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골, 개골’
조용한 환생의 숲 광장.
개구리 한 마리가 철퍽거리며 광장 위를 뛰어다녔다.
이리저리 눈을 굴려 가며 한창 먹을 것을 찾는데, 갑자기 광장 바닥이 ‘부르르’ 떨렸다.
진동에 화들짝 놀란 개구리는, 허겁지겁 뛰어가 대나무 숲으로 몸을 숨겼다.
‘쏴아아아!’
점점 커지는 진동에 대나무들이 흔들리며 거친 파도 소리를 내더니, 이젠 벽면에 붙어있던 환생문들 마저 마치 태풍이라도 부는 듯 덜컹거렸다.
거대한 비행기가 다가오는 것처럼 진동과 바람은 점점 거세지더니, 이내 쏟아지던 폭포마저 경로를 잃고 사방으로 튀었다.
‘터덩!’
순간, ‘몽마의 세계’로 이어지는 문에서 검은 덩어리가 튀어나와, ‘쿵’ 소리를 내며 광장 중앙에 내려섰다.
덩어리가 일으킨 바람에 환생문 문짝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덩어리의 주홍빛 머리카락도 본인이 일으킨 바람에 요란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멈춰서 너울거렸다.
“됐어! 나왔어! 나왔다고!”
덩어리의 옷에서 뚱뚱한 토끼 한 마리가 쑥 빠져나오더니, 주먹을 치켜들며 탄성을 질렀다.
웅크린 자세를 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덩어리. 그렇다, 드디어 ‘몽마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리였다.
눈을 감은 채 호흡은 고르는 리.
짙은 유황 냄새와 피비린내가 환생의 숲을 둘러싼 공기에서 훅 느껴졌다.
“흑안(黑眼)!”
리가 눈을 감은 채 주문을 외우자, 주황 머리카락 사이에서 두 갈래의 땋은 머리가 또다시 쭈욱 뻗어 나왔다.
동시에 리의 눈앞으로 중간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검은 배경에 하얀 윤곽선으로 이뤄진 도시 곳곳에, 수만 개의 초록, 노랑 에테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얼마 전 탐색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이질적인 에테르였다.
오발탄의 에테르 흐름과 비슷한 게, 필시 마물들의 그것이 분명했다.
“젠장, 몽마 이 자식. 이러려고 나를...”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니와 일권의 흔적부터 찾는 리.
당한 건지 아니면 숨은 건지, 환생관리국에서도, 중간계 거리에서도 그들의 에테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젠장, 어디 있는 거지? 설마 당한 건 아니겠지?”
“리, 저기, 연기가...”
비토의 이야기에 번쩍 눈을 뜨는 리.
멀리 환생의 숲 입구 쪽으로 검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인상을 쓰며 콧잔등을 찌푸린 리는, 단숨에 우거진 대나무 숲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중간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올라가자,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인 둘이 하늘에서 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파란색 한복을 입은 흰머리의 거인과, 붉은 도복을 입은 근육질의 거인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에테르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로 안개인지 화염인지 모를 물질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폭발하고 있었다.
“대박, 수운신이야. 그때 병실에서 봤던 그 할머니. 신으로 변신했나 봐.”
비토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리.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느껴지는 에테르만으로도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에테르가 리의 내면에도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녀 덕에 리의 에테르도 안정될 수 있었으니까.
“상대는 누구지?”
수운신과 상대하는 거구를 쏘아보며 리가 물었다.
“흠, 암형문이 열린 걸로 봐선, 암형계의 광마나 화운신 아닐까? 이런! 형계의 마물들이 중간계로 쳐들어왔나 봐.”
비토가 활짝 열린 암형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암형문에선 아직까지도 마물들이 꾸역꾸역 중간계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으악!”
“끼야악!”
비명 소리에 얼른 신들에게서 시선을 거둬 도시를 바라보는 리.
중간계의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버섯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서 마물들에 공격당해 희미해져 가는 영혼들이 느껴졌다.
심판국과 환생관리국 앞에서도 마물들과 힘겹게 싸우는 감찰사들이 보였다.
“젠장,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야!”
리가 에테르를 끌어올리며 아래를 봤다.
심판국으로 이어지는 ‘용의 길’ 위에서, 마물들이 막 중간계로 들어온 영혼들을 물어뜯으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리가 흰자위를 보이며 눈을 거꾸로 뜨자, 순간 리의 눈앞으로 수백 개의 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촛불을 끄는 듯한 남자의 사진에서, 리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얼른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는 리.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폭열공명(爆熱共鳴).”
그러자 리의 속삭임이 미세한 공기 입자를 진동시키며 물결처럼 옆으로, 옆으로 퍼져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흔들림은 순식간에 지상까지 퍼지더니, 용의 길 위 마물들에까지 전달됐다.
