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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Jul 22. 2023

나비야, 그 날개 팔랑이지 말아 주렴

불편한 편의점과 참참참






 이것 참, 일이 또 커졌다.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니다. ‘일’이랄 것도 없는 사소한 행위쯤으로 시작된 것이 이상하게 꾸역꾸역 커진다. 사소한 날갯짓이 자꾸만 이상한 효과를 일으켜 덩어리가 커지며 불어나는 것이다.      



 예전부터 그래온 습성이기도 하다. 어릴 때 학교에서 만들기나 그리기 같은 활동을 할 때면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선생님께서 ‘자- 시간 다 되었습니다. 제출하세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어린이였다. 어쩌다가 시작된 방대함과 꼼꼼함을 끝까지 유지하여 마무리하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분명히 시작은 ‘대충 해-’인데, 대충 끝낼 수 없는 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전교생 14명과 함께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었다. 단체 체험 학습을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소년이 『불편한 편의점』 이야기를 꺼냈다. 열다섯 인생 처음으로 책 한 권을 제대로 완독해 본 것 같다며 뿌듯해하자, 다른 소년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거들기 시작했다.     


독고 씨가 편의점에서 폐기 도시락만 먹겠다고 할 때 마음이 좀 그랬어.


나도 그 장면에서 울컥했는데.


독고 씨가 두들겨 맞으면서도 염 여사의 지갑을 지킬 때도.


나는 마지막 장면 ‘강’ 이야기 완전 기억에 남는데.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아,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아름다운 대화였다. 단체 버스 안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지 않고 책 이야기라니. 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소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맞아, 선생님도 그랬어. 와 같은 추임새를 넣기도 하며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 소년 ㅈ이 참참참!! 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참참참’은 ‘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을 말하는 것인데, 소설 속 인물 ‘경만’이 편의점에서 사 먹는 메뉴이다. 마음의 여유도 없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은 마흔넷 인생 ‘경만’은 퇴근길에 편의점 혼술을 한다. 오천 원어치의 혼술이다. 그런데 소년 ㅈ이 그 ‘참참참’을 외친 것이다.      



 소년은 자기도 참참참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참참참을 먹으면 마흔넷 ‘경만’의 오천 원어치 혼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 그럼 우리도 참참참을 먹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가능하지만, 너희들은 미성년자들이므로 참참옥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 독고 씨는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참이슬’ 대신 ‘수수수염차’를 권했다. 조만간 편의점에 가서 참참옥을 사 먹어 보자고 가볍게, 대충-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학교도서관에서 대대적인 ‘참참참’행사를 했다. 가볍게, 대충- 이 날개를 달고 훨훨 덩치를 키웠다. 국어 시간에 읽은 책이, 버스 안에서 툭 던진 말이, 어째서 모두가 함께하는 학교도서관 행사가 되어버린 것일까.      



 시작은 이렇다. 우리 반 소년 ㅇ은 미술적 재능이 뛰어나다. 도움반 학생인 소년 ㅇ은 열다섯 나이에 개인 전시회도 열고, 나름 유명한 우리 반 셀럽이다. 내일 방과후 우리 반 아이들과 소년 ㅇ의 전시회에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전시회 관람 후 편의점에 가서 ‘참참참’ 아니, ‘참참옥’을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동료 선생님들께 반 아이들과 전시회에 가기로 했다고 가볍게 말을 꺼냈는데, 듣고 계시던 ㄱ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다 같이 갑시다’      


 네??


 애들 데리고 다 같이 다녀오죠.


 방과후 수업도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방과후 수업은 없애면 되지요. (방과후 수업 담당 선생님)


 네??     



 일이 커지고 있음을 직감하며 교장실로 찾아갔다. 내일 오후 수업과 방과후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전시회에 다녀와도 되는 것이냐고 여쭙자,     


어, 다녀와요.


네??


난 좋다고 생각하는데?


