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딘 Jun 19. 2024

상처 입지 않고는 사냥할 수 없다.

~라고는 했지만.

"미친, 나 부자야."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친구가 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내밀자 제가 말했습니다.


"부자는 지랄, 받아. 그냥 니네 애들 밥 한 끼 사주고 싶었어."


 녀석이 억지로 봉투를 들이밀자 마지못해 받아 들었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다음번엔 내가 사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개찰구를 들어와 멀어져 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가 홀아비 아니랄까 봐 옷 꼬락서니 하고는. 그의 등판에 대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새끼... 나 진짜 부잔데..."




 비트코인이 1 BTC 당 9천5백만 원을 넘겼군요. 곧 1억을 넘기겠네요. 눈 밝은 후배 하나는 일찌감치 비트코일에 투자해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니더군요. 부럽기도 하고, 그 무모함이 대단하다 싶기도 합니다. 사실 제게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2017년 가을, 비트코인이 막 8백만 원을 넘겼을 때였죠. 무섭게 오르는 비트코인을 두고 이것이 '21세기 튤립 투기'인가, 아니면 '화폐의 미래'인가, 의견이 분분했었죠. 때마침 쌈짓돈이 생겼던 터라 '나도 한번?' 하는 마음으로 냄새를 맡아봤었죠.


 이미 단물 다 빠진 단어지만 '블록체인'이 뭔지, '분산 원장'이 뭔지, 채굴은 또 뭐고 해쉬 검증은 뭔지, 생전 처음 듣는 개념과 언어들을 눈이 빠져라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이리 보고, 저리 재보며 얻은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자격 미달'이다. 거품은 곧 꺼질 것이다. 화폐의 가장 기본인 '거래 처리'가 원활히 안 됐기에, 화폐로서 가치가 없다! 이건 비트코인이 갖는 구조적 한계로 상황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래 틀림없는 '21세기 튤립투기'라 보고 투자하겠다는 지인들까지 뜯어말렸죠.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할 거라 호언장담하면서요. 물론, 지금은 그들을 피해 다닙니다.


[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


 사실 새삼스러울 건 없습니다. 그렇게 놓쳐버린 기회들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아니, 애초에 그런 '머니 게임' 자체에 능하질 못합니다. 체질적으로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엔 젬병이죠. 포카도 칠 줄 모르고 화투는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당구는 200 정도 치지만, 돈내기(죽빵)는 절대 하지 않죠. 남의 돈을 따는 건 별로 즐겁지 않은데, 내 돈을 빼앗기는 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거든요. 그냥 'Bone to be 새가슴'으로, 애초에 세렝게티를 활보할 사자의 심장 같은 건 제게 어울리지 않죠.


 그런 제가 '죽고 죽이는 나선' 위에 딱 한번 올라본 적이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거친다는, '주식 지옥(?)'에 빠져든 거죠. 지방에서 근무하던 신입 시절부터 본사로 올라올 때까지, 대략 3년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모은 돈 전부에 버는 족족 밀어 넣어, 접을 때쯤엔 큰 거 한 장은 넘었던 것 같습니다. 뭐 큰 손들에겐 여전히 푼돈이지만, 가난뱅이 직장인에겐 미래를 건 도박이었죠.


 나쁜 짓은 친구에게 배우는 법이라 하던가요. 지방 근무하며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보니, 대부분의 동료들이 주식을 했습니다. '주식은 투자보단 도박'이란 생각이 강했던 저는, 당시 유행했던 적립식 펀드에 발을 담그는 걸로 만족했죠. 유력한 종목을 두고 난상 토론이 벌어질 때도, 호기심 찾아보기만 할 뿐 직접 뛰어들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워낙 '재테크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던 때라, 관련 서적들을 꾸준히 찾아 읽긴 했었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보트 키요사키, 앙드레 코스톨라니, '선한 부자' 등도 다 그때 만난 이름이군요. 그러다 어떤 재테크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게 됩니다.


 "상처 입지 않고는 사냥을 할 수 없다."


 '아뿔싸,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잃는 것이 두려워,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워 나는 사냥터를 외면하고 있구나. 손실에 대한 두려움에 주식을 도박 취급하고 있구나. 이러다 남들 다 갖는 기회를 나만 놓치겠구나. 정신이 번쩍 들고 이내 조바심이 나더군요. 이래서 책이 무서운 겁니다. 옳은 생각을 하든, 그른 생각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논거를 만들어 주니까요. 도덕적으로 검증된 책만이 시장에 나오는 건 아니죠.


