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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딘 Jun 12. 2024

글쓰는 게 죄는 아니잖아!

 글을 올려놓고 집사람에게 카톡으로 링크를 보냈습니다. 거실에서 웹툰을 보고 있길래 내 것도 읽어봐 달라고 구걸 아닌 구걸을 했죠. 자존심 상하지만 어찌 됐거나 독자가 왕이요, 글쓴이는 죄인이니까요. 잠시 인터넷을 하다 다시 가봤더니, 이번엔 깔깔거리며 TV드라마에 열중하고 있군요.


"내 건 읽어 봤어? 어땠어?"

"......"

"어땠냐고."

"아, 어... 어... 뭐, 좋아."


 예의 영혼 없는 대답, 안 읽었다는 방증. 아, 이번 글도 망했군요.




 모처럼 '공동경비구역 JSA'를 다시 봤습니다. 갈대밭 지뢰씬에서 또 한 번 배꼽을 잡았죠. 그런데 문득, 지뢰를 건드린 이병헌과 제 상황이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어, 이거 뭔가 잘못됐다' 싶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 과거를 글감 삼아 글을 이어왔는데, 재미는 없고 글은 늘어지고 소재는 갈수록 떨어지고. 게다가 글을 쓰면 쓸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기묘한 증상까지. 언젠가부턴 뇌 속을 숟가락으로 긁는 기분조차 들더군요. 없는 그릇에서 어떻게든 누룽지라도 건져 보겠다는 일념일까요. 확, 발을 떼서 터뜨려버릴까도 싶지만, 이게 가진 유일한 동아줄이라 포기도 쉽지 않네요. 적일지언정 누구라도 눈앞에 나타나면 말하고 싶습니다.


"오지 말라고 했지, 언제 그냥 가라고 했어! 이... 씨...... 살려주세요..."


[ image created by MS image creator ]


 '다중지능 이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주창한 이론으로, 그는 인간의 지능이 '언어,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음악, 대인, 자기 이해, 자연친화'의 여덟 가지 지능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지능 하면 흔히 사용하는 IQ는 사실 논리수학에 국한된 것으로, 애초에 학업에 적응 못하는 아이들을 선별하기 위해 사용했던 거라고 하더군요. '서번트 신드롬'이라고 일반적으로는 지체아로 분류되지만, 특정분야에서 만큼은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애들이 가능한 것도, 다 우리의 지능이 다중지능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하죠.


 흥미로운 점은 이겁니다. 사람마다 이 8가지 지능 중 '타고나는 지능'이 다르다는 거죠. 날 때부터 뛰어난 지능이 있고, 떨어지는 지능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게임의 마법사나 전사 캐릭터처럼 가지고 시작하는 능력치가 다르다는 거죠. 그게 당연한 거지, 뭐가 흥미롭냐고요?


 약 10여 년 전, EBS '아이의 사생활'이란 다큐에서 다중지능을 다뤘는데요,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나옵니다. 다큐팀은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현재 자기가 가진 직업에 불만족하는 사람을 추려냅니다. 선생님도 있고, 연구원도, 의대생도 있었죠. 동시에 그들이 희망하는 직업을 묻고 각각의 다중지능도 측정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들이 '강점을 보이는 지능'과 '희망하는 직업' 간의 상관관계 매우 높더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연친화 지능'이 뛰어난 영어 선생님은 '수의사'가 되는 것을 희망했고, '자기 이해 지능'이 뛰어난 의대생은 '방송작가'가 되는 걸 원했다는 거죠. 쉽게 말해 지능과 직업 간에 어떤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Mr0lnKyGu-s

[ EBS 다큐멘터리 - 아이의 사생활 : 제 4부 다중지능 ]


