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서 ‘집마석(集魔石)’을 태우면 된다 이거지? 자, 길을 열어라!”
마제가 오벨리스크를 바라보며 명령을 내리자,
마제의 등장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마물들이, 일제히 영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암석 마물들은 대로를 막고 선 영혼들의 위로 훌쩍 뛰어올라, 이들의 머리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들이 연 길을 따라 집마석을 실은 ‘들것’이 천천히 이동했다.
‘슈우웅, 쾅, 쾅!’
‘끼야아악!’
화염구 공격을 시작으로, 커다란 ‘ㄱ’ 자 낫을 뽑아 든 해골 마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둥만 있는 집 속으로 뛰어든 해골 마물들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듯 거대한 낫을 무자비하게 휘둘러댔다.
날카로운 낫에 맥없이 두 동강 난 영혼들이, 거품을 물고 신음하다 이내 입자로 흩어졌다.
한 집을 정리한 해골 마물은 메뚜기처럼 다른 집으로 뛰어들어 같은 짓을 반복했다.
집을 나가지도, 사람에 막혀 도망치지도 못한 영혼들은, 마물들의 공격을 그저 맞을 수밖에 없었다.
‘끼아악!’
꽉 막힌 길 여기저기로도 해골 마물들이 뛰어들었다.
공간이 조금만 확보되면 바로 낫을 휘둘러 영혼들을 솎아냈다.
마물들이 앞으로 걸어 나갈 때마다, 분해된 영혼들의 잔해가 카펫처럼 쌓여 길을 이뤘다.
“살려줘!”
“비켜!”
“으아악!”
민간인과 특수 부대의 대결처럼, 여기저기서 마물들의 일방적인 학살이 계속됐다.
몇몇 마물들은 건물 기둥을 일부러 무너뜨려 영혼들이 깔리게도 하고,
달아나는 영혼들의 꽁무니를 쫓아가다 일부러 한쪽 다리만 자르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입에서 불을 뿜어 영혼을 새까맣게 태우기도 하고, 골프 하듯 영혼을 바닥에 눕혀놓고 머리만 때리는 마물도 보였다.
한쪽에선 마제의 눈치를 봐가며 몰래 영혼을 먹는 마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암형계의 마물과는 상극인 듯 먹자마자 마물의 배가 ‘펑’ 터져버렸다.
배가 앞뒤로 뻥 뚫린 마물을 보고 다른 마물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뿌우우 뿌, 뿌우우! 뿌우우 뿌, 뿌우우!’
그때, 대성당 쪽에서 나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천계군에 구조를 요청하는 신호가 틀림없었다.
그 소리에 마물들이 잠시 주춤거렸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천계군이 나타나기는커녕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서로를 보며 킥킥거리던 마물들은, 이내 다시 학살을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싱거워! ‘천계의 저항’인가 뭔가가 지독할 거라더니, 뭐, 아무것도 없잖아.”
건물 안으로 뛰어든 암석 마물이 돌덩이 같은 주먹으로 영혼을 내리치며 투덜거렸다.
그의 이마엔 뾰족한 뿔이 튀어나와 있었다.
유니를 등에 포박한 거구 마물도 같은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영혼들을 발로 짓밟았다.
깨부수는 쾌감도 잠시,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영혼들을 보며 슬슬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그러게, ‘천계의 탑’인가 뭔가 뺏는 것도 어렵지도 않구만. 사방이 온통 등신들 뿐이야. 피똥 싸가며 훈련한 시간이 아깝다, 아까워.”
뿅망치로 두더지 잡기를 하듯, 한쪽에 뭉쳐있는 영혼들의 머리를 주먹으로 ‘다다닥’ 내리친 뿔 마물이, 자기 주먹을 잠시 쳐다봤다.
손가락 하나가 부러지고 없었다.
“‘천계의 저항’이고 뭐고 다 뻥카아냐? 천계군과도 싸울 거라더니, 싸움은 개뿔 코빼기도 안 보이는구먼.”
“겁먹고 도망쳤나 보지. 큭큭큭. 아니, 애초에 천계군이 세다는 것도 다 구라였나?”
바닥에 용암을 ‘퇴’ 뱉은 거구 마물이 다음 집을 향해 돌아서려는데, 순간 뿔 마물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어차피 이 지경인데, 서두를 거 없잖아. 우리 그거나 먹자. 언제까지 달고 다닐 건데.”
뿔 마물이 고갯짓으로 유니가 묶인 등 주머니를 가리켰다.
거구 마물은 집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마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큭큭, 그럴까. 슬슬 배도 고프던 참이었는데.”
“중간계서 잡았으니, 배탈 날 일도 없을 거 아냐.”
뿔 마물이 포박된 유니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침을 흘렸다.
“그렇지. 그럼 한 입 남겨줄 테니, 망이나 좀 봐. 먹다가 마제한테 걸리면 대갈통 날아간다.”
씩 웃으며 ‘휙’ 기둥 위로 올라서는 뿔 마물. 미어캣처럼 고개를 뽑아 들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안심한 거구 마물이 등 주머니를 풀어 유니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마물 몸에서 나오는 유황 냄새에 마비된 건지, 유니는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스으읍, 햐, 맛있겠다.”
