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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외돌개

7코스(제주올레여행자센터→서귀포 버스터미널, 12.9 Km) 2

by 커피소년

동너븐덕이었다. 언덕에 시선을 두면 큰 바위와 그 주변의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언덕의 중앙에 뾰족 솟아서 이정표 같기도 하고 돌무더기로 인해 돌탑 같기도 했다. 나도 작은 돌 하나를 집어 그것을 제일 높은 곳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바위의 정면과 측면엔 1937년 발표되었다는 박인수의 노래, ‘서귀포 칠십리’가사와 노래의 탄생 비화가 새겨져 있다.

<이정표 같기도 하고 돌탑 같기도 한 노랫말 비>

언덕은 넓었고, 바다로 툭 튀어나와서 바다에서 해안 절벽을 볼 때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언덕에서는 바다뿐만 아니라 올레길을 품은 해안 절벽을 일정한 거리에서 떨어져 볼 수 있었다. 올레길에서 벗어나 올레길을 보고 있는 느낌은 꿈속에서 공중에 뜬 내가 날을 볼 때 전해져 오는 느낌과 비슷했다. 낯설면서 신비로운 느낌. 또한 올레길의 해안에서 맞이한 개방감은 오직 바다를 향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의 개방감까지 더해져 시원함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았다. 비록 안개로 인해 시계가 많이 좁아져 전체적인 풍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흘러 다니는 안개가 지웠다 보여줬다 하며 서서히 변화시키는 수묵화 같은 풍경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시각적 즐거움 있었다.

<동너븐덕 사방 풍경>

이런 복합적인 좋은 느낌 때문에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 안개가 자욱한 데도 유람선은 청록색이 섞인 하얀 물길을 뒤로 남기고 앞으로 가고 있었다. 승객들이 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도 바위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유람선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해안 절벽의 굴곡을 따라 나무데크 길은 이어졌다. 나무들에 의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외돌개를 보며 걸었다. 외돌개 전망대에서 그것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외돌개는 12만 년 전에 일어난 화산으로 만들어진 용암 바위로 오랜 세월 동안 파도가 깎고 깎아 지금의 외돌개를 만들었다. 물론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계속되는 파도의 침식으로 외돌개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을지도 모른다. 외돌개에는 두 개 전설이 스며있다. 하나는 최영 장군과 연관되어 있다. 고려말 원나라 세력을 물리칠 때 잔여 세력이 범섬으로 들어갔는데 최영 장군이 외돌개를 거대한 장군으로 꾸몄고, 이 모습을 보고 두려워한 잔여 세력은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장군석’으로도 불렸다. 또 하나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기다림에 지쳐 돌로 굳어 외돌개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망바위’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외돌개 밑에 물에 떠 있는 듯한 바위가 있는데, 이것은 할머니가 돌로 변한 후 할아버지의 시신이 떠올라 돌로 된 것이라고 한다. 외롭게 홀로 서 있어서 외돌개라 불리는 그 형상에서 무서운 장군이나 간절한 기다림의 할머니가 연상되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봐도 고개를 번쩍 든 물개가 떠올랐다.

<외돌개>

다시 나무들로 인해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내 움직임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져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는 외돌개를 보며 걸었다. 외돌개 안내판이 또 보였다. 좌우 방향, 어디서나 볼 수 있게 여러 개가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돔베낭길에서 봐야 할 언덕과 바위가 그려진 약도를 보며, 지나오며 내가 본 것들을 확인했다. 무근덕과 기차바위는 못 봤다. 글을 쓰기 위해 약도를 다시 봤다. 동너븐덕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동너븐덕 사진을 찾아보니 있었다. 기차바위가. 그리고 기차바위 위쪽에 육지와 연결된 긴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우두암이었고, 우두암이 시각된 곳이 무근덕이었다.

<우: 동너븐덕에서 본 기차 바위와 우드암 그리고 무덕근>

외돌개 안내판이 있는 곳은 잘 정비된 넓은 공원이었다. 동너븐덕 전에 있던 약도로 보면 이곳이 서너븐덕인 것 같았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 할머니가 투신하는 장면을 찍었다는 곳에 장금이 포토존이 있었다. 여기서도 당연히 외돌개가 보였다. 이곳에서 본 외돌개는 영국의 신사 계급이 쓴 탑햇이라는 모자 또는 마법사 모자를 닮았다. 쇠머리코지는 포토존에 조금 더 내려가야 했다. 그곳에서 외돌개와 안개에 잠기고 있는 동너븐덕이 보였다. 길은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올라갈 때 서너븐덕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초록의 토끼풀들 사이로 작은 길이 나 있고, 사람들은 마실 다니듯 걸었다. 쉴 수 있는 몇 개의 정자와 몇 그루의 나무, 그 뒤로는 하얀 안개가 나머지 풍경을 지우며 여백이 되었다. 주의는 하얀 여백을 가득 찬 수채화였다.

