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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Jan 08. 2024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빈곤 청소년을 바라보다

하루한권독후감 20240106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20240106] 강지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돌베개, 2023.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시절이다. 다들 자기 먹고 살기에 바쁘고 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가끔 의식화의 발로인지 타인을 향한 연대와 연민이 어줍잖게 섞인 생각이 들곤 하지만 결국에는 '내 코가 석 자'라는 자기연민에 그런 생각은 곧바로 흩어진다.     


이런 시대에 빈곤은 더욱 고독함과 외로움의 둥지가 된다. 수십 년 전, 모두가 빈곤했던 시절의 동지의식은 경제성장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와 달리 성장하지 못한 이들을 향한 '빈곤은 너의 책임, 너의 탓'이라는 차가운 눈초리만 횡행한다. 그리고 그 냉랭한 시선은 어른을 넘어 아이에게도 공평하다. 아니, 어찌 보면 더 가혹하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는 8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이 중에는 저자가 만날 당시 청소년이었던 인물도 있고 저자가 10년 넘게 청소년부터 서른에 이르기까지 지켜본 인물도 있다.    

  

중학교 때의 방황을 멈추고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졸업한 소희는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우울감에 시달린다.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에 알바를 전전하며 학업도 병행하는 영성은 자신에게 손을 벌리는 가족들을 미워하면서도 좋은 아빠를 꿈꾸며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길 바란다.   

    

저자가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해온 10여 년의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영감과 영향을 준 사람(92쪽)"이라고 할 정도로 기구한 빈곤의 삶을 적극적으로 극본한 지현은 빈곤에 대한 여러 편견에도 자신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장점이자 기회로 삼으려 긍정적으로 사고했고 결국 결혼해 자신만의 가정을 꾸렸다.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을 방치하는 가정환경 속에서 연우는 다행히도 진학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고 그 진로에 대한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나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아교육을 전공해 유치원 교사로 취직한 수정은 정작 취직한 이유에도 고스톱에 빠져 살고 대포통장을 만드는 아픈 어머니를 챙기느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절도와 폭행으로 1년 동안 소년보호시설에 있었던 현석은 스무 살에 출소한 뒤 범죄의 수렁으로부터 벗어나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착실히 노동했다. 이십대 후반의 현석은 "가끔씩, 진짜 가끔씩, 내가 전에 진짜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177쪽)"라며 과거를 반성한다.      


교사조차 관심을 주지 않는 특성화고등학교의 현장실습체계에 실망해 자신이 대접받을 수 있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만의 가게를 차릴 생각을 하는 우빈은 다른 무엇보다 '돈 좀 만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목표다.     


일찍 학교를 자퇴한 후 자존심이 적어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스스로 끈기가 없다고 토로하면서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은 혜주는 오랜 방황 끝에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저자는 소희의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 우울감에 대해 "일상적으로는 너무 오랫동안 돌봄에서 방치되어 있었고 가난으로 인한 낙인을 받아왔다. 게다가 이런 방치와 낙인감이 조부모 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면 그 무기력과 절망감은 서서히 학습된 것(38쪽)"이라며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는 아마티아 센의 발언을 인용한다.     


영성에 대해 저자는 "내가 연구를 하면서 만난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가족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62쪽)"며 그러한 애틋함의 원인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지목한다. 저자는 "심성이 고운 영성은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별 갈등 없이 받아들였고 청소년기에 화목한 가족을 강렬하게 그리워했던 만큼 하나의 이상향으로 세운 것"이라며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정상가족에 대한 결핍감을 심하게 느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배타성과 고립감을 철저히 경험했다는 뜻(65쪽)"이라고 분석했다. 즉, 빈곤 청소년이 화목한 가정을 바라는 까닭은 "정상가족 프레임 밖에 있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반응(66쪽)"이라는 얘기다. 자신의 가족은 누릴 수 없었던 그 정상가족이 어린 시절 내내 그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으로 군림해왔을 터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저자는 지현에 대해 "나라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런 일념으로 살아올 수 있을까 싶은 강인함이 있었다"며 전략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지현은 "'생존하는 나'를 넘어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나'를 추구할 줄 알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풍부했다. '빈곤'은 그저 나를 둘렀나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개인의 부족함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뛰어넘"었기에 그러한 지점이 "가장 강인한 면(95쪽)"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저자는 지현에게는 '성찰하는 힘'이 있었다며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빈곤층의 어려움 속에서 지현의 '도움 요청'과 '성창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훌륭한 전략(99쪽)"이라고 평한다.     


