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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Dec 16. 2024

텅 빈 들판을 보노라니

내 엄마와 닮아 있다

푸릇푸릇하고 끈적끈적 덥고 이글거리던 여름이 가고

초록으로 덮였던 대지는 갈색으로 변하고

알알이 익은 곡식은 흔적도 없이 베어졌다

누렇게 고개 숙인 벼들은 탈곡기에서 탈탈 털렸겠지

비어있는 들판에는 여기저기 짚이 흩어져 있다

고왔던 손이 거칠어지고 웃는 눈가에 주름이 지던 엄마가 보인다


겨울이 성큼 내려앉은 들판은 을씨년스럽다

어쩌면 나의 엄마와도 닮아있는 들판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낌없이 주던 손은 갈라진 나무처럼 거칠다

언제나 한결같이 주고 또 주고 그러고도 부족하다고 아쉬워하셨다

모든 것을 주고 난 뒤의 들판에는 푸석하게 마른 갈색 짚뿌리 흔적만이 겨울을 기다린다 

고동나무 빛깔 같은 들판에는 고단하지만 눕지 않았던 엄마가 서있다


사계절 늘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들판은 언제나 풍성하다

이 계절 가을이 가고 겨울이 내려앉을 무렵

들판은 그제야 모든 것을 훌훌 던져버리고 온전히 텅 빈 모습이 드러난다

무거운 짐을 내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퇴색되어 있다

들판처럼 한 번쯤은 저렇게 쉬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시도 쉬지 않던 내 엄마의 분주한 발과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땅은 늘 그렇듯이

겨울과 봄의 사이 어디쯤엔가 다시 무언가를 품어서 키우겠지

쉬는 법이 없다 어쩌면 쉬는 방법을 모를지도 모르겠다

잠시만의 홀가분함만 즐기고 다시 새로운 준비를 한다

늘 쉼 없이 움짐이시던 내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다


지쳤는가 싶으면 이내 다시 일어선다

어디서 그런 원동력이 나오는 걸까

엄마가 항상 그렇게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걸 봤더랬다


엄마의 고단한 뒷모습마냥 들판은 할 일을 마치고 난 뒤의 비움으로 버석버석 말라가고 있다

풍성했던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아낌없이 주었기에 여한이 없다

생명이 죽은 듯한 모습으로 숨죽이고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커다란 생명을 품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엄마가 지치지 않고 자식들을 보듬듯이


추운 겨울이 모질게 대지를 얼려도

그 안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다

오히려 추워서 더 단단하게 자란다

내면에서 키우고 때가 되면 아름다이 세상으로 나온다

내 엄마가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셨다


대지가 늘 활기차게 초록초록으로 살아나듯이

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엄마가 눈앞에 아른아른거린다 



#대지

#들판

#엄마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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