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과 나

빛이 바래서 멋스럽다

by 그리여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 넘기니

활자들이 기지개 켜듯 바스락 거린다

또 한 장 넘기니

마른 낙엽 같은 색

습기 마른 묵은 내음

그 속에 소녀의 바람이 있다


무얼 그리 소원했을까

초록의 설렘

반듯한 네 잎

스르륵 부서진다

시간은 책 안에 머물러 있다

행운은 스러졌다


다시 펼쳐진 책은

나를 알아볼까

꿈을 쫓던 소녀는 어디 가고

여태 이렇게 물렁한지

그냥 이성만 또렷한 중년

책장을 잡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

네 잎 클로버를 더는 찾지 않는다

희나리 같은 마음만 걱서걱


책도

나도

시간 앞에

낡고

멋스러워지고 있다


----------

책도 세월을 담아 빛이 바래서 나랑 닮아가고 있다

희나리(덜 익은 쌀을 의미. 희나리쌀)

: 덜 마른 장작이나 마른 장작을 뜻하는 순우리말. '채 마르지 않은'이라는 넓은 의미


누렇게 빛바랜 책. 값 3,500원이었다


#시답잖은 #시 #낡은책

#감성글

이전 29화끝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