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캉! 일루 와! 캉캉! 어서!”
연신 박수를 치며 캉캉이를 부르는 유니.
캉캉이가 틈새 입구에 선 채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갑자기 ‘쿵’ 바닥이 울리는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어서! 캉...”
흠칫 놀라며 동작을 멈추는 유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뚫어져라 입구 밖을 바라봤다.
유니를 등지고 선 캉캉이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다 ‘휙’ 돌아서더니 쫄랑거리며 유니 쪽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렇지, 캉캉이, 언니야.”
시선은 입구 쪽에 고정한 채, 나지막이 속삭이며 손을 내미는 유니.
캉캉이가 다가와 유니의 손바닥을 핥았다.
‘쿵, 쿵, 쿵’
입구 밖에서 발 구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아마도 거구 마물이 이곳저곳 뒤지며 유니를 찾는 것이리라.
“뭐야! 토낀 거야?”
“아이 씨, 몰라. 그새 도망쳤나 봐!”
“안 먹고 아낄 때부터 내 이럴 것 같더라니.”
입구 밖에서 테두리가 뭉개진 듯 먹먹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마물들은 유니가 숨은 곳을 발견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유니는 숨소리마저 죽인 채 계속해서 입구를 노려봤다.
“멀리 못 갔을 거야. 찢어져서 찾자구.”
마지막으로 ‘쿵’ 소리가 한 번 더 나더니, 갑자기 밖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입구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유니가 침을 꿀꺽 삼켰다.
모래 먼지 때문인지 입안이 써그럭거렸다.
“간, 건가...”
한참을 더 기다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유니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입구 밖에선 아득히 멀리서 들리는 비명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입구에서 시선을 거둬 캉캉이를 보는 유니.
어디가 간지러운지, 캉캉이가 유니의 손바닥에 대고 연신 몸을 비벼댔다.
“휴우우. 짜식아, 큰일 날 뻔했잖아.”
유니가 손가락을 빗 모양으로 만들어 캉캉이의 등을 긁어줬다.
그게 기분 좋은 듯 캉캉이가 배를 까고 누웠다.
“짜식.”
그 모습이 귀여워 모처럼 웃는 유니.
자기도 모르게 ‘휴우’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아, 됐어, 잠깐만 쉬자.”
유니가 안쪽 벽에 다시 머리를 기대며 편하게 누우려는 그때, 갑자기 캉캉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입구를 향해 ‘캉!’하고 짖었다.
“안돼! 쉿!”
얼른 캉캉이를 부여 안고 입을 막는 유니.
잔뜩 긴장하며 입구를 바라보는데, 순간 입구 앞으로 ‘검은 형체’가 쓱 나타났다.
역광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붉은색 눈이 번쩍이는 게 틀림없이 마물의 얼굴이었다.
그는 안쪽의 유니가 보이는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여기 숨은 거 나는 알고 있었지, 이 쥐새끼. 크크크”
마물이 얼굴을 뒤로 빼자, 이마 가운데 난 뿔이 얼핏 보였다.
‘뿔 마물’이 캉캉이가 틈새로 들어가는 걸 봤으면서도, 저 혼자 먹으려 모른척했던 거였다.
“젠장!”
얼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져나갈 곳을 찾는 유니. 하지만 사방이 꽉 막혀 도망칠 곳이 보이질 않았다.
“으아악! 놔!”
순간, 틈 속으로 쑥 들어온 손이 유니의 발목을 붙잡았다.
유니가 주변의 돌들을 붙잡으며 버텨봤지만, 뿔 마물이 힘을 주자 맥없이 밖으로 끌려 나왔다.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채 버둥거리는 유니.
그녀를 보며 뿔 마물이 침 같은 용암을 뚝뚝 흘렸다.
“햐아,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신선한 영혼이냐. 큭큭큭.”
“놔! 이 자식아, 놓으란 말이야!”
유니가 닿지도 않는 주먹을 휘둘러대며 몸부림을 쳤지만, 뿔 마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유니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머리부터 한입에 삼키려는 속셈이었다.