 정신 무장도 다시 했겠다, 계좌는 적립식 펀드 하느라 이미 터뒀겠다, 바로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한창 수익을 내던 후배에게 유력하다는 종목 정보를 얻었죠. 종목명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대기업 전장 회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시장이 워낙 좋았던 때라, 넣자마자 수익이 나더군요. 실시간으로 변하는 수익을 보며 불 놀이 앞에선 아이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아, 맛에 사람들이 주식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엔 백만 원 단위로 시작했던 투자가, 금세 천만 원 단위로 뛰어올랐죠.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몰랐던 겁니다.


 주식 직접투자, 해외 펀드, 배당주 펀드, 부동산 리츠, 국내 ELS, 해외 ELS 등,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시장에 넣었습니다. 20년 장기 투자계획도 짜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었죠. 마흔다섯에 50억을 만들어 조기 은퇴하겠다는 '장대한(?!) 플랜'도 세웠죠. 뭐, 당시 유행하는 건 다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보면 허황되기 짝이 없는 계획을 당당히 내세울 수 있었던 건, 수익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삼성전자 한 종목으로만 천만 원 넘게 수익이 났었고, 합계로 보면 투자대비 수익만 30% 이상이었습니다. 계좌를 확인할 때마다 월급의 절반이 넘든 돈들이 오르락내리락했죠. 앞으로 들어갈 돈 넣고, 연 희망 수익률 따져 엑셀 쫙 돌려보면 '마흔다섯에 요트 타고 세계여행 하는 게' 마냥 꿈만은 아니었습니다. 세계여행을 하다 하다 지겨워지면 다음엔 뭘 하나...


 그러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맞게 됩니다.


[ Image by Ela from Pixabay ]


 리먼 브라더스 은행의 부도로 상징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대출'이 세계 경제를 순식간에 얼려버렸습니다. 기축 통화국이 망가지니 세계 경제가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더군요. 미국 주가는 물론이고 전 세계 주가가 촛농 떨어지듯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올 연말이면 전 고점을 넘어 새 시대가 열릴 거라던 '점장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미디어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대출은 멈췄고, 달러는 귀해졌고, 제2의 IMF가 오는 거 아니냐는 두려움이 연일 뉴스 꼭지를 도배했죠.


 당연히 국내 주식도 폭포수마냥 쏟아져 내렸습니다. 외국인들이 자금 확보차원에서 우리 주식을 죄다 내다 팔았거든요. 우리 시장의 영원한 절대강자 삼성전자 마저, 순식간에 가격이 빠졌습니다. 개미들이 득시글 거리는 소형주 말고는 파란색 페인트를 끼얹은 듯 시장은 하향 일색이었죠.


 슬프게도, 고작 일주일도 못 가 제가 가진 대부분의 계좌도 '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곳간이 두둑하다 생각했는데 시장이 무너지는 데는 장사가 없더군요. 가진 돈의 대부분이 들어가 있던 상태라, 물타기로 손실을 낮추기도 어려웠습니다. 당시 출근하면 동료들끼리 '나는 손실이 -45%야, 넌 좀 낫네, 난 -60%야' 말하며 서로를 위로했었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제 처지도 비슷해질 상황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이러다 집 한 번 못 사보고 내 인생 끝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머금고, '손절'을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를 팔고, 해외펀드를 팔고, 최후의 보루였던 적립식 펀드도 팔았습니다. '완전 철수'를 기치로 팔 수 있는 걸 죄다 팔았더니, 지난 3년간 벌어들였던 수익을 고스란히 토해내더군요. 빠른 결단으로 손실을 줄이긴 했지만 원금도 상당히 날아갔습니다. 뭐 이후 벌어졌던 처참한 상황을 감안하면, 제 깜냥에 그나마도 잘 한 대응이다 싶습니다. 상처를 감수하겠다며 호기롭게 올라섰던 전장에서 그렇게 상처만 잔뜩 입은 채, 제 인생에 또 하나의 뻘짓이 추가되었죠.


결핍은 우리가 사용하는 통화제도 속에 있다. - 베르나르 리에테르


 시간이 지나 쓰린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니, 한 가지가 명확해지더군요. 정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장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주식 시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 시장을 품고 있는 자본주의란 무엇인지, 그 자본주의를 굴리는 통화제도는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투자라고 스스로를 속였을 뿐, 속내는 도박과 다를 바 없었던 겁니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잘 알지도 못하는 시장에 그 큰돈을 맡겼을까요. 원래 제가 그리 무모한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돈에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던 것 같습니다. 이래서 Money의 어원이 'Monitus', 즉 '경고하다'인가 봅니다.


