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2차 왕자의 난

by 무딘

“이 어리석은 자를 용서하소서, 금운신이시여!”


대석공이 청색 망치로 자물쇠를 후려치자마자,

‘찌이이이이이이이잉!’ 날카로운 고주파의 쇳소리가 승천문 광장 전체를 가득 메웠다.


‘누와아아웅.’


암석 마물들이 고통스러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헐레벌떡 귀를 막았다.


‘철컥!’


망치에 맞고 미세하게 진동하던 회색 자물쇠는, 이내 걸쇠가 풀리더니 스르륵 미끄러져 떨어졌다.


이어 또다시 망치를 치켜드는 대석공.

이번엔 두 문이 만나는 틈을 향해 힘껏 망치를 내리쳤다.


‘쾅! 쾅! 쾅!’


3번째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자동차 유리에 금이 가듯 승천문 전체로 미세한 균열들이 어지럽게 퍼져나갔다.

그러다 일순간 박살 나며 조각들이 우르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유리 같은 게 승천문을 덮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쏟아지는 조각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대석공.

그러다 끝났다는 듯 마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얼굴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자, 열렸다! 가자!”


마제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한쪽에 엎드려 있던 암석 마물들이 벌떡 일어나, 승천문을 향해 일제히 뭔가를 던졌다.

마물의 팔에서 뻗어 나온 덩어리가 찍찍이처럼 문에 달라붙었다.

마물들이 반대로 잡아당기자, 둘 사이에 이어진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어 유니를 포박한 마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도 승천문을 향해 덩어리를 던지는 모양이었다.

마물에 가려져 더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옆쪽의 다른 마물들도 하나같이 비슷한 줄을 쥐고 있는 게, 모두 같은 짓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당겨라!”

‘누웅! 눗! 누웅! 눗!’


순간 일제히 줄을 잡아당기는 암석 마물들.

박자를 맞춘 그들의 기합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끼끼기기끼!’


잠시 뒤, 쇳덩이 찢기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


“아, 안돼...”


뚫어져라 포털의 행렬을 지켜보던 비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소보다 2배는 커진 그의 눈동자는 붉은 핏줄로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헉, 헉, 헉.”


정신없이 섬뢰를 쏜 리가 무릎을 짚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리의 번개를 맞고 순식간에 많은 포털이 부서졌지만, 단번에 전부를 부술 순 없었다.

어찌나 많은지 다 부수고도 꽤 많은 포털이 남았다.


그나마 쪼개졌던 포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복원됐고, 깨지지 않았던 포털과 뒤섞여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잠깐만 지나면 원래 상태 그대로, 거대한 문의 벽이 리와 비토를 내려다봤다.


벌써 3번째 시도였지만 리의 에테르가 점점 약해지는 건지, 부서지는 포털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기만 했다.


“리, 이 방법도 아닌 거 같아.”

“헉, 헉, 헉...”


허리를 펴며 땀을 닦아내는 리.

단기간에 너무 많은 에테르를 사용한 때문인지, 호흡이 쉬 안정되질 않았다.


“휴우, 휴우, 고작 섬뢰를 쏘고 휴우, 이리 힘들 줄이야...”

“무리했어, 리.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오늘 하루만 해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


비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리.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호흡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하, 진짜, 도대체 어느 문으로 나가야 하는 거야.”


비토가 충혈된 눈이 아픈지 연신 눈을 비벼대며 투덜거렸다.

길게 심호흡을 하며 리가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차례차례 포털을 훑어봤다.

눈으로 봐서는 도무지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중간계에 뭔 일이 터졌을 텐데. 이거 여기서 나갈 수가 없으니. 아우 짜증 나!”

“중간계... 휴우.”


비토가 뿅망치를 꺼내 들더니 마구잡이로 허공에 휘둘러댔다.

호흡을 고르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리.


그래, 틀림없이 중간계에 뭔 일이 생겼을 텐데.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어떻게 그걸 알아내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어디로 나가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무슨 원격 안테나도 아니고.


인상을 쓰며 콧잔등을 찌푸리는 리.

순간, 돌아서는 대사제의 뒷모습이 리의 뇌리를 스쳤다.


‘전자기력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어요. 기술이 절정에 이르면 다른 세계의 낙엽 떨어지는 것조차 감지할 수 있죠. 집중의 문제랍니다. 집중.’


“집중의 문제...”

“응? 그게 뭔 소리야? 갑자기 웬 집중?”


의아해하는 비토를 무시한 채, 어금니를 깨무는 리.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길게 심호흡을 한 리는,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계르디달타, 무제아니.”


순간 리 주위로 에테르가 훅 모여들며 리가 3단계 상태로 변신했다.