 뻘짓을 이야기하다 말고 뜬금없이 웬 다중지능 이야기냐고요? 본격적인 직장생활이 시작되며 저도 모르게 시작된 뻘짓을 설명하려면 이게 필요하거든요. 저뿐 아니라 아마도 브런치를 들락이는 모든 분들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수원을 마치고 초임지로 '당나라가 백제를 치러왔을 때 진을 쳤다'는 지방에 발령을 받게됩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깡시골' 생활이었죠. 연수원에 있을 때 답사를 하며 어느 정도 각오를 했던 터라, 촌 구석, 초라한 청사를 보고도 그다지 실망하진 않았습니다. 청사 내의 낡디 낡은 직원용 사택마저 그럭저럭 좋아 보였죠. 게다가 뜻밖에 젊은 직원들이 많은 것도 좋았습니다. 많아봐야 4, 5년 먼저 들어온 선배들이 전부였죠. 세대차이가 없으니 말도 잘 통하고 일 배우기도 쉽더군요. 나중에 자초지종 들어보니, 지방에다 거리도 멀어 기존 사원들이 발령을 꺼리자, 신입사원들로 차곡차곡 채워진 거라더군요. 뭐 어디든 기득권이란 게 있으니까요.


 그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예전에 신입사원으로 발령받은 선배가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 발령받은 것에 실망한 나머지 야밤에 월담을 했다더군요. 동시에 합격한 다른 회사로 가버린 거죠. 뭐, 퇴사하는 거야 자유인데 굳이 달밤에 담을 넘을 것까지야. 심지어 철 펜스였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때 이후론 간부들이 신입사원이 오면 마음 안 변하게 살살 달래는 한편으로, 서둘러 차를 사도록 유도했답니다. 교통편이 불편하네, 애인 만들려면 필요하네,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면서요. 신입사원이라 돈이 없으니 할부로 차를 살 테고, 일단 차를 사면 못 도망갈거라는 판단이었죠. 농담 같았지만 그래서 그런가 선배들이 하나같이 차가 있더군요. 물론, 도망칠 생각 1도 없던 저는 굳이 차를 사진 않았습니다.


 초임지에서만 보낸 시간만 5년이니, 사건 사고도 많았고 할 말도 많습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나올법한 사건들도 지근거리에서 겪고, '저거, 사람 아니다' 싶은 괴물(?)들과도 뒤엉켜야 했죠. 사택 침대 매트리스 밑에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던 일,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더니 볼에 '돈벌레'가 죽어서 늘러 붙어있던 일처럼 소름끼치는 사건도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 다이어트를 하기로 한 만큼, '나한테만 재미있는 이야기'는 건너뛰겠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맘에 딱 한 가지만 말해보자면, 한 번은 사택에서 쉬는데 무당벌레 한 마리가 방바닥을 기어가는 겁니다. 귀여워서 볼펜으로 조금 가지고 놀다 종이로 떠서 사택 밖으로 내보냈죠. 그날은 그러고 말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당벌레가 점점 많아지는 겁니다. 바깥으로 내보내도 다음날이면 또 있고, 바깥으로 또 내보내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났죠. 이거 뭔가 있다 싶어, 10평 안 되는 사택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렇게 뒤지길 10여분, 창문에서 틈에서 빠져나오는 무당벌레를 발견했습니다. 여기구나 싶어 창문을 열었는데, 오 마이갓, 거짓말 조금 보태서 200마리가 넘는 무당벌레들이 창문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따뜻한 바람이 나오니까 그쪽에 둥지를 튼 거였습니다. 아무리 귀여운 무당벌레라도 뭉쳐있으니 다르더군요. 엄청 징그러웠습니다. 그걸 치우느라 애먹었던 걸 생각하면. 으, 15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또 소름이 돋는군요.