진동이 마물들의 뜨거운 몸에 닿자마자, ‘쩌적!’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진동에 닿은 마물의 어깨, 다리, 몸통이 작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연쇄적으로 터졌다.
“크아악!”
용의 길 위, 여기저기서 피부에 미세한 폭발이 일며 마물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영문도 모른 채 동료들이 폭발로 죽어가자, 마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폭열공명, 폭열공명, 폭열공명.”
방향을 바꿔가며 이리저리 폭열공명을 쏘아 보내는 리.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마물들이 폭발하며 쓰러졌다.
꽤 많은 수의 마물들을 제거했지만, 이 방식으로 처리하기엔 남은 마물의 수가 너무도 많았다.
“이걸로는 부족해.”
눈썹을 치켜세우며 어금니를 깨무는 리.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다.
“토류장창!”
순간 바닥 전체가 커다란 파도처럼 ‘꿀렁’ 하더니, 중간계 곳곳에서 죽순 같은 뾰족한 흙기둥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그 개수가 수백 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분화(分化)!”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는 리.
그러자 하늘에서 ‘쩌적, 쿵!’ 엄청난 크기의 번개가 내리치더니, 수백 줄기로 갈라져 흙기둥 위로 내리 꽂혔다.
‘펑’ 소리와 함께 번개에 맞은 흙기둥은, 겉면의 흙이 날아가며 ‘사람 형상’의 흙만 남았다.
마치 번개를 이용해 진흙 조각이라도 한 것처럼.
‘흙 조각’의 등 뒤로 작은 태양이 지지직거리는 게, 리의 모습과 똑같았다.
“가라!”
리가 소리 지르자, 눈을 번쩍 뜨는 수백 명의 분신들.
등 뒤에서 ‘전검(電劍)’을 뽑아 들더니 주위의 마물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리 못지않은 강력한 힘으로 저항하는 마물들을 하나, 둘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푸흡!”
그때, 리가 갑자기 피를 뱉어내더니, 오른쪽 가슴이 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리! 왜 그래!”
놀란 비토가 리를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얼른 왼손을 부푼 가슴 위에 얹은 채, 거칠게 호흡하는 리.
다행히 가슴은 더 커지지 않고 조금씩 작아지다,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휴우, 휴우, 괜찮아. 좀 무리했더니 에테르의 운용이 틀어졌나 봐.”
“진짜, 오늘 하루에 힘을 너무 많이 썼어. 리, 어디 가서 좀 쉬어야 해.”
허리를 숙인 채 연신 호흡을 고르던 리가, 허리를 치켜들며 하늘을 바라봤다.
여전히 하늘에선 거대한 두 신이 양손을 맞잡은 채 에테르 충돌을 벌이고 있었다.
“휴우, 휴우. 괜찮아, 괜찮아진 것 같아. 휴우우, 저 싸움만 마무리되면 잠시 쉬자고.”
연신 깊은 호흡을 반복하는 리.
호흡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변을 내려다보니 리의 분신들이 곳곳에서 거침없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좋아, 일단은. 이제 저놈만 제압하자고.”
허공에서 눈을 감은 채 길게 심호흡을 하는 리.
에테르가 다시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게 느껴지자, 번쩍 눈을 뜨며 주문을 외웠다.
“보르디름, 아카사이레. 보르디름 아카...”
“여기는 내가 정리한다! 그대는 명천계를 도우라!”
리가 막 4번째 단계로 변신하려던 그때, 중년 여성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중간계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멈칫하며 얼른 수운신을 바라보는 리.
그녀가 리를 돌아보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어서! 가거라!”
수운신의 호통에 콧잔등을 찌푸리는 리.
동쪽 끝, 승천문을 바라보자, 문이 뜯겨 나간 승천문 안쪽으로 마물들이 꾸역꾸역 들어가는 게 보였다.
“와, 설마, 천계까지 공격한 건가. 이것들이 미쳤네, 진짜. 저기 봐봐, 리.”
비토가 망원경으로 멀리 하늘에 떠있는 ‘천계의 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가 시선을 옮기자, ‘천계의 성’ 위로 희미하게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때, ‘천계의 성’ 안쪽에서 꺼질 듯 희미했지만 분명히 구분되는 에테르 하나가 느껴졌다.
주먹을 치켜들며 당장이라도 때릴 듯 위협하던, 작고 귀여운 얼굴 하나가 리의 눈앞을 스쳤다.
“유니 선배!”
‘퍼벙’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리가 승천문을 향해 로켓처럼 튀어 나갔다.
리가 스쳐간 자리마다 공간이 기이하게 뒤틀려 꿈틀거렸다.