등 뒤 태양에서 검은 망토가 뻗어 나왔고, 리의 주홍 머리카락에서 두 갈래의 땋은 머리가 삐져나오더니,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길어졌다.


리 키의 5배는 넘게 길어진 땋은 머리는, 순간 V자 형태로 일어서더니 갑자기 올올이 풀어져 둥그렇게 펼쳐졌다.

꼭 거대한 안테나를 만들듯이.


좌우로 조금씩 돌며 균형을 잡던 리의 ‘머리카락 안테나’는, 이내 포털 벽을 바라보며 멈췄다.


순간 눈을 번쩍 뜨는 리.

그의 눈에서 주황색 불꽃이 이글거렸다.


“자, 찾는 거야, 중간계의 문을! 집중!”


리의 모습을 보고 옆에서 비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


‘텅!’


도일에 부딪힌 가로등이 빨대처럼 구겨지며, 전등이 바닥에 처박혔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가로등에 기대앉는 도일.

왼쪽 어깨에선 피가 울컥 흘러내렸고, 몸 여기저기가 벌겋게 부어있었다.

‘쿨럭’ 기침을 하자, 입에서 피로 뒤엉킨 어금니가 튀어나왔다.


도일의 앞으로 악어 마물이 쇠기둥을 뻗은 채 서 있었다.

그가 휘두른 기둥에 도일이 정통으로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그의 뒤로 마물이 두 마리나 더 서 있었다.

나머지 둘은 도일에게 당한 듯 길가에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하하, 쿨럭, 역시 5대 1은 무린가.”


악어 마물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 도일.

그때, 악어 마물 하나가 공중으로 붕 뛰어올랐다.

머리 위로 굵은 쇠기둥을 치켜든 마물은, 도일의 머리를 향해 쇠기둥을 힘껏 내리쳤다.


“쾅!”


순간 옆으로 몸을 굴러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도일.

원심력을 이용해 바로 돌려차기를 했다.

도일의 발에서 나온 반달 모양의 에테르가 쇠기둥을 내리친 마물의 목을 가로로 갈랐다.

‘푸확’ 용암이 튀며 마물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에구구.”


공격에는 성공했지만 기운을 완전히 소진한 듯, 도일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더니, 이내 바닥에 엎어졌다.

엎드린 자세로 숨을 헐떡거리는 도일.

그러다 더는 안 되겠는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그를 둘러싼 노란색 에테르가 깜빡깜빡거리더니, 전등이 꺼지듯 완전히 사라졌다.


“하아, 하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하늘을 바라보며 배가 쑥 들어가도록 숨을 헐떡거리는 도일. 하늘 위로 익룡 같은 마물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또 한 마리의 악어 마물이 뛰어올라 자신을 향해 쇠기둥을 던지는 것도 보였지만, 더는 피할 의지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하, 일류 탐정으로 환생하고 싶었는데...”


얼굴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는 쇠기둥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 도일. 그러다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한 일을 다 한 사람처럼 표정이 평온했다.


‘탱!’


그때 쇠끼리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도일의 코 앞에서 들렸다.


“응?”


천천히 눈을 뜨는 도일.

엉뚱하게도 얻어맞아 여기저기 부어있는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커다란 거울 같은 것에 얼굴이 반사되는 것이었다.


“뭐야?”


고개를 돌려 거울을 따라가 보는 도일.

건물 만한 거대한 실루엣이 커다란 도(刀)를 자신의 앞으로 내려 세우고 있었다.

두툼한 반월 모양의 도였는데, 아마도 그걸로 마물의 쇠몽둥이를 튕겨낸 모양이었다.


“반월... 도? 설마 천승님?”


커다란 반월도를 치켜들자, 날에 반사된 햇빛이 실루엣의 얼굴을 살짝 비췄다.

역시나 8개의 푸른 점이 대머리 가운데 가지런히 찍힌 남자, ‘수운신의 보디가드’ 천승이었다.


그는 구름으로 만들어진 말, 운마(雲馬) 위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힘을 개방했는지 덩치가 거의 5층 건물만큼 커져있었다.


“수련이 부족하구나, 도일.”

“아아, 스승님...”


도일의 눈에서 반가움의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푸드드드드.’


운마가 콧바람을 내쉬자, 천승이 반월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순간 미끄러지듯 마물들을 향해 달려드는 운마.

‘으쌰’ 기합 소리와 함께 천승이 거대한 반월도를 휘두르자,

천등의 등장에 넋이 나갔었던 악어 마물들이 두부 조각 잘리듯 단숨에 두 동강 났다.

그들이 들고 있던 쇠기둥까지.


그 모습을 보고 주변에 있던 다른 마물들이 겁을 먹고는, 무기를 던지며 달아났다.