[ 사진: Unsplash의 Vinu T ]


 근무 형태상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고 사택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같은 조 선배들과 어울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은 혼자서 시간을 보냈야 했죠. 그래, 자연스레 빠져든 게 온라인 게임이었습니다. 워낙에 게임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취직했겠다, 월급 따박따박 쌓이겠다, 게임을 하면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퇴근하고 나면 사택에 처박혀 자기 전까지 네다섯 시간씩 게임에 빠졌습니다. 괴로웠던 취준생 시절을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종류를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했죠. 저는 오른손잡이인데도 마우스만은 왼손으로 쓰는데, 이 시절 하도 게임을 많이 해서 오른쪽 날개죽지에 통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열받는다고 마우스를 세게 내려치면, 버튼이 팅하고 튕겨져 나온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됐죠.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요. 그렇게 미친 듯이 게임에 매달렸더니, 자연스레 '현자타임'이 오더군요. 아무리 게임을 좋아해도 '이렇게 시간을 버리는 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선배들은 미래를 내다보며 일찌감치 골프를 시작했지만, 저는 돈도 아깝고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아 선뜻 손이 안 가더군요. 그래 한동안 잊어버렸던 영어회화도 시작하고, 자전거도 타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됐든 남는 걸 해야겠다 싶었죠.


 그 와중에 자연스레 '글쓰기'가 시작됐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시나리오 쓰기'였죠. 무슨 영화인지는 기억나진 않는데, 영화를 보고 나자 '나도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정도 이야기는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었죠. 뭐,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법이죠. 도서관에 들러 시나리오 쓰기, 소설 쓰기 등의 창작 관련 책을 몇 권 빌려 읽었습니다. 3막이 뭔지, 시퀀스가 뭔지 대충 감을 잡은 뒤 바로 시나리오 쓰기에 돌입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근자감'이 따로 없었다 싶습니다. 어떻게 고작 그런 내용만 가지고 이야기를 쓸 생각을 했을까요.


 퇴근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트북을 붙들고 글을 썼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힘들기는 했지만 무척 재미있더군요. 일단 쓰고 나면 결과물이 눈에 보이니 보람도 있었고요. 하지만, 역시는 역시죠. 글쓰기, 창작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요. 글 쌓는 쾌감이 창작의 고통으로 변하자, 저절로 포기하게 되더군요. 애초에 큰 그림 하나 없이 무턱대고 덤벼든 거라, 길게 뻗어나가기 힘들었습니다. 글쓰기의 중요한 동력인 간절함도, 그때는 전혀 없었죠. 그 시절의 파일들을 오랜만에 들춰보니, 쓰다가 얼마 못 가고 멈춰버린 시나리오가 4편이나 되는군요. 한 편은 트리트먼트 수준까지 쓴 것도 있었지만, 그 역시 작품으로까지 완성되진 못했죠. 뭐, 결과만 두고 보자면, 또 하나의 뻘짓을 추가한 셈입니다.


 

[ image created by MS image creator ]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20대 후반 팔팔한 청춘이 다른 많은 재미있는 일 놔두고 왜 글쓰기를 시작했을까요. 골치 아프게 책상 앞에 앉아 글자들과 씨름하는 일을 자청했을까요. 다 아시겠지만, 재미있어서 그랬던 거 아니겠습니까. 글자를 쌓고 문장을 깎아내는 일에서 짜릿함을 느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랬던 거 아니겠습니까. 뭔가 쓰고 싶다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들끓어, 머릿속에서 뒤섞이는 글자들을 눈앞의 활자로 맞춰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시절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뭔가를 써왔습니다. 때때로 다른 일에 혼을 빼앗긴 적도 있었지만, 지나 보면 어느새 뭔가를 쓰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했죠. 결과적으로 단 한편도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단편소설도 3편 이상 썼고 장편 소설도 한편 썼습니다.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물 먹은 것만 4번이요, 장르를 바꿔 수필에도 도전했다가 '광탈'당한 일도 여러차례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글로 옮겨 마음을 전달했고, 머릿속에 생각들이 쌓이면 하나로 꿰어 사내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일생의 역작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어설픈 인문학 책도 썼다가, 출판시장의 암담한 현실만 확인한 게 바로 얼마 전이죠.