쓰러진 그녀를 보고 거구 마물이 침 같은 용암을 뚝뚝 흘렸다.
*
“이럴 리가!”
머리카락 안테나를 활짝 편 채, 포털 벽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왜? 어떤데?”
“없어, 다른 점이. 하나 같이 다 똑같아. 다른 게 느껴지는 문이 단 하나도 없다고.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리가 혹시나 싶어, 포털 월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도 안테나를 돌려봤다.
포털 월 위로 올라가 포털 뒤쪽도 살펴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나가는 문이라곤 대형 스크린처럼 길게 늘어선 이 포털들이 유일했다.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고? 자세히 본 거야?”
“봤어. 몇 번이고 다시.”
“뭐야, 다 가짜라면 진짜 문이 없다는 거야? 혹시 다른 데 있는 거 아냐?”
“휴우... 없어. 아무리 둘러봐도...”
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테나처럼 둥글게 펼쳐져 있던 리의 머리카락이 ‘투둑’ 끊어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더 찾을 것도 없었지만, 더 이상 찾는 건 에테르 낭비였다.
“아, 진짜 모르겠다. 이게 다 가짜라니. 이 많은 게 다 가짜라면 진짜는 어디 있다는 거야. 몽마, 이 나쁜 자식, 도대체 나가는 포털을 어디다 숨겨놓은 거야!”
비토가 거의 울부짖으며 또다시 뿅망치를 휘둘러댔다.
그 모습을 보며 리가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집중의 문제랍니다. 집중.’
그때, 또다시 대사제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리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집중했다고요, 다 살펴봤다고요. 하지만 어디에도 없어요. 어디에도 나가는 문이 없다고요.”
‘집중의 문제랍니다. 집중.’
“도대체 뭐에 자꾸 집중하라는 거야. 뭐 다른 게 있어야 찾지. 다른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찾냐고! 다른 게, 다른 게...”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리가, 순간 뭐가 떠올랐는지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낮고 길게 퍼지던 고래의 울음소리,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던 두 발, 보라색으로 이글거리건 ‘몽마의 태양’이, 순간 리의 뇌리를 스쳤다.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공기의 감각마저 되살아나 뒷목을 타고 닭살이 솟았다.
“아!”
그 모습에 놀란 비토가 얼른 리의 앞으로 날아왔다.
“왜? 뭐? 뭐 찾은 거야?”
“다른 거...”
“다른 거? 다른 문?”
“아, 그래, 왜 이걸 놓쳤을까.”
자책하듯 자신의 이마를 검지로 쿡쿡쿡 찌르는 리.
“왜? 뭔데, 리.
다른 문이 있었던 거야?”
“아니, 다른 거, 다른 점. 우리가 처음 ‘몽마의 세계’로 들어왔을 때와 지금, 달라진 거!”
리를 쳐다보며 실눈을 뜨는 비토.
턱에 손가락을 댄 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리를 쳐다봤다.
“설마! 중력?”
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손을 위로 펼치며 에테르를 끌어올렸다.
초록색 불꽃이 리의 손 위에서 거세게 타올랐다.
“비토, 들어와!”
리의 신호에 얼른 리의 스카프로 숨는 비토.
리가 에테르를 끌어올리자. 이번엔 리의 몸 전체가 초록색 불길에 휩싸여 거세게 타올랐다.
동시에 리 주변의 중력이 순식간에 높아졌다.
그러자 직사각형으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던 포털 벽이 지진이라도 난 듯 정신없이 흔들거렸다.
“자, 가! 어서 가라고!”
리가 고함을 지르며 한 번 더 에테르를 끌어올리자, 리의 몸이 노란색으로 훅 타올랐다.
그러자 나란히 펼쳐져 있던 문들이 우수수 아래쪽으로 떨어지더니, 소용돌이를 이루며 바닥으로 끌려 내려갔다.
마치 틀어놓은 물이 욕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크기가 줄어들며 끌려가는 포털들 아래로, 검은 틈 같은 게 스르륵 나타났다.
물을 빨아들이는 하수구 구멍처럼, 검은 틈은 쏟아지는 문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저기다!”
놓칠 새라, 리가 엄청난 속도로 검은 틈을 향해 돌진했다.
*
“감히 누가 나의 중간계를 어지럽히는가!”
중년 여성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중간계 전체를 진동하며,
하늘의 거의 10분의 1을 가릴 만큼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수운신이 중간계의 하늘에 등장했다.
짙은 하늘색 도포 위에 11자 영대를 드리운 그녀의 주위로,
탁구공 크기의 물방울 수백만 개가 깨알처럼 허공에 맺혀 반짝거렸다.
‘우워어어...’
그녀의 압도적인 위용에 마물들이 겁을 먹고 신음을 내뱉었다.
몇몇 마물들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건물 속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어디 더러운 암형계의 용암을.”
주변을 둘러보던 수운신이 손을 ‘휙’ 휘젓자,
수운신 주변의 물방울들이 총알처럼 날아가 중간계 하늘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던 익룡 마물을 꿰뚫었다.