*
“어라, 저게 뭐야?”
미어캣처럼 기둥 위에서 망을 보던 ‘뿔 마물’이, 멀리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순간 ‘펑’ 소리와 함께 ‘거구 마물’의 옆구리에서 빛이 ‘번쩍’ 빛났다.
“크윽!”
피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고통과 함께, 거구 마물의 옆구리에서 하얀 스파크가 지지직거렸다.
손을 돌려 빛 덩어리를 움켜쥔 거구 마물은, 덩어리를 떼어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용암과 뒤엉킨 빛 덩어리가 유니의 눈앞에서 잠시 반짝거리다 곧 사라졌다.
“누와웅, 아프잖아!”
인상을 쓰며 벌떡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구 마물’.
백색의 커다란 날개를 좌우로 활짝 펼친 병사가, 멀리서 자신을 향해 장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의 도자기 빛 갑옷이 태양에 반사돼 하얗게 빛났다.
그의 뒤로 비슷한 복장의 병사들 여러 명이 V자를 이루며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천계군이다!”
“드디어 천계군이 왔어!”
천계 여기저기서 영혼들의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쳇, 타이밍 하고는...”
하늘에서 ‘펑, 퍼펑!’ 총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다른 방향으로도 총을 쏘는 모양이었다.
거구 마물이 잠시 유니를 내려다보다, 아쉬운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얌전히 있어라. 바로 돌아올 테니까.”
잠시 유니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휙 몸을 돌려 하늘로 뛰어오르는 마물. 그의 등에서 진흙 같은 날개가 쭈우욱 뻗어 나오더니, 천계군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뿔 마물도 그를 따라 날아올랐다.
“지, 지금이야! 도망쳐야 해.”
마물들이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유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 몇 걸음 못 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유황의 마취 효과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유니. 그러다 고글을 더듬어 통신 버튼을 눌렀다.
“일권 선배! 들려요? 일권 선배! 일권 선배! 나와봐요, 제발 좀!”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일권을 찾았지만, 고글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젠장, 되지도 않는 거!”
고글을 벗어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리는 유니.
바로 비상 포털을 소환하려 손목을 더듬는데, 아뿔싸, 어딘가에 떨어뜨린 듯 레이어 워치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 씨, 진짜, 최악이야.”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연신 머리를 흔드는 유니. 그래도 안 되겠는지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정신 차려 유니! 정신 차리라고! 호랑이 굴에 떨어져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정신만...”
그때 유니의 시야에 무너진 건물 기둥 사이, ‘작은 틈새’가 보였다.
바닥에 만들어진 개구멍 크기의 틈이었다.
혹시나 싶어 틈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는 유니.
무릎을 굽혀 안을 들여다보자, 빛이 새들어오는 안쪽은 텅 비어 사람 하나가 누워있을 공간은 돼 보였다.
“오케이!”
서둘러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는 유니.
반쯤 들어가는데, 등에 맨 가방이 구멍 입구에 걸렸다.
힘겹게 가방을 벗어 발로 밀어내고는, 구멍 속으로 마저 기어 들어갔다.
1.5미터쯤 들어가자, 몸 전체가 쏙 가려졌다.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쉬자, 얼굴 앞으로 먼지가 훅 일었다.
“콜록, 콜록, 젠장, 콜록”
안쪽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윗몸일으키기 자세로 몸을 뒤집는 유니.
발 밑으로 입구가 보였는데, 하필 벗어 놓은 가방이 입구를 반쯤 가리고 있었다.
‘나 여기 숨었소’ 알려주는 꼴이었다.
“쉽게 되는 일이 없네, 진짜.”
유니는 입구 쪽으로 다가가 오른쪽 발을 쭉 뻗어 가방끈에 걸었다.
다리를 굽히자 가방이 조금씩 끌려왔다.
“오케.”
조금씩 발에 끌려오던 가방은 순간 뾰족한 곳에 걸렸는지 주르륵 지퍼가 열렸다.
개의치 않고 유니는 가방을 마저 잡아당겼다.
가방이 구멍 안으로 완전히 숨겨지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 됐어 이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편안한 자세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입구 왼쪽에서부터 자그마한 뭔가가 쪼르르 걸어 나와, 틈새 안쪽을 들여다봤다.
“앗!”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유니.
그것은 캉캉이였다.
가방에 캉캉이가 들어있던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지퍼가 열리며 캉캉이가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캉캉! 일루 와! 캉캉! 어서!”
연신 박수를 치며 캉캉이를 부르는 유니.
그녀의 맘도 모른 채, 캉캉이는 입구 앞에 서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때, ‘쿵!’ 바닥이 울리는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캉캉이가 휙 뒤를 돌더니, 빠르게 꼬리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