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기차,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걷기는 오래된 유물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젠 가까운 거리도 차로 간다. 우리의 환경은 짧은 시간 동안 크고 빠르게 변했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에 몸이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시간의 어긋남으로 인해, 간혹 적응에 지친 몸은 기억을 더듬어 스민 본능을 꺼내곤 한다.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그 예가 지금 올레길을 걷고 있는 나다. 걷기가 유일한 목적인 걷기를 하고 있다. 하등의 경제적 이득과 효율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걷고 있다. 게다가 돈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해안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무엇이 날 걷게 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그래서 다다른 것이 360만 년 전의 화석이었다. 본능이라 생각했다. 해안도로를 본다. 도로는 검은 아스팔트로 길게 뻗어있다. 그 위로 차동차들이 달린다. 도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것이다.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도로 위를 원시적인 이동 방법인 두 다리로 걷고 있다. 이 풍경은 이질적이다. 우리 몸이 빠르게 변화된 현대의 환경과 어긋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사진 같다. 자동차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올레길을 걷는 증거사진은 현대에 대한 소소한 저항으로 또는 기계문명에 억압된 몸이 발현한 무의식적 욕망으로 읽을 수 있다.


 아차, 해안 길 전에, 중간 스탬프 이야기를 해야 했다. 중간 스탬프를 못 찍을 뻔했기 때문이다. 별방진에서 바닷가에 닿을 것 같던 길은 재차 마을로 새침하게 돌아섰다. 짧게 마을과 밭을 다시 돈 길은 드디어 바닷가 해안 길에 닿았다. 해안 길을 조금 걷다 보면 중간지점 스탬프를 찍는 곳이 나온다. 그러나 지나칠 뻔했다. 중간 스탬프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둘레길은 시작점과 종점에만 스탬프가 있다. 반면 올레길은 코스를 완주하지 않고, 시작점과 종점의 스탬프만으로 하는 허위완주를 방지하기 위해 중간지점을 하나 더 두었다. 이런 차이로 인해  중간 스탬프는 올레가 처음인 나에게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시작된 해안 길을 조금 걸으면, 해안 도로에서 바다로 나가 있는 반원형태의 공간과 만난다.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반원의 끝쯤에 철사로 엮어 만든 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어떻게 보면 뜬금없는 조형물이다. 조형물에 대한 안내문은 없었다. 왜 새 조형물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새는 가마우지 같았다. 검색해 보니 가마우지는 제주도에도 서식한다고 한다. 이곳이 새의 서식지였나? 모르겠다. 자세히 보니 잘 만들어졌다. 새를 형상화한 철사들의 흐름에서 바람이 느껴진다. 바람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눈동자는 살아있고 어디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을 쫓다 보니 바로 앞에 올레길을 안내해 주는 파랑, 주황의 리본이 보였다. 그리고 새 조형물의 물갈퀴를 받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간세였다. 간세의 형상은 제주 조랑말이고, 간세는 ‘게으름뱅이’를 의미하는 ‘간세다리’에서 따왔다. 천천히 즐기며 걸으라는 숨은 의미가 있다. 간세는 보통 시작점, 중간지점, 종점에 있고 스탬프를 찍는 곳이다. 간혹 길에서 작은 간세가 보이기도 한다.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간세다. 간세를 보고서야 중간 스탬프가 떠올랐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간세를 다시 봤다. 준비하면서 또는 시작점에서 봤던 간세와 조금 달랐다. 파란색이 아니었다. 많이 낡은 청록색이었다. 아마 철사로 엮은 새 조형물과 색을 맞추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알아보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곳에 중간지점을 알려주는 석다원이 있다. 그러나 석다원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원’이라는 글자가 있어 종교시설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맞은편을 보니 석다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식당이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석다원, 중간스탬프 찍는 곳>

 중간 스탬프를 찍고 걸었다. 뭍 가까운 바다에 주황색 부표들이 떠 있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바닷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해녀였다. 미디어로는 많이 봤지만,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근처 평평한 육지에 봉고차 한 대가 있고, 한 남자가 뒤쪽 적재함칸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볼까 하다 말았다. 이분들에게 물질은 생업인데, 나의 시선이 이분들의 생업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것 같아서였다. 오래전 DSLR을 처음 구입하고 안국동에 있는 북촌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북촌의 한옥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멋모르고 마구 찍었다. 어느 한옥에서 여성 한 분이 나오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그분을 보고서야 이곳이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진 이곳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한옥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민속촌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함부로 들이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누군가 생활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자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나의 사진 찍기로 인해, 그들의 소중한 공간이 싸구려 피사체가 되는 것 같아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찍더라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런 경험이 해녀에게서도 느껴졌다. 해안 길을 걸으며 해녀의 물질을 여러 번 보았지만 멀리서 볼뿐 그냥 지나쳤다. 때론 눈으로만 담아야 할 때도 있다.

