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사용하지 않는 문

by 무딘

“금술(禁術), 개안(開眼)!”


도일이 주문을 외우자, 순간 도일의 몸에서 초록색 에테르가 연기처럼 훅 뿜어져 나갔다.


잠시 도일을 뒤덮은 채 둥둥 떠 있던 에테르 연기는, 마치 뭔가에 가열이라도 되는 듯, 점점 노랗게 변해갔다.

그러다 완전히 샛노랗게 바뀌자,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도일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호? 변신 타입이었나?”


노란 에테르를 빨아들이며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어 대는 도일.

그러다 순간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멈췄다.

그의 가슴팍에 전에 없던 여섯 개의 붉은 점이 스르륵 나타났다.

마치 소림 승려들이 이마에 새기는 점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며 사마귀 마물을 바라보는 도일.

그의 눈에서 샛노란 에테르가 불길처럼 뿜어져 나왔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구만. 그럼 죽어!”


휙 한 바퀴 돌며 다시 뼈 채찍을 휘두르는 사마귀 마물.

커다란 뼈 채찍이 아나콘다처럼 바닥을 훑으며 다시 도일에게 달려들었다.


“보법, 백척간두!”


순간, 앞으로 뛰어오른 도일이 뼈 채찍을 밟으며 빠르게 마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찍을 디딜 때마다 채찍의 등위로 노란 불꽃이 튀었다.


“어딜!”


사마귀 마물이 채찍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도일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팔뚝에 있던 시퍼런 칼날이 튀어나와 핑그르르 돌며 빠르게 날아갔다.

단순한 칼이 아니었다.

기억자 형태로 꺾인 일종의 낫이었다.


날아오는 낫을 보자마자 얼른 허리를 숙이는 도일.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날아온지라, 낫이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치며 도일의 상투를 잘라냈다.

불어오는 바람에 도일의 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무열권(無熱拳)!”


사마귀 마물의 바로 앞까지 다다르자, 뛰어올라 주먹을 날리는 도일.

순식간에 노란 에테르로 둘러싸인 수백 개의 주먹이 사마귀 마물의 온몸을 강타했다.


“크으윽.”


얼른 왼팔로 가드를 올린 채 도일의 공격을 막는 마물.

하지만 워낙 많은 주먹이 날아오자, 그의 옥빛 갑옷 여기저기에 ‘쩌적’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 이 자식이!”


더는 막고만 있을 수 없자, 뒤로 뛰어오르며 주먹세례를 피한 마물.

착지하자마자 얼굴을 내밀더니, 도일을 향해 입을 한껏 벌렸다.


“쿠우하!”


그러자 마물의 입에서 초록색의 안개가 훅 뿜어져 나와 도일을 덮쳤다.

때마침 도로 위를 지나던 나비가, 초록 안개에 닿자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안개를 뿜어대는 마물.

도로 위에 초록 안개가 자욱해지자 그제야 안개 뿜기를 멈췄다.

잠시 두리번거리며 도로를 살폈지만, 어디에서도 도일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흥, 어딜 까불고 있어. 중간계 떨거지 주제에.”


팔등으로 입술에 묻은 독극물을 닦아내는 사마귀 마물.


“선풍섬!”


그때 마물의 머리 위쪽에서 갑자기 도일이 나타났다.

빙글 앞으로 회전한 도일은, 발뒤꿈치로 마물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안개를 피해 보법으로 한껏 뛰어오른 도일이, 위에서부터 마물을 공격한 것이었다.

도일의 발뒤꿈치에서 뿜어 나온 노란 에테르가, 마물의 몸을 관통하며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크헉”


마치 커다란 기둥이 땅바닥에 박히듯, 마물의 몸이 허벅지까지 땅속에 박혔다.

길게 뻗은 사마귀의 등 부분이 부러진 빨대처럼 ‘ㄴ’ 자로 꺾였다.

마물은 우뚝 선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거꾸로 한 바퀴 돌아 마물의 앞에 내려서는 도일.

손을 휘휘 저어 초록 안개를 걷어내며, 다른 손으로 마물의 목을 움켜쥐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끼야아아!”


그때, 인근 공터에서 마물의 괴성이 들려왔다.

이번엔 비명이라기보다, 환희에 찬 탄성에 가까웠다.

얼른 고개를 돌려 건너편을 살피는 도일.


“아, 아...”


아니나 다를까, 마물들이 한 곳에 잔뜩 둘러앉아 하이에나 떼처럼 뭔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남색 한복 차림의 시체가 슬쩍슬쩍 보였다.


몰려드는 마물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감찰사가 당한 모양이었다.