마치 거대한 아나콘다가 그러하듯이.
“캉! 캉!”
캉캉이가 유니를 구하려는 듯 쫄랑쫄랑 달려와 마물의 발을 앙 깨물었다.
그러자 잠시 뿔 마물이 동작을 멈추고 캉캉이를 내려다봤다.
“응, 기다려 너도. 곧 디저트로 먹어줄 테니까.”
발목을 툭 털어 캉캉이를 걷어차는 뿔 마물.
캉캉이가 데굴데굴 굴러 벽에 콕 처박혔다.
“자, 그럼 먹어보실까.”
뿔 마물이 유니를 입에 가져다 대며 본격적으로 입을 벌렸다.
마치 뱀처럼 턱이 앞으로 쭉 빠지며 입이 원래 크기의 3배는 넘게 벌어졌다.
마물의 입 주위로 붉은 용암이 흘러넘쳤다.
“악, 안돼! 살려줘!”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는 유니.
유니의 머리가 뿔 마물의 입 속으로 거의 절반쯤 들어갔을 무렵, 갑자기 뿔 마물이 동작을 멈췄다.
“컥!”
뭔가가 뿔 마물의 목을 단단히 움켜쥔 것이었다.
뿔 마물처럼 검게 그을린 커다란 암석 손이었다.
“너 이 새끼, 이럴 줄 알았어. 감히 내 걸 뺏어 먹으려고?”
“커헉, 크흑.”
소리소문 없이 다가온 ‘거구 마물’이 뿔 마물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던 것이다.
유니를 손에서 놓치며 양손으로 거구 마물의 손을 붙잡는 뿔 마물. 눈에서 눈물 같은 용암이 뚝뚝 떨어졌다.
“뒈져버려!”
더 세게 힘을 주자, 뿔 마물의 머리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뿔 마물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거구 마물이 뿔 마물의 몸뚱이를 향해 ‘퉤’ 용암을 뱉었다.
“더러운 새끼.”
바닥에 떨어진 유니는 엉금엄금 기며 달아났지만, 얼마 가지 못해 몸이 다시 공중으로 붙들려 올라왔다.
이번엔 거구 마물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었다.
“자, 그럼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유니를 머리 위로 치켜든 거구 마물은, 뿔 마물이 그랬듯 한껏 입을 벌렸다.
그의 턱도 앞으로 쭉 빠지며 입이 3배 넘게 커졌다.
“악, 안돼, 살려줘!”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는 유니.
자신의 눈앞으로 기다란 마물의 혓바닥이 보이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해(解)!”
그때, 갑자기 강렬한 바람이 불어와 유니의 온몸을 휘감았다.
바람에 옷들이 정신없이 펄럭이다 멈췄다.
뭔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눈을 뜨는 유니.
자신을 붙잡고 있던 거구 마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머리 아래로 회색 재들만 잔뜩 쌓여있었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자 쌓여있던 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 뭐야?”
놀라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유니.
주홍빛 머리카락을 너울거리는 남자가, 벽 쪽에 무릎을 꿇은 채 캉캉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등 뒤에는 작은 태양 같은 게 반짝거렸고, 태양에서부터 삼각형의 검은 망토가 쭉 뻗어 나와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아는 사람인지 캉캉이가 폴짝폴짝 뛰며 그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이, 이봐! 나 좀 어떻게 해줘 봐!”
유니가 소리를 지르자, 아차 싶었는지 남자가 벌떡 일어나 유니를 향해 돌아섰다.
주홍 머리카락에, 얼굴에는 검은색 십자 문신이 그려진 남자는 서둘러 유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유니의 몸이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바닥에 내려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유니가 남자의 모습을 살폈다.
“에, 또, 구해줘서 고맙긴 한데. 누, 누구?”
남자는 낯선 문양들을 몸 곳곳에 두르고 있었지만, 안쪽에는 분명 환생 관리자 옷을 입고 있었다.
