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일이 많은데, 사람들이 우루룩 에스컬레이터로 몰려갈 때, 나는 혼자 몰래 웃으며 일부러 계단을 선택한다.
'나, 아직 젊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즐거워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같은 거 탐하지도 않는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타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나는 그러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봐, 난 당신들 50과 달라. 당신들은 50쯤이면 이제 앉아 있어도 될 만한 나이고, 누군가 다른 젊은이들이 일어나길 바랄 테지만, 난 누구보다 건강해서 자리를 양보해 준다고.'
나는 나의 노화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날마다 거울을 보지만 내가 어느 정도 늙어 보이는지를 잘 모른다. 그러다, 내가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렀던 사람들만큼 늙어다는 것을 언제 슬프게 깨닫느냐 하면. 한 십여 년간 안 보던 텔레비전을 어쩌다 보게 될 때, 내가 전에 알고 있던 연예인들이 팍싹 늙은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는 것이다.
"쟤, 왜 저렇게 늙었데?"
얼굴 팔아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저 정도면, 가꾸지 않는 나는 더할 것이 아닌가 말이지. 나는 거의 십 년 가깝게 한국 텔레비전을 안 봤기 때문에, 한 번씩 켜진 텔레비전에서 내가 전에 알던 연예인을 발견하면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초라하게 늙어있다.
노화를 먼산 보듯 즐길 수 있는 심사가 되면 좋겠지만, 나는 유치해서 아직도 그게 잘 안된다. 늙는 일이 힘들지 않으면 좋겠다. 좌석을 양보하고, 계단을 오르며 '나, 늙지 않을 테야'하고 마음이 너무 버티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