‘끼야아아악!’
순식간에 몸에 수천 개의 구멍이 뚫린 마물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수운신이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자,
물방울들이 서로 뭉치며 송곳 모양의 우박으로 변하더니, 지상의 마물들을 향해 쏟아졌다.
“크아악!”
“키약!”
“아아악!”
마물들이 혼비백산 달아났지만, 우박은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궤도를 바꿔가며 따라가 마물들을 공격했다.
우박에 맞은 마물들은 머리가 깨지고,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 뚫리고, 어깨와 허벅지가 일격에 박살 났다.
수운신이 손을 들어 올리자 바닥에 떨어졌던 물방울들이 다시 하늘 위로 일제히 솟아올랐다.
마물의 피를 머금은 물방울들이 하늘에 붉은 안개를 만들었다.
“웃샤!”
한편, 지상에선 수운신의 보디가드 천승이 거대한 반월도를 휘저어 가며 마물들의 행렬 사이를 질주하고 있었다.
승천문을 향해 줄 지어가던 마물들이 두부 잘리듯, 순식간에 두 동강 났다.
한 줄의 마물들을 배고 나면 훌쩍 건너뛰어, 다른 무리들을 공격했다.
반월도를 휘두를 때마다 마물들의 몸이 폭죽처럼 ‘퍼버벙!’ 터졌다.
‘우우우우.’
갑작스러운 중간계의 반격에 기세등등하던 마물들이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다.
몇몇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벌벌 떨었고, 몇몇은 멈춰 선 채 오줌을 지렸다.
대다수의 마물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멍하니 수운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심한 암형계의 벌레들 같으니. 고작 이런 실력으로 나의 세계를 침범했단 말인가!”
수운신이 인상을 쓰며 다시 한번 손을 내리긋자, 하늘을 한 바퀴 빙 돈 물방울들이 또다시 우박으로 변해 지상으로 쏟아졌다.
마물의 피를 맛본 물방울들은 이전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운 곡선을 그리며 마물들을 향해 날아갔다.
“화륜(火輪)!”
전의를 상실한 마물들이 넋을 놓고 있는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수십만 개의 화염구가 날아오더니 쏟아지는 우박을 쫓아가 그대로 충돌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수증기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마물들이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한가운데 수만 개의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게 두둥실 떠 있었다.
바퀴들은 빠르게 돌며 화염구를 쏘아댔다.
“오랜만이군 사제, 킁.”
그때, 암형문을 등지고 수운신처럼 하늘의 10분의 1을 가릴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한이 나타났다.
닌자처럼 몸에 달라붙는 붉은색 도복을 입은 거한은, 가슴 앞으로 11자 모양의 금색 영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는 스르륵 미끄러져 날아와 수운신과 마주 섰다.
“화운...”
그렇다, 암형계를 다스리는 광폭한 불의 신, 화운신이었다.
뭐가 좋은 건지, 그는 수운신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의 등 뒤, 거대한 ‘ㄱ’ 낫에선 붉은 화염이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화운신의 모습을 보고, 잔뜩 위축되어 있던 마물들이 ‘우워어! 우워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화운! 이 무슨 무도한 짓인가. 어찌 감히 세계의 질서를 거스르려 하는가. 정령 일자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가!”
수운신이 노기가 가득 찬 눈빛으로 화운신에게 소리쳤다.
“킁, 서운한데. 오랜만에 만난 사형을 이토록 박대할 줄이야.”
화운신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침을 ‘퇴! 퇴!’ 뱉었다.
그러자 커다란 화염 두 덩어리가 바닥에 ‘쿵, 쿵’ 떨어졌다.
뭉쳐져 있던 화염 덩어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새빨간 화염 갑옷으로 둘러싸인 전투병 두 마리가 만들어졌다.
건물 5층은 넘을 커다란 덩치의 두 마물은 어딘가를 향해 곧장 달려갔다.
그 끝에 반월도를 휘둘러대는 천승이 보였다.
“킁, 때가 무르익은 게야. 이 세상의 근본을 다시 그릴 때가. 우리는 그저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을 뿐이고. 킁.”
“어리석도다! 광운과 그대는 또다시 무모한 짓을 반복하려 하는가!”
“그때도 지금도, 모든 건 결과가 말해 주겠지. 우리가 어리석은지, 킁, 네놈들이 뒤처졌는지.”
“‘그것’ 때문인가, 이리 자신하는 게? 세상은 결코 당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리라!”
“글쎄 두고 보자구. 어디로 바람이 흐르는지.”
“흥! 그전에 나 수운부터 넘어서야 할 걸세. 예전의 내가 아니야!”
“후후, 어렵지 않지. 킁.”
‘구구구구궁’ 공기가 거칠게 진동하는 소리를 내며 서로에게 다가선 두 신은, 양팔을 앞으로 내밀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마치 힘겨루기라도 하듯이.
‘퍼버벙!’
물과 화염이 기운이 충돌하며 거칠게 폭발했고, 지상으로 강렬한 물보라가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