 결과만 보면 뻘짓도 이런 뻘짓이 없습니다. 들인 시간 대비, 얻은 게 거의 없거든요. 실패야 변명할 여지없이 제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인 건 압니다. '운이 어떻고 저떻고'를 논할 계제가 아니죠. 그런데 정작 궁금한 건 이겁니다. 그만큼 실패했으면 이제 그만 쓸 때도 됐는데, 왜 저는 계속 글을 쓰는 걸까요? 그 정도 실패했으면, '아, 내 길이 아닌갑다.' 포기할 법도 한데, 왜 여전히 자판 앞에서 끙끙대는 걸까요? 인생의 위기에 다시 직면한 지금도, 멍청하게도 또다시 글로써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걸까요?


 전 '다중지능' 때문이라 믿습니다.


 다중지능이 숨겨진 '배후'라 생각합니다. 가드너 박사의 분류에 따르자면 전 글쓰기에 적합한 언어지능과 자기인지 지능이 발달했던 겁니다. 지문처럼 그렇게 가지고 태어나버린 겁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넌 언어 쪽 지능이 발달한 것 같다'고 말하셨을때도 크게 귀담아듣진 않았는데, 20년 넘게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 일의 성패와는 무관하게, 저도 모르게 자꾸 글 쓰는 자리로 되돌아왔던 겁니다. 마치 자기 직업에 만족치 못하는 영어선생님이, 자연친화 지능을 쫓아 수의사를 희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제게 글쓰기는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해 지지 않는, 운명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올려놓고 집사람에게 카톡으로 링크를 보냈습니다. 거실에서 웹툰을 보고 있길래 내 것도 읽어봐 달라고 구걸 아닌 구걸을 했죠. 자존심 상하지만 어찌 됐거나 독자가 왕이요, 글쓴이는 죄인이니까요. 잠시 인터넷을 하다 다시 가봤더니, 이번엔 깔깔거리며 TV드라마에 열중하고 있군요.


"내 건 읽어 봤어? 어땠어?"

"......"

"어땠냐고."

"아, 어... 어... 뭐, 좋아."


 예의 영혼 없는 대답, 안 읽었다는 방증. 아, 이번 글도 망했군요. 예전에는 읽어주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읽지 않고서도 당당하군요. 실망스럽지만, 글 때문에 실망하는 일이야 워낙 익숙하니 그러려니 하고 말았습니다. 쳇, 쿵쾅거리며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PC를 켜고 습관적으로 다시 흰 화면을 들여다봅니다. 다음 주제가 뭐였더라...




 그런 궁금증도 듭니다. 여기 브런치의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글을 쓰는 걸까요. 요즘은 글쓰기가 호구지책이 못된다는 거 다 알면서, 책 한 권 낸다고 인생 달라질 거 없다는 거 알면서, 왜 쉴 새 없이 글쓰기에 매달리는 걸까요. 베스트 작가 한번 되보겠다고? 아니면 책 쓰기를 발판 삼아 강연가가 돼보겠다고?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대부분은  저와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그쪽 지능이 발달한 겁니다. 글 쓰는 작업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운명 지어진 겁니다.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글에 매달려 살아야만 하는 불운을 타고나버린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브런치 작가들이 좀 달리 봐지더군요. 소수의 '관심 슬롯'을 두고 싸우는 경쟁자가 아니라, 같은 불운에 시달리는 동지처럼 느껴지더군요. 패배할 확률이 압도적인 이 게임에서, 또 졌지만 털고 일어나도록 응원해 주는 전우처럼 느껴지더군요. 열심히 쓰고, 또 열심히 읽으며 우리는 함께 불운을 견뎌내고 있다 싶습니다. 그래, 독자가 몇 없더라도, 번듯한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돌아보며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쓰는 건 단순한 글이 아니라,

 우리가 운명이니까요.


이전 09화 사람의 일을 다하고, 나머진 우연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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