‘이런 복장의 환생 관리자가 있었나?’ 싶어 실눈을 뜬 채 세심히 관찰하는 유니. 그러다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 리? 리 맞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덩치가 훨씬 커지긴 틀림없이 리였다.
마치 이전의 리가 빼빼 마른 ‘청소년 리’였다면, 지금은 장성한, 그것도 특수부대처럼 ‘근육질의 사내’라는 점이 달랐지만.
아니 주황 머리카락에 괴상한 문신만 보면, 꼭 불량 청소년이나, 헤비메탈 가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요, 선배. 나예요.”
캉캉이가 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방어석’을 붙잡으려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뭐야, 너. 꼴이 왜 이렇게 된 거야.”
“왜, 뭐가 많이 이상한가요?”
머리를 긁적거리는 리.
유니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가로젓다가, 다시 끄덕이며 당황스러움을 표시했다.
“어, 괴상해, 아주 많이. 최악이야.”
‘슈우우웅’
그때, 하늘에서 커다란 화염구가 리 일행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리가 얼른 유니 앞으로 나서며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바로 주먹을 움켜쥐자, 화염구가 ‘펑’ 소리를 내며 작은 입자로 쪼개지더니 ‘파바바박’ 불꽃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불꽃 너머로 거침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익룡 마물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토, 왜 ‘천계의 저항’이 작동하지 않지?”
리가 묻자, 스카프 밖으로 손을 휘휘 저어대던 비토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진짜 없네.”
“이상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비토를 따라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
그 모습을 보고 유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상하긴 네가 제일 이상하다. 혼잣말하는 것 보니 분명 리가 맞긴 맞는데... 어휴, 왜 내 주변엔 왜 죄다 이상한 사람들만 모여드는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는 유니.
그때, 리가 뭐가 떠올랐는지 얼른 유니를 바라봤다.
“참! 일권 선배는? 일권 선배는 어디 있죠?”
“아, 아까 나를 쫓아온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겨서 몰라. 어디 있는지.”
“흠... 에테르도 감지되지 않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
“뭐, 어디 잘 숨어있겠지. 숨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힌 사람이니까.”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를 깨무는 리.
“끼아아악!”
“도와줘!”
‘펑!’
그때, 멀리서 도움을 요청하는 영혼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리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멀리 소총을 쏴대는 천계군의 모습이 보였다.
“흠... 일단은.”
리가 유니를 등지고 서서, 쓰러진 기둥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기둥들이 허공에 붕 떠올라 산산조각 나더니, 순식간에 서로 엉겨 붙으며 세 개의 ‘석상’을 완성했다.
바닥에 내려선 석상들은, 창과 방패를 든 ‘중세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리가 입바람을 ‘후’ 불자 노란색 에테르가 기사들의 몸을 타고 훅 일어났다.
“선배, 아무래도 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 녀석들이 보호해 줄 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요.”
석상들을 보며 놀란 듯 잔뜩 몸을 움츠린 유니가, 로봇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너도!”
캉캉이를 붕 띄워 유니의 손에 안기는 리.
잠시 유니의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휙 뒤를 돌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리가 일으킨 바람에 유니의 옷이 또다시 펄럭거렸다.
리가 떠나자, 거품 같은 푸른빛의 돔이 유니와 기사들을 둥그렇게 감쌌다.
“햐, 아무리 프리사이즈라고 하지만. 옷이 저렇게까지 늘어날 수가 있나.”
리의 뒷모습을 보며 유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멀어지는 리의 머리 위로, 비단 같은 구름이 부드럽게 너울거리고 있었다.
하얗게 일렁이는 비단 구름 끝으로, 갑자기 붉은색 점이 나타나더니, 쭉 이어져 긴 선을 만들었다.
마치 흰 천 위에 붉은 매직펜을 내려그은 것처럼.
비단 구름이 출렁거리자 하얀 가루와 붉은 가루가 동시에 천계의 대지로 떨어졌다.
흩날리며 떨어지는 붉은 가루들은, ‘부르르르’ 떨더니 ‘펑’하고 터졌다.
그 속에 뭉쳐있던 수천 마리의 ‘미세 마물’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