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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May 06. 2023

3월이 되면

친애하는 학부모님께





 올해 다시금 작고 사랑스러운 학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첫 발령지였던 청송의 학교보다 더 작은 규모의 학교이다. 1월의 어느 날 찾아간 학교 운동장에는 햇빛에 어그러진 눈사람이 서 있었다. 눈이 오면 우르르 운동장으로 나가 눈을 굴리는 학교이다.



 우리 반은 총 9명이다. 1학년은 3명이고, 3학년은 2명이다. 2학년이 9명으로 제일 많은데 내가 2학년 담임으로 당첨되었다. 올해도 열다섯들과의 시간이다. 전교생 14명 중에 9명이 우리 반이니 전교생의 3분의 2가 우리 반인 셈이다. 우리 반이 휘청하면 학교 전체가 휘청한다. 학교는 대체로 시끄러울 일이 없는데 2학년이 다 같이 도서관, 영어실, 과학실 등으로 이동 수업을 할 때면, 학교의 3분의 2가 움직이는 민족 대이동이 된다. 전교생의 3분의 2를 맡고 있는 담임으로서 어깨가 상당히 무겁다.      



 3월에는 계획하고 또 계획한다. 학교는 그냥 굴러가는 것이 아니고, 1년 동안 무난히- 굴러가기 위해서는 3월 계획 세우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태생적으로 계획적이지 못한 내가 지금만큼의 계획성을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학교의 일원으로서 버텨내기 위한 생존 본능 덕분일 것이다. 그리하여 태생적으로 계획적이지 못한 내가 각종 계획을 세우는 정신없는 3월의 나날들이다. 이러한 3월에, 없는 정신을 다독이며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학부모님께 편지 보내기’이다.      



 컴퓨터 앞에서 단정한 자세로 심호흡을 한다. 학부모님들과 첫 대면을 하는 마음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들을 고르고 고른다. 혹여나 오해가 생길만한 단어는 없는지, 지나치게 정중하거나 가볍지는 않은지, 속의 것을 너무 거침없이 뱉어내진 않았는지, 현학적이거나 권위적으로 느껴지진 않는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다른 무게로 오늘을 살아내고 있을 부모로서의 삶을 함부로 지탄하거나, 공허하게 만들진 않았는지.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진심을 가능한 꾹꾹 눌러 담아본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이들과 한 해를 살아갈 것인지, 학급 운영의 철학이나 목표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담임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고, 아이들의 치열하고도 반짝이는 성장의 시간을 함께 보자고,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그러니 안심하시라고.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데, 고작 열다섯. 세상에 태어난 지 고작 열다섯 해를 넘기고 있는 아이들이다. 66제곱미터 교실에는 타인을 보는 것도, 자신을 마주하는 것도 서툰 아이들이 모여 있다. 대립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더욱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당연하지가 않다. 막상 내 아이의 갈등 상황을 직면하게 되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심장은 제멋대로 쿵쾅거리고 걱정과 염려와 불안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눈앞이 캄캄하다. 걱정과 염려와 불안은 사람을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만든다.     



 간혹 잔뜩 웅크리거나, 반대로 잔뜩 날이 선 학부모님을 마주하게 될 때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전해지기도 한다. 내 일이 아니라 아이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괜찮지만 아이에게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전전긍긍하고 동동거린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신뢰이다. 학교와 선생님이 내 아이를 억울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 공평하고 올바르게 판단하고 이끌어 줄 것이라는 신뢰, 우리가 같은 편일 것이라는 신뢰.     



 성장의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갈등을 조금 더 지혜롭게 중재할 수 있는 어른들의 역할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교사와 부모는 일 년 동안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3월 첫날 아이들 책상 위에 두 통의 편지를 올려 둔다. 하나는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이고, 하나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담임인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무지와 막연함에서 오는 불필요한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편지 아래에는 답장을 쓸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마련해 둔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든 뭐든 자녀를 지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십사 부탁드린다.      



 그러면 다음 날부터 답장이 하나둘 도착한다. 손 글씨로 길게 적어주기도 하시고, 간결하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시고, 답장을 적지 않으시기도 한다. 답장을 보내주지 않으셔도 괜찮다.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 또한 답장을 보내는 것과 같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못하는 상황, 답장을 보내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ㅂ의 아버지는 담임이 보낸 학급 운영의 철학과 목표를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답장을 보내주셨다. 더불어 본인의 교육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적어주셨다.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몇 해 전 ㅎ의 어머니로부터 온 답장에는 힘든 가정 상황이 적혀 있었고, 할머니와 살고 있는 ㄱ이 건네준 답장 곳곳에는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의 사랑과 염려가 묻어 있었다. ㄴ어머니의 답장에는 몸이 약한 ㄴ의 건강에 대해서 구석구석 살뜰히 적혀있었고, ㄷ과 ㅁ의 어머니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고뇌를 적어주셨다. ㅈ이 전해준 답장의 글씨는 유독 삐뚤빼뚤했다. 베트남에서 오신 ㅈ어머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였다.    


     

 1년은 짧은 듯 길고, 지금은 시작을 시작하고 있다. 학부모님들께서 보내주신 답장을 읽으며 나 또한 막연함에서 비롯된 긴장을 내려놓는다. 진심을 전하는 관계 맺음으로 시작이 꽤 든든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갓 지어낸 쌀밥과 뜨끈한 된장찌개로 아침 첫 끼를 든든히 채운 출발이다.









 오랜만이지만 오랜만이 아닌 것처럼 슬그머니 다가가 앉아 봅니다. 그럼 또 오랜만이 아닌 것처럼 은근슬쩍 받아주시겠지요. :D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할까 싶습니다. 복직도 하고,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열다섯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조금씩 무언가를 적고 있기는 했습니다. 오늘 글도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 글 중 하나이고, 지금 갑자기 툭- 발행 버튼을 누르기로 해봅니다. 

 가을쯤엔 책이 출간될 것 같습니다. 이 소식 또한 슬그머니 정도로만 전하고 싶습니다. 실은 출간 소식을 전하는 것이 쑥스럽고 어려워 두어 달 글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나중 나중에 작가님들 귀에 출간 소식이 흘러 들어가기 전에 보고(?)를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슬그머니- 전하는 걸로 제 진심을 표현해 봅니다. 아마 여기까지 제 글을 꼼꼼하게 읽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진심이 전해지고도 남겠지요. :-)


 자주는 안 되겠지만 발행 버튼 녹슬지 않도록 가끔씩 눌러보려고 합니다. 슬그머니 들락거려도 은근슬쩍 받아주시기를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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