저자는 연우에 대해 "자아정체감 형성에서는 다양한 경험과 교육적 자극이 중요한데,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이런 부분에서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124쪽)"며 빈곤 청소년 중에서도 청소년을 위한 공공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는 매우 잘 성장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연우는 그러한 참여 없이도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는 중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연우가 혼자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점에 주목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강조한다. 저자는 "연우가 보여준 이러한 주도성과 자율성이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형성된 자아정체감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127쪽)"고 분석한다.      


저자는 수정에 대해 "빈곤가족이라는 연좌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가난한 가정의 자녀 세대는 (청년층의 고용불안뿐만 아니라) 가난한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이중고를 짊어지고 있는 셈(157쪽)"이라고 말한다. 또한 가족 공동체 중심의 인식체계로 인해 부모가 자식이 고부가가치 산업에 진입하는 스펙을 쌓는 동안 지원하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이런 구조하에서 빈공층 청년들은 출발선부터 불평등한 구조 아래 놓인다(158쪽)"고 지적한다.     


저자는 청소년 시절 범죄를 저지른 현석에 대해 자신의 이십 년 전 제자를 소환한다. 중학교 3학년 때 검찰 출두 통보까지 받은 그 제자는 현재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며 잘 살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청소년 범죄의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는 셈(188쪽)"은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 교정 시스템의 부실함과 과장된 인식 역시 비판하며 "모든 성장과 변화가 성공적이고 찬란하진 않기 때문에 한때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충분히 줘야 한다(192쪽)"고 말한다.     


저자는 돈 좀 만지는 사람을 꿈꾸는 우빈에 대해 "어릴 때부터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부족해서 많은 어려움과 결핍감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자신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수중의 현금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221쪽)"고 얘기한다. 이는 앞서 얘기한 정상가족을 향한 열망과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빈곤 청소년의 현금 갈망에 대해 청소년의 노동이 힘든 구조에서 이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며 범죄로 유혹하는 문제와 장기적인 안목보다 당장의 현금을 위해 알바를 전전하는 문제를 꼽는다.      


저자는 혜주에 대해 학교 밖 빈곤 청소년의 경우 가족 내에서 형성되지 못한 자존감이 또래관계에서도 형성되지 못한 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들이 "낯선 사람들, 보통의 궤도를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오는 괴리감과 낙인감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깊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 힘들어한다(250쪽)"고 설명한다. 여기에 학교 밖 청소년을 향한 사회적 낙인과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노린 범법의 손길이 작용해 이들의 홀로서기를 방해한다. 저자는 "혜주의 사례에서 보듯이 누구나 언젠가는 방황을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기 마련(256쪽)"이라며 이들의 홀로서기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책에 나오는 8명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들었던 공통적인 생각은 어찌되었든 이들은 결국 저자가 인터뷰를 할 시점에서 각기 처한 어려움이 있다곤 하더라도 아예 삶이 무너질 정도의 위기에는 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몇몇 인물의 경우 삶에 대한 단단한 태도가 매우 인상 깊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저자도 지현의 경우에서 '성찰하는 힘'을 언급하면서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97쪽)"이라고 설명한다. 연우의 '사색하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일테다.     


그러한 단단한 내면을 지니게 만드는 성찰하는 힘, 사색하는 시간은 온전히 개인의 성정에 달린 것인가. 그렇다면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유구한 격언은 기실 옳은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단한 내면과 성찰하는 힘은 단순히 빈곤 청소년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이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경쟁과 금전적 가치만을 최우선하는 현실 속에서 학교만이 최후의 울타리로서 내면과 성찰의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허나 사실 학교야말로 현실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이고 학교 밖은 그러한 내면과 성찰마저도 성과가 없으면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하는 마당에 학교라고 별 도리가 있을까도 싶다. 결국에는 사회 자체의 대대적인 의식적 변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건 시민사회로서의 일부로서 정당이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삶과 정당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정치가 개개의 사안에 도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상의 영역부터 큰 그림을 갖고 개인의 일생과 맞닿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뭐 내 생전에는 그럴 일이 없을 것도 같지만 일단 방향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 결과는 결국 빈곤을 포함해 개인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신장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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