      

<해녀의 물질>

 하도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몇 팀이 해변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서 도로를 건너면 산길로 들어선다. 길 어귀에 누런 보리밭이 있다. 솔직히 보리를 처음 보았다. 책으로만 보았던 보리를 보니, 내 지식은 실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체 없는 지식은 추상적이어서 실제와 틈이 생긴다. 틈을 생각하니 내 지식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진열장에 보기 좋게 전시된 상품, 보여주기식 지식 같았다. 틈을 메워야 내 지식에 대한 회의 또는 의혹은 지워질 것 같았다. 틈 메우기는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았다.    

 

<하도 해주욕장 / 보리밭>

 인가 없는 밭 사이로 난 길을 얼마 걷다 보면 시야를 꽉 채운 짙은 녹색의 무리가 걸음을 막아선다. 바로 지미봉 입구다. 내가 생각한 오름은 경사가 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었다. 경사가 너무 가팔랐다. 배낭을 메고 있던 나는 상체를 지면과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45도 각도로 숙이며 올랐다. 정상까지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나무들은 빽빽했고 허리를 펼 높이도 되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무릎이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순간, 힘듦은 말끔히 사라졌다. 풍경 때문이었다.  

   

 올라온 쪽은 나무들로 인해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을 뻥 뚫어주는 탁 트인 풍경은 반대쪽에서 펼쳐졌다. 오른쪽 해안가에 둥글게 솟아오른 섬 같은 것이 성산일출봉이다. 중간쯤, 길게 늘어져 고래가 머리를 성산일출봉 쪽으로 들어 올린 형상의 섬이 우도다. 정말 좋은 풍경은 밭이었다. 구획된 모양이 일률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굽어지고도 하고, 직선으로 그어지기도 하고. 모든 것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그 안에 초록, 황토, 검은색이 풀어져 있었다. 물감이 담긴 레트 같았다. 을 때는 밭들이 이룬 전체 모양을 볼 수 없어서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전체를 보니 밭들은 같은 밭이 아니었다. 밭의 색들은 채도가 조금씩 달라, 초록이라도 같은 초록이 아니었다. 짙거나 엷었다. 또는 짙음과 엷음 사이 어딘가에 있는 고유한 색을 띠고 있었다. 결코 같은 색은 없었다. 함께하니 그 고유함이 드러났다. 혼자라면 고유함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각각의 고유함이 어우러진 전체는 퀼트 같았다. 어떤 문양을 보여줬다. 한 조각의 천은 쓸모가 없다. 그러나 쓸모없는 것이라도, 천 조각들을 이으면 쓸모 있는 어떤 것으로 변한다. 거대한 하나의 문양이 된다.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이런 것은  멀리서 봐야 알 수 있다. 가까이 있다 해서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론 멀리 있어야 그 고유함을  볼 수 있다.

<카카오맵의 지미봉 스카이뷰(좌)/지미봉에서 본 풍경>

 내려오는 길 또한 가팔랐다. 오랫동안 해온 축구와 풋살로 인해 무릎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내려가는데 버티질 못하고 삐걱거렸다. 무릎에 보호대를 찼는데도 그랬다. 스틱을 가져올 걸 그랬나 보다. 사람이 없어 로프를 잡고 뒷걸음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무릎의 통증이 덜했다. 거의 다 내려오니 한 남자가 개를 데리고 오르고 있다. 나에게 특별한 이곳이 주민들에게는 그저 마을의 뒷산일 뿐이었다. 입구에 지미봉을 설명한 커다란 표지석이 있다. 읽고 지미봉의 의미를 알았다. ‘제주목의 땅끝에 있는 봉우리.’  

<21코스 종점간세/야자수나무/지미오름 표지석>

 평지를 걸으니 무릎이 편했다. 밭들이 보였다. 지미봉에서 전체적으로 봤던  밭들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고유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밭이었다. 가꾸지 않아 중간까지 누렇게 죽은 가지들을 걸친 야자수 나무들이 밭담 사이에 서 다. 그 가꾸지 않음이 너무 좋았다.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달리였다. 21코스 종점인

종달바당(바당은 바다의 제주도 방언이다)까지 얼마 안 걸렸다. 종점에는 한치를 파는 컨테이너로 된 상가가 하나 있었다. 처음으로 올레 한 코스를 끝낸 기념으로 사 먹을까 했다. 그러나 내일 목화휴게소에서 먹기 위해 스탬프만 찍었다. 그리고 시계를 봤다.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밤새 잠을 못 잔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결정해야 했다. 숙소로 가 쉴지, 1코스를 조금이라도 미리 걸을지.

(2024.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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