마물 하나가 남색 한복 차림의 팔을 허공에 휘휘 돌리며, 괴성을 질렀다.


“빌어먹을...”


눈을 질끈 감으며 어금니를 깨무는 도일.


그 순간, ‘푸확’ 물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도일의 왼쪽 어깨를 뚫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어깨를 내려다보는 도일. 뼈 채찍의 뾰족한 끝이, 자신의 어깨를 뚫고 나와 있었다.


“크크크, 쿨럭, 딴 데 보지 말라니까.”


어느새 깨어난 사마귀 마물이, 뼈 채찍을 전갈의 꼬리처럼 거꾸로 세워 도일을 공격한 것이었다.


“끝까지, 이 자식이!”


주먹을 움켜쥐는 도일.

노란색 에테르가 번쩍이는 주먹으로 마물의 머리를 그대로 가격했다.

그러자 얼굴이 통째로 터져나가며 용암이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를 잃은 마물의 몸통이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으윽...”


칼로 살을 헤집는 고통에 어금니를 깨무는 도일.

오른팔을 뒤로 돌려 어깨에서 뼈 채찍을 뽑아냈다.

어깨에서 ‘울컥’하고 피가 쏟아졌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도일은 허리춤의 한복을 찢어 서둘러 지혈을 시도했다.


‘쿵, 쿵, 쿵, 쿵쿵.’


한창 상처를 묶느라 정신이 없던 그때, 도일의 앞쪽으로 연이어 둔중한 충격음이 들렸다.

뭔가가 바닥으로 내려서는 소리였다.

또다시 느껴지는 위화감에 천천히 고개를 드는 도일.


그의 앞으로 근육질의 ‘악어 형상 마물’이, 커다란 쇠기둥을 어깨에 걸친 채 도일을 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다섯이었다.

나란히 늘어선 악어 마물들은 도일을 보며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킥킥거렸다.


“젠장할. 젠장할.”


*


‘쿵, 쿵, 쿵’


암석 마물의 등에 포박된 채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하는 유니.

얼굴은 밖으로 나와 주변이 보이기는 했지만, 마물이 워낙에 쿵쾅거리며 뛰는 통에 정확히 어디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치직, 칙, 치칙... 유니! 유니! 자네 들리는가? 치직.”


그때, 고글에서 잡음이 잔뜩 섞인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권 선배?”


대답하려 고글 옆쪽의 ‘통신 버튼’을 누르려는데, 팔까지 마물에 단단히 묶인 터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에이, 젠장.”


팔을 빼보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워낙 강하게 묶여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몇 번 더 시도하다, 이내 팔 빼기를 포기하는 유니.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던 고개를 마물의 등과 반대쪽으로 살짝 돌렸다.

그리곤 고개를 휙 돌려 등에 부딪혔다.

마물의 등을 이용해 측면 버튼을 누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서너 차례 반복하자, 드디어 통신 버튼이 활성화됐다.


“선배! 들려요? 선배!”

“잉! 치, 치직, 유니! 잘 들리네! 치칙. 내 목소리 잘 들리는가?”

“선배! 이것들 다 마물이에요. 만행자로 위장한 마물이라고요! 어서 가서 알려요. 감찰사든, 수운신한테든. 저도 지금 마물에게 붙잡힌 상태라고요!”


그때 유니를 등에 묶은 마물이 갑자기 ‘붕’ 위로 뛰어오르더니,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

‘쿵!’ 암석 마물들의 대열 앞으로 커다란 불덩이가 떨어졌다.

불덩이를 피한 마물들은 다시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치칙, 치익 칙. 나도 다 보고 있응게 흥분은 고만허고,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딱 붙들믄 산 다 안 하요.”

“선배, 난 이미 가망이 없어요. 마물한테 붙잡혀서 그런가 몸에서 힘도 빠지고, 정신도 점점 아득해져요. 이러다 결국 기절하고 말겠죠. 젠장, 다 같이 천계에 가고 싶었는데...”

“음마, 치칙, 정신 꽉 붙들랑께! 칙, 치익, 나가 시방 거릴 두고 쫓아가고 있응게, 치익, 걱정을 하덜 말고! 기횔 봐서 나가 순식간에 구해줄라니께.”

“아휴, 선배, 이것들 다 A급 마물이에요. 선배 실력으로 택도 없다고요. 아무리 ‘원 펀치 쓰리 강냉이’라 해도.”


마물의 등에 묶인 채, 쓴웃음을 짓는 유니.

그러고 보면 쥐새끼 하나 제대로 못 죽이는 사람이, 무슨 ‘원 펀치 쓰리 강냉이’인 건지.

아, 가방에서 나는 악취로 호흡을 막아 죽인다는 거였나.