 이후 시장과 거리를 둔 채 차분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운 좋게 훌륭한 선장을 만나 주식 시장 '바깥'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배울 수 있었죠. 특별히 '신용 본위 통화 제도'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땐,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어떻게 사회 내에 통화량이 부풀어 오르는지, 왜 부풀어 오른 통화량은 거품처럼 터질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되더군요. 주식시장의 등락은 그저 이 거대한 변화의 부산물에 불과했죠.


 나아가 통화 제도가 갖는 비정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빚과 이자'로 상징되는 이 시스템이 어떻게 무지한 개인을 '땔감'으로 활용하는지 배웠습니다. 왜 어떤 때는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을 하다가, 왜 또 어떤 때는 돈을 갚지 못해 목숨줄을 끊는 이들이 속출하게 되는지, 이해했습니다. 썩은 상자 속의 사과는 썩을 수밖에 없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게 된 거죠. 마음 같아서는 '본원 통화'부터 시작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까지 하나하나 풀어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이미 늘어놓은 수다가 너무 많군요. 


 어쨌거나, 그렇게 큰 그림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니, 날 뛰던 욕심도 차츰 잦아들었습니다. 내가 얻은 수익이 누군가의 '좌절'을 재료 삼아 만들어졌다 생각하니,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싶었죠. 애초에 '머니 게임'에 능한 사람도 아닌 데다, 정작 보아야 할 것은 하루하루의 등락이 아니라 커다란 통화량의 흐름이란걸 알게 되니, 자연스레 어떤 경계가 그어지더군요. 이 시점이 오지 않으면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 마음먹게 된 겁니다. 만약 끝까지 그날이 오지 않는다면, 그냥 나답게 저축이나 하며 중간만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결코 손해 보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배움의 시간'이 알려줬거든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 그 시점은 오지 않았고, 저는 여전히 주식 시장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 image made by MS image creator ]


 입사 15년 만에 경기도 인근에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크진 않지만 우리 식구들 살기에 부족하지 않고, 갚아야 할 빚도 전혀 없죠. 동기가 그러더군요. 요즘 같은 시기에 '집 있고 빚 없으면' 그게 부자라고요. 월세 낼 돈이 없어 남에 집에 더부살이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큰 그림을 보기로 하고 섣불리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던 결정이, 전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본전 생각에 '지는 게임'에 준비도 없이 다시 뛰어들었다면, 틀림없이 몇 푼 안 되는 종잣돈마저 다 털렸을 겁니다. '중간 정도는 산다' 자부할 수 있는 지금의 호사도, 성공이 아니라 '실패'로 낙인찍었을지 모르고요. 크게 잃고 자세히 배웠던 시간이 제게 어울리는 적당한 경계를 그려준 거고, 그 경계 덕에 지금의 삶에 무사히 안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 보면, 역시 삶에 무의미한 뻘짓은 없다 싶습니다.


 물론 '조기 은퇴'나 '건물주'는 이젠 꿈꿀 수 조차 없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돈에 신경 쓰지 않았던 시간은 더 중요한 가치들로 채워졌거든요. 현상 이면에 흐르는 '도도한 물결'을 깨달은 경험은, 삶의 가치를 다른 관점에서 재도록 이끌었거든요. 그래, 가진 건 많지 않지만 마음만큼은 부자입니다. 뭐, 부자가 별 거인가요. 세상사 '일체유심조' 인걸요. '수처작주 입처개진'하면 그게 부자 아니겠습니까.

  



 모처럼 절친과 밥을 먹었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제게 뜯겼던 그 녀석 맞습니다. 아직 솔로인 녀석이 명절 때 심심할까 봐 일부러 만났습니다. 철없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 게임도 하고 찰진 욕도 주고받으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놀 때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더군요. 헤어지려 하는데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놈이 절 불러 세웠습니다.


"자, 이거 가져가서 애들이랑 뭐 사 먹어."


녀석이 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내밀더군요.


"미친, 나 부자야."

"부자는 지랄, 받아. 그냥 니네 애들 밥 한 끼 사주고 싶었어."


 녀석이 억지로 봉투를 들이밀자 마지못해 받아 들었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다음번엔 내가 사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개찰구를 들어와 멀어져 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가 홀애비 아니랄까 봐 옷 꼬락서니 하고는. 그의 등판에 대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새끼... 나 진짜 부잔데... 마음만큼은..."

이전 10화 글쓰는 게 죄는 아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