“감히 누가 나의 중간계를 어지럽히는가?”


그때, 중년 여성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중간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동시에 하늘의 거의 10분의 1을 가릴 만큼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인이 중간계 하늘에 등장했다.


짙은 하늘색 도포 위로 11자 영대를 가슴 앞에 드리운 여인은, 흰머리가 희끗거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채 두둥실 공중에 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탁구공 크기의 물방울 수백만 개가 깨알처럼 허공에 맺혀 반짝거렸다.


그렇다, 중간계의 운영자, 수운신이었다.


*


“흥, 노인네, 빨리도 나타나셨구만.”


하늘 위 수운신의 뒷모습을 보며, 마제가 혼잣말을 했다.

잠시 그녀를 보며 콧잔등을 찌푸리던 마제가, 다시 승천문을 향해 돌아섰다.

갑작스러운 수운신의 등장에 암석 마물들은 당황한 듯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뭐 해! 이럴 거라고 했잖아! 여긴 ‘그분’께서 정리하실 테니까, 어서 당겨!”


마제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암석 마물들이 ‘누웃, 눗’ 다시 박자에 맞춰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끼끼기끼, 쿠우웅!’


합을 마쳐 쉴 새 없이 줄을 잡아당기자, 승천문의 두터운 문짝이 결국엔 종이 찢어지듯 찢어지며 바닥에 엎어졌다.

먼지가 가라앉자, 활짝 열린 승천문 너머로 명천계의 도시가 어른거리며 보였다.


“자, 열렸다, 들어가자!”


마제가 소리치자, 찍찍이 팔을 거둬들인 암석 마물들이 우르르 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암석 마물들을 필두로,

하늘을 날아다니던 오랑우탄 형상의 마물,

화염구를 여기저기 뿜어대던 익룡 형상의 마물,

가장 먼저 승천문 광장에 도착한 ‘낫을 든 해골 마물’들이 우르르 승천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끼야야악!’

‘으아악!’

“마, 마, 마물이다!”


갑작스레 승천문을 통해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천계 영혼들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천계 침공’을 알리려는 듯, 하늘로 날아오른 익룡 마물이 사방으로 화염구를 뿜어댔다.


‘펑’, ‘퍼벙’ 소리와 함께 화염구에 맞은 천계의 영혼들이 여기저기로 튕겨져 나갔다.

돌 떨어뜨리기 장난이라도 하는 듯, 오랑우탄 마물이 천계 영혼을 낚아채더니 하늘로 올라가 던져버렸다.


‘으아아아악!’


마물의 공격을 보고는 천계의 영혼들은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성당 중앙 공원으로 이어지는 대로임에도,

길이 영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상태라,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기만 할 뿐 제대로 달아나지도 못했다.


꽉 막힌 길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대다수의 영혼들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마물들을 바라봤다.

눈치 없이, 하늘에선 에테르 입자가 눈송이처럼 아름답게 흩날렸다.


멀리 유니콘을 탄 천계병 몇몇이 출동했지만, 상대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허겁지겁 기수를 돌려 대성당 쪽으로 달아났다.


“으흠, 천계의 이 구린내. 중간계보다 더 지독하구만.”


어느새 커다란 화염 드래곤을 타고 천계로 진입한 마제가, 고삐를 당겨 드래곤을 멈춰 세웠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는 대성당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난 마경의 공격으로 부서졌던 대성당의 지붕은, 복구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듯 페인트칠만 덜 된 상태였다.


“저게 ‘천계의 탑’인가? 저기서 ‘집마석(集魔石)’을 태우면 된다 이거지?”


마제가 ‘오벨리스크’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막 승천문을 통과해 들어서는 마물 무리가 보였다.

‘가마’처럼 생긴 ‘들것’의 네 다리를 나누어 붙잡은 이들은, 총총거리며 중앙로로 걸어가고 있었다.


들것 위에는 대충 깎아낸 듯한 커다란 붉은색 수정이 묶여있었다.

반투명한 수정안에는 아주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는데,

수억 마리는 족히 넘을 벌레들은 심지어 수정 속에서도 살아있는 듯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자, 길을 열어라!”


‘끼아악!’

‘누와웅!’


마제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마제의 등장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마물들이, 다시 천계 영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암석 마물들은 길을 막는 영혼들을 향해 앞장서 뛰어올랐다.

마물에게 짓밟힌 영혼들이 팝콘 터지듯 터졌다가,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이들의 앞으로 멀리 대성당 옆에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가 보였다.



굴뚝처럼 생긴 오벨리스크에선 초록색 오로라가 신비롭게 피어올라, 하늘의 비단 구름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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