“치이익, 치직. 지금 우리 위치 신호가 송출, 치직, 되고 있응게, 나가 못해블믄, 누구라도 구해주러 올 것이네. 하다못해 리라도 칙, 치직, 구해주러 올 테니께, 정신줄만 꽉 붙들고... 칙, 치익, 치이이...”


결국 통신이 끊어졌는지, 마지막 노이즈를 끝으로 더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휴, 리라도...”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하는 유니.


‘그래, 리가 있었지. 리 이 인간은 이 중요한 시기에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혹 리도 마물을 만난 걸까? 살아는 있을까? 팔의 자물쇠는 안전하게 잠겨 있고? 하여간 하나밖에 없는 후임이라는 게, 어쩜 이리도 신경을 긁는 건지.’


리에 대한 걱정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우지끈!’


그때, 다시 ‘붕’ 위로 뛰어오른 암석 마물이, 돌덩이 깨지는 소리를 내며 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곤 커다란 등이 다 부풀도록 거칠게 숨을 헐떡거렸다.

한참 동안 제자리에서 숨만 고르며 이동하지 않는 게,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도착했나? 어디지?”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유니.

고개를 움직일 수 없어 다 보이진 않았지만, 어디 널따란 광장 같은 공간이었다.


유니를 등에 포박한 마물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는 다른 암석 마물들이 유니의 시야에 들어왔다.

동시에 광장을 가득 메운 암석 마물들 너머로, 낯익은 문 하나가 보였다.

온통 하얗게 빛나는 7층 크기의 커다란 문이었다.


“응? 승천문?”


암형문처럼 문짝만 달린 거대한 문이 광장 한쪽 끝에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문틈에서는 하늘색 오로라가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승천문엔 왜? 지금은 쓰지도 않는데? 선배! 선배 들려요? 선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애타게 일권을 호출하는 유니.

하지만 통신이 완전히 두절된 듯, 일권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 비켜라!”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광장을 쩌렁쩌렁 울리더니, 검은 형체가 하늘을 휙 날아 광장 중앙에 내려섰다.

암석 마물들이 일제히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누와웅! 누와웅!’ 알 수 없는 고함을 질렀다.


유니가 엎드린 아기처럼 힘겹게 고개를 들자, 붉은 화염 망토를 드리운 어떤 기사가 보였다.

뼈다귀 왕관을 쓴 검은 갑옷의 기사였는데, 마물들이 바짝 긴장하는 걸로 봐선 꽤나 높은 사람으로 보였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누구인지 잘 떠오르지는 않았다.


기사가 낚시찌를 던지듯 손을 앞으로 휙 던지자, 어디선가 흰머리 난쟁이가 날아와 광장 바닥에 퉁퉁 튕기며 쓰러졌다.

그의 허리춤에서 청색 망치가 함께 덜렁거렸다.


“청색 망치! 설마, 대석공님?”


바닥에서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는 대석공.

붉은 망토의 기사를 보며 뭐라 뭐라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하하하, 노인네, 의심도 많네, 참. 알았다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붙잡아 놨던 당신 가족들, 당신 제자들, 싹 다 놓아준다니까? 그러니 어서 할 일이나 하라고!”


다시 한번 기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광장을 울렸다.

대석공은 망치를 움켜쥐며 긴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승천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눈물방울인지, 땀방울인지 모를 둥그런 자국들이 연이어 찍혔다.


“자, 길을 만들어 드려라.”


화염 망토의 기사가 검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자,

광장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암석 마물들이 우르르 달려가 승천문 앞에 차곡차곡 엎드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승천문 중간까지 이어지는 언덕이 만들어졌다.


눈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 보니,

지금까지는 있는지도 몰랐던 ‘회색 자물쇠’가 승천문 중간에 떡하니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저런 자물쇠가 다 있었나...”


목이 아파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리저리 돌려 목을 풀고는 다시 승천문을 바라보는 유니.

어느새 대석공이 언덕을 타고 올라가 승천문 바로 앞에 이르렀다.


조심스레 승천문 앞에 선 그는, 한 손으로 회색 자물쇠를 붙잡았다.

그러다 뭔가 꺼려지는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가족들을 생각해야지, 영감! 가족들을!”


그를 보고 화염 망토의 기사가 고함을 지르며 재촉했다.

그러자 마지못해 고개를 든 대석공.

길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허리춤의 청색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이 어리석은 자를 용서하소서, 금운신이시여!”


대석공의 절규가 희미하게 들리자마자, 대석공이 자물쇠를 후려치는 게 보였다.


‘찌이이이이이이이잉!’


순간, 날카로운 고주파의 쇳소리가 승천문 광장 전체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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