<외돌개와 대장금 포토존>
<쇠머리코지와 서너븐덕>

길은 서너븐덕에서 벗어났고, 그 길의 도라간덕에서 바다로 나온 뾰족하게 나온 서너븐덕의 쇠머리코지가 보였다. 나는 그 절벽보다 안개가 서린 바다에 눈이 갔다. 안개에서 무서운 무언가가 나타나는 상상을 절로 했다. 영화 ‘미스트’가 떠올랐다. 안개 속의 괴물 출현으로 인한 인간의 공포 또는 두려움, 그 속에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행동 그리고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배드 엔딩, 운명의 차갑고 비정한 면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영화였다. 그 영화가 떠오르니 바다의 안개가 두려웠다.

<도라간덕에서 본 쇠머리코지 / 영화 미스트를 연상시키는 안개긴 바다>

작은 군락을 이룬 소나무들을 지난 길은 나무데크에서 나무 난간과 돌담으로 잘 만들어진 박석의 길이었고, 이곳은 JW리조트 울타리 길이었다. ‘언벵이안여’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출입 금지였고, 이어지는 계단 아래에서 ‘언벵이안여’의 상단 옆모습을 살짝 보았을 뿐이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간 곳을 '언벵이안'이라 하고,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바위나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를 ‘여’라 말한다. ‘언벵이안여’은 언뱅이안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그 바위는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언벵이안여, 그러나 안개로 보이지 않았다>

박석이 깔린 길은 계속되었다. 외돌개 안내판을 지나쳤다. 4~5개나 되는 외돌개 안내판을 보며 이곳에서 외돌개의 위상을 새삼 알게 되었다. 공간이 열린 곳마다 쇠머리코지의 측면이 보였다. 웅크리고 바다를 응시하는 귀여운 동물 같았다.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해서 영화 미스트를 또 떠올리게 했다.

<외돌개 안내판과 멀리 쇠머리코지가 보인다>

이후 오른쪽으론 현무암으로 잘 쌓은 축대가 지나는 이를 보호하며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길은 사유지 통과 불허로, 오른쪽으로 꺾여 ‘60 빈즈 카페’ 영업 구간을 우회했다. ‘베토벤이 주는 60가지의 감동’이라는‘60 빈즈 카페’를 지날 때는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나갔다. 사유지에 길을 내주어 올레가 끊기지 않게 해준 것만으로도 올레 순례자에게는 감동이었다. 카페를 벗어나 걷고 있는데 이상한 안내판이 보였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것인데 가운데 눈이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챗GPT에 물어봤다. ‘출입 금지’라는 답이 나왔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디자인일 뿐이고, 가운데에 출입 금지라고 쓰여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운데 있는 눈이 ‘출입 금지’를 의미하는 기호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줄이 쳐진 이곳은 사유지라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회로인 60빈스 카페 / 출입 금지 표시?>

길은 집들이 있는 도로로 나와서, 다시 바로 사람 키보다 높은 돌담과 돌담 사이로 좁게 나 아래로 내려갔다. 시간은 짧았지만, 이곳을 지날 때 공간이 좁고 시야마저 줄어서 그런지 조금 답답함이 느껴졌고, 참호를 지나는 느낌이었다. 흐린 날이기에 이런 느낌을 받은 건인지도 모른다. 맑은 날이었으며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다시 열린 공간-해안 길이었다. 뒤돌아보니 여전히 쇠머리코지가 보였다.

<돌담 사이 길 / 여전히 쇠머리코지가 보인다>

올레길은 먼 풍경만 다채롭지 않았다. 길을 호위하는 풍경도 다채로웠다. 나무 울타리였다가, 돌담이었다가, 나무와 덤불이었다가, 이 둘이 양옆에서 서로를 이은 작은 터널이었다가, 확 열린 공간으로 언덕에 야자수 나무들이 멀대처럼 서서 쭈뻣쭈뻣하기도 했다. 돔베낭골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짧은 길에서 이 다채로움을 볼 수 있었다.

<돔베낭길의 풍경>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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