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탐구
만란의 솔직한 말
만란이 내일 타이동(臺東)으로 이사를 떠나면서,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자기 집에서 먹자며 나를 초대했다. 이삿짐 챙기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저녁 준비할 마음이 어디 있어서 초대하는 건지 좀 감동스럽다. 만란은 독일 아가씬데, 자기는 전생에 대만에서 산 적이 있는 것 같다며, 대만을 아주 사랑한다. 대만에서 베지테리안 프라이빗 키친(私人厨房)을 열어 먹고살 수 있기를 꿈꾼다. 한마디로 그녀는 요리를 아주 예쁘고 맛나게 잘한다. 그녀의 초대를 받아 그녀가 손수 만든 저녁을 먹는다는 것은 셰프급 요리를 대접받는다는 뜻이다.
만란은 친구들이 자기가 보자고 해야만 모이고, 먼저 자기를 보자는 사람이 없다며 섭섭하다고 했다.
“절대 그렇지 않아. 나는 게을러서 먼저 나서서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는 귀찮아서, 네가 만나자고 자리 만들기를 얼마나 기다린다고. 섭섭해하지 마.”
같은 시기에 입학한 외로운 외국인 동창 몇을 묶어 단체톡을 만든 것도 만란이고, 유난히 날씨가 좋은 날이면 피크닉을 제안하는 것도 만란이고, 오늘처럼 특별한 저녁을 준비하는 것도 만란이다. ('외로운 외국인'이라고 하는 것은, 대만사람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가족, 친척, 초·중·고·대학 친구, 직장 친구 등 사회망이 넓은 자국민에 비하면 외국인들은 대만에 머문 몇 년 동안 만든 몇몇 가닥의 관계망이 끝이다. 이런 의미에서 외로운.)
만란의 이 솔직한 말을 듣고, 내 속 어디가 다 시원해진다. 언젠가부터 은숙에게 연락을 하면, 내 연락이 달갑지 않은지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답이 오고, 한 번도 먼저 연락해 오지 않는 상태에 기분이 상해있었다. 이런 일로 투덜거리면 참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누구한테 말하기는 거북하면서 혼자 기분은 나쁜 것이다. 그런데, 만란의 이 말에 속이 뻥 뚫린다. 그렇지? 그거 기분 나쁜 거 맞지? 봐, 이런 일 기분 나쁠 일이 맞잖아! 그리고는 유치한 다짐을 한다. '그래, 네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 나도 연락 안 해!' 나도 그런 친구쯤은 필요하지 않다고.
일부러 고독
그러는 김에, 지난 여름방학부터 일부러 고독하겠다고 친구를 능동적으로 찾아 만나는 일을 하지 않고 산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평가로 보이는 나'가 아닐 때 나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인지 조용히 살펴서 '내 내면의 진짜 나'를 탐구해 보는 중이다. 로버트 그린의 책 <인간 본성의 법칙>에 이런 글이 있다.
'독방에 감금된 죄수들이나 외딴 지역에 고립됐던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과 유리된 느낌을 받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인격이 해체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러처드 E. 버드(Richard E. Byrd)의 <혼자서(Alone)>를 보면 저자가 남극에 고립되었던 5개월간의 처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은 흔히 정교한 환각에 시달린다.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눈이다.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라는 개념을 형성했다. 어머니가 내 시선을 되돌려주는 것을 보며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었다. 어른이 되어서 우리는 나를 보는 타인의 눈을 통해 똑같은 확인과 자아 개념을 비언어적으로 경험한다. 우리는 결코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장기간의 고립이 필요하다.' *
남들은 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채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내게 뭔 철학적 돈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내가 어떤 짝을 원하는지도 알 수 있겠지 않나 싶어서 시작한 탐구다. 나, 이제 짝이 좀 갖고 싶어 졌거든. 언젠가 학교 상담사로부터 "넌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데? 넌 어떤 스타일을 찾고 있는데?“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것을 알고 당혹감을 느꼈었다. 일단 그걸 알아야 찾아진다고들 한다. 그래, 일단 세상 사람들을 끊고 고독한 내가 되어 보는 중이다.
* 출처 : 로버트 그린(2019). 인간 본성의 법칙. 고양시: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