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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Jun 02. 2024

아줌마 잘 가요

    이번 학기의 목요일은 졸업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한 학기 중국어 수업을 참관하느라 점심 먹을 시간이 좀 부족하다. 점심시간은 1시간인데, 오전 수업을 참관하고는 뒷정리를 하고 나와야 하고, 오후 수업은 일찍 가서 컴퓨터를 켜고 프로젝트를 켜는 등 수업 준비를 해야 해서 사오십분의 틈밖에 없다.  

    맛있는 걸 먹겠다고 줄 서서 기다린다면 시간부족으로 허겁지겁 먹어야 하고, 집에서 해먹기도 시간이 좀 빠듯하다. (내가 사는 곳은 학교랑 초절정으로 가까워서 어떨 때는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라면을 끓이는 정도라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빠를 때도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사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로 고르다 보니 한 아줌마가 수레를 끌고 와서 파는 대만식으로 개조한 스파게티 비슷한 국수를 사 먹는 날이 많다. 

    이 아줌마는 곤궁한 생활의 냄새가 지극히 나는 모습으로, 그러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간절한 폼으로 장사를 한다. 그녀가 장사를 시작하고부터 나는 꾸준히 사 먹는 편이기 때문에 그녀는 나를 기억한다. 내가 자주 사 먹는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는 표정이다. 어쩐지 내가 가면 야채를 더 많이 얹어주는 것 같다. 오늘도 뚜껑을 눌러 닫아야 될 정도로 야채를 잔뜩 올려준다. 그리고 그녀 딴에는 아주 친절하게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 만쪼우(阿姨慢走[āyí mànzǒu], 아줌마 잘 가요)."


    난 내심 쓴웃음이 나고 만다. 나는 대만에서 완전히 나이를 잊고 지낸다. 대학가 근처에 살아서 언제나 내가 보는 사람들은 다 젊은이들이다. 그냥 젊은 정도가 아니라, 막 대학생이 된 갓 스물의 아이들을 본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그 나이인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한마디 '아이 만쪼우(阿姨慢走)'로 '아! 나, 중년이구나!'를 일깨워 받는다.


    우리가 어느 음식점을 자주 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꼭 '음식 맛이 좋다'만 이유가 아니고, 그냥 주문하기 편해서일 수도 있고, 음식이 깨끗해서일 수도 있고, 영양가를 생각해서 가끔은 그걸 먹어줘야 해서 일수도 있고, 음식점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줘서 일 수도 있다. 

    이 노점 스파게티는 여사장이 반갑게 맞아줘서 인데,  내게 '아이 만쪼우(阿姨慢走)'로 인사를 보내는 바람에, 난 다시 한번 더 그 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다시 가기가 망설여질 듯하다. 유치하지만. 

  홍또우탕(紅豆湯[hóngdòu tāng])이랑 탕위엔(湯圓[tāngyuán]) 등을 파는 노점가게 남자 사장은 '샤오지에, 수야오 선머(小姐需要什麼[xiǎojie xūyào shénme], 아가씨 뭐 드려요)?'하고 항상 나를 '샤오지에(小姐[xiǎojie])', 아가씨)라고 부른다. 후투(糊塗)면 가게 여사장과 모든 직원도 나를 알아보는데, 큰소리로 언제나 반갑게 날 샤오지에(小姐)라고 부른다. 

    "쩌 샤오지에 이 완 후투미엔!(這小姐一碗糊塗麵[zhè xiǎojiě yì wǎn hútúmiàn], 이 아가씨 후투면 한 그릇!)"


    '아이 만 쪼우(阿姨慢走)'를 듣는데 내게 인사를 보낸다는 느낌보다 '너, 애 아니거든'을 알려주기 위해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공격적으로 들렸다. 칭호가 이렇게 중요할 수 있다. 그녀는 칭호를 너무 제대로 정직하게 쓰는 바람에 '중년인지 잊고 사는' 고객 하나를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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