네. 그렇죠. 하하 기안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몇 명이서 단출하게 다녀오려 했던 전시회 관람은 학교 전체 행사가 되었고, 덕분에 미술 소년 ㅇ은 갤러리를 찾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보며 행복해했고, 편의점 ‘참참옥’은 어쩔 수 없이 잠정 연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기된 참참옥은 기말고사 시험을 치고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시간을 내어 편의점에 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럼 참참옥을 사서 학교에서 먹으면 되겠군. 우리 반이 9명이니까 참깨 라면과 참치김밥과 옥수수수염차 9인분을 사야지 했다. 그런데 1학년과 3학년도 이 책을 다 읽었는데 우리 반 녀석들 것만 사기는 뭣해서 14인분을 사려고 했으나, 참참옥만으로는 허전할 것 같아서 곁들일 과자류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이럴 거면 차라리 도서관을 편의점처럼 꾸며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논밭 사이에 귀엽고 사랑스럽게 자리 잡고 있고, 근처에는 논과 밭과 산밖에 없다. 편의점도 없고, 분식집도 없다. 도서관이 편의점이 된다면 신선하고 즐거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신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선생님들도 오실지 모르니 컵라면을 좀 더 많이 사두고, 편의점이니까 점주와 점원이 있어야 하겠지, 점주는 내가 하고, 반장과 부반장이 점원을 맡고.. 그런데 여긴 불편한 편의점이니까 살짝 불편했으면 좋겠는데. 교장선생님을 알바생으로 채용해야겠다. 내년 정년퇴임을 앞두신 교장선생님께서 앞치마를 두르시고 알바를 하시면 불편하면서 재미있겠지. 앞치마와 명찰도 필요하겠는데, 편의점 간판도...     



 3일 동안 집 앞 편의점을 들락거렸다. 미리 발주를 해둬야 참참옥 당일 수령이 가능하다. 요 며칠 비는 사정없이 때려 붓고, 빗속에서 과자와 참참옥을 들고 날랐다. 반장, 부반장과 앞치마를 두르고 도서관을 편의점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반장인 소년 ㅁ이 ‘선생님, 이상하게 자꾸 일이 커지네요. 지난번 전시회도 그렇고요.’라고 말했다. 가끔 소녀 소년들은 본질을 꿰뚫는다. 그렇게 오픈한 불편한 편의점.     



 용○면 ○○리 2××번지에 편의점이 생겼다. 편의점 입장료는 ‘책 읽고 인상 깊은 구절 적기’이다. 선생님들과 입장료를 지불한 소녀와 소년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참깨 라면을 품에 안고 내 앞에 서 있다. 나는 20인분의 물을 끓이고 부으며 자꾸 웃음이 났다. 소년 ㅎ이 장난으로 ‘점원들이 일을 안 하네~’라고 말하자, 점원 명찰을 달고, 앞치마를 두른 교장선생님께서 희끗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ㅎ에게 달려가셨다. ‘아 예예~ 제가 치워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러자 소년과 아이들이 외쳤다. ‘와- 진짜 불편해요---!’ 우리 모두가 불편하면서 웃기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소설 속 독고 씨의 말이다. 참참참, 아니 참참옥을 나누며 우리는 시간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이었다. 결국 이런 게 삶이구나. 창밖엔 빗줄기가 세차다. 빗소리를 듣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소녀 소년들이 호로록호로록 라면을 먹는다. 비 오는 날엔 컵라면이지. 소설 속 불편한 편의점의 눈물겹도록 따스한 이야기가 한 발짝 더 가까이 마음을 두드렸다.      



 편의점 참참참 행사가 끝나고, 동료 선생님들이 2학기 때 한 번 더 편의점이 오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근처 초등학교 후배들도 초대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소녀와 소년들은 2학기 때는 과자도 더 많이 사고, 진짜 편의점같이 만들자고 했고, 나는 그저 웃었다. 지금 이 글도 더 커지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나비야, 그 날개를 더는 팔랑이지 말아 주렴.







 

1.불편한 편의점 오픈합니다  2.칼각을 맞춰야 마음이 편한 편의점 알바 소년













꽃다운 나이에 교단을 떠나신 고인과 유가족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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