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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Nov 01. 2024

밤으로 달려볼까

따르르릉

쉬익 쉬익 바람을 가른다

머리카락이 휘리릭 뒤로 펼쳐지듯 흩어지고

스쳐가는 나무들은 같은 속도로 

반대방향으로 치닫는다

별 하나가 쫓아오고

달님도 조용히 따라온다

가끔 구름도 스멀스멀 끼고 싶어 한다

밤의 나그네이고 싶다


허벅지 근육이 요동친다

힘겨운 언덕을 오른다

크르륵 틱! 기어를 변속하고

몸을 앞으로 최대한 숙이고 영차!!

마주치는 바람을 외면하려 한다

옥죄여 오는 근육의 아우성이 느껴진다

자발적 고행!!

밤의 승리자이고 싶다


언덕이 높을수록 끄응한다

이 정도로 죽지 않아

힘내어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서 페달을 밟는다

끝에 다다르는가 싶다가

이내 내리막으로 시원하게 쭈욱 달린다

밤의 자유인이고 싶다


높은 언덕을 걸어가면 쉬엄쉬엄 가도 되지만

자전거로 가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가면 그냥 걷는 거만은 못하다 여태 편하던 자전거가 짐이 되는 순간이다

편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닐 거야

때로는 고되더라도 힘듦을 즐기자


산다는 것도 그런 거겠지

편한 게 좋아서 마구마구 쓰고 안이해지면

종국에는 어느 날엔가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짐을 등에 지고 힘겹게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지


자전거에서 내려 타박타박 걸어간다

자전거는 이만 바이바이

비로소 꽃이 보이고 나무가 보인다

빨라서 볼 새도 없이 스쳐갔던 것들이 보인다

느릿느릿 걸으며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둘러보면 쉬어가는 의자도 있다

느림의 여유를 즐기자


어둠이 내려앉고 밤이 짙게 깔린다

별빛의 반짝임을 보고

달의 은은함을 감상한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깊은 심호흡을 하고 오롯이 밤을 마신다


밝은 가로등 불빛에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내 그림자가 소리 없이 쫓아온다



#밤산책

#자전거타기

#둘러보기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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