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며
노동조합 일을 하기 전에는 집회 시작할 때 묵념의 시간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노조 일을 한 후에는 진심으로 ‘앞서간 열사와 선배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낸 분들이라니... 싶어서다.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의 영향을 받아 노동조합이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노동조합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도 참 많다. 그중에는 노조의 역할과 위상에 압도적인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노조라면 원칙, 가치, 이상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조의 활동은 “구체적인 쟁점들”로 이루어진다. 입장의 차이라곤 없이 전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사안만 있을리가 없다. 무슨 일이든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만 있을 리도 없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가장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노조인 것 같다. 우리는 현실을 이상에 가까이 끌어다 올리고 이론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한 단계씩 움직인다.
연대는 찌질하고 못난 쫄보들과 하는 것이다. 직속상관에게 건의 한마디 못하면서 노조 집행부에는 벼라별 요구를 하는 사람들, 자기 일이 되면 발을 빼고 싶어하는 사람들, 적극적으로 지지하다가도 갈등이 깊어지는 것 같으면 제삼자인 것처럼 논평만 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꾸준히 작은 모임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투쟁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취미 클래스를 열면서 계속해서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한다면, 그리고 일견 우리랑은 멀어 보이는 주제들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게 된다면, 언젠가 큰 일이 일어났을 때 다 같이 일어나게 된다.
혐오에 맞서서 큰 소리를 내고 논리 정연하게 성평등을 설파하며 차별의 순간에는 순발력 있게 즉시 저항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만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리숙하기도 하고 오류도 범하는 사람들이지만조언과 격려와 서로 배움을 하면서 직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딱히 사업장 폐쇄나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있는 곳만 노조가 필요한 게 아니다. 큰 일 없어 보이는 회사에도 노조는 필요하다. 매일 겪는 일상이 우리의 의견과 행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은 직장을 상상 속에서만 그리지 말고 내 손으로 만드는 일, 다들 꼭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