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꼴 디자이너 이노을 인터뷰
AGfont 새 입점 글꼴〈퓨자〉와〈오흐탕크 한글〉
글꼴 소식: 파라메트릭 글꼴(Parametric Typeface)
이노을 디자이너는 글꼴 디자이너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국민대학교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석사과정과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 예술학교(KABK) 타입미디어(TypeMedia) 석사과정을 졸업했어요. 현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글꼴 및 그래픽디자인 중심의 독립 스튜디오인 lo-ol foundry를 로리스 올리비에와 함께 운영 중입니다. 〈아르바나〉는 제6회 방일영문화재단 글꼴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헤이그 왕립 예술학교(KABK) 졸업 작품으로 그린 〈아리온〉은 2019년도 일본 모리사와 타입 공모전 라틴 카테고리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AGTI와 함께 네이버 마루 프로젝트의 〈“마루 부리” 라틴〉과 현대백화점 전용 글꼴〈“해피니스 산스” 라틴〉을 작업하여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현재 AGfont에 입점해 있는 한글/라틴 글꼴 〈아르바나〉, 〈기파란〉, 라틴 전용 글꼴 〈르마닉〉, 〈오흐탕크〉 외 새로 오픈한 라틴 글꼴 〈퓨자〉와 5월 중순에 선보일 예정인 한글 글꼴에 대해 들어봅니다.
¶스위스의 글꼴 시장은 어떤가요?
독일, 프랑스에 비하면 스위스는 글꼴 시장이 그리 크지 않아요. 스위스의 경우, 네트워크 기반의 소규모 커뮤니티 중심의 문화가 전반에 깔려있다 보니 네트워크 없이는 글꼴 시장에 들어가 홍보하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글꼴 디자이너들끼리의 교류도 별로 없어요. 대신 학교를 중심으로 스위스 글꼴 문화와 시장이 형성됩니다. 오히려 한국(특히 서울)이 글꼴 관련 행사도 더 풍부하고 디자이너들끼리 교류도 활발합니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곳에서 한글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은 어떤가요?
유럽 전반에서 멀티 스크립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올해 저는 스위스-한국 교류 60주년 기념으로 로잔 예술 대학교(ECAL)에서 한글 글꼴 디자인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K-컬처 영향으로 한글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어요. 글꼴 문화 전반에 있어 큰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꼴 디자인만 따로 봤을 때, 아직까지는 한글 글꼴 디자인에 큰 관심을 갖는 학생이나 디자이너는 소수라고 보시면 돼요. 아무래도 CJK는 글자 수도 많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어서인 듯합니다. 앞으로는 해외에서도 한글 글꼴 디자인 관련한 수업, 또는 워크숍이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생기면 좋겠네요. 저도 여건이 된다면 관련 수업 및 워크숍을 만들어 해외에서의 한글 디자인 시장의 확장에 기여하고 싶어요.
¶지금 유럽에서는 어떤 스타일 글꼴이 유행인가요?
트렌드를 한마디로 압축하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라틴 글꼴은 과도기에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창 아르누보 계열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글꼴들이 인기가 많았어요. 구글 폰트 리스트에 있는 〈Inter〉처럼 약간 헬베티카 룩의 뉴트럴 한 글꼴은 UI 디자이너들에게 언제나 인기가 많은 것 같고요. 최근에는 디스플레이적인 성향의 화려한 글꼴이나 뉴트럴 한 글꼴들이 인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또한 과거의 흔적을 새롭게 해석한 리바이벌 프로젝트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다양한 필기구로 직접 글자를 쓰는 실험이 많습니다. 그만큼 노을 님의 글꼴 제작 과정에서 스케치가 중요해 보이는데요. 직접 쓰는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캘리그래피나 레터링을 잘 못합니다. 글씨도 악필이고요. 그런데 글꼴 디자인은 일반적인 잘 그리는 스케치와 많이 다릅니다. 글자 자체는 쓰기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글씨를 잘 쓰든 못 쓰든 그 안에는 특정한 동작과 쓰임새가 들어있습니다. 다양한 필기구를 쓰면서 각 도구에서 발현되는 느낌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잘하든 못하든 아이디어를 생각할 때 조금이라도 러프 스케치를 시도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라틴과 한글을 그릴 때 서로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각각 어떻게 콘셉트를 잡고 형태를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lo-ol의 경우, 두 디자이너가 각자의 스타일, 잘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달라 시작 때부터 역할을 나눴어요. 예를 들면, 로리스가 라틴 글꼴 아트디렉션을 맡고, 제가 로리스에게 맞춰 글꼴 디자인을 확장, 마무리합니다. 한글은 아트디렉션을 비롯해 마무리까지 제가 혼자 합니다. 그래서 라틴과 한글을 그릴 때 디렉션이 다릅니다. 라틴의 경우, 먼저 라이브러리에 없는 계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타 글꼴 파운드리와 차이를 줄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합니다.
¶‘차별화’가 큰 의미로 작용하는군요?
네, 맞습니다. 라틴과 한글, 둘 다 이 지점에 대한 의문으로 콘셉트 구상을 시작해요.
¶한글과 라틴 이 외에 다른 언어권 문자에도 관심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최근 라틴 시장의 경우 키릴, 그릭 문자권으로 확장하는 추세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여건이 된다면 한자나 칸지, 히라가나, 가타카나 등 CJ파트를 배워 디자인 흐름을 알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라틴과 한글 디자인과 달리, 한자나 칸지 쪽은 배울 수 있는 통로가 좁다 보니 쉽지 않네요.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글꼴 라이브러리를 확장하고 사이트도 더 편하게 바꾸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서울에서도 글꼴 관련하여 다양한 워크숍과 강의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 〈퓨자〉 글꼴 이름이 생소해요.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퓨자〉는 Fuse(융합되다, 결합되다, 금속을 녹이다)라는 영어 단어에서 착안했어요. 〈퓨자〉는 그로테스크 구조 안에 매우 역동적인 디테일을 결합한 독특한 산세리프 글꼴입니다. 일반적인 뉴트럴한 그로테스크 글꼴과 달리 ‘새로운 느낌을 구조 안에 녹여냈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퓨자〉라고 지었어요.
¶〈퓨자〉의 좁은 너비(Condensed), 약간 좁은 너비(SemiCondensed) 그리고 기본 너비(Normal)는 각각 쓰임과 목적이 다를 것 같은데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요?
기본 너비의 경우 일반적인 본문용 텍스트에 사용하면 좋아요. 좁은 너비와 약간 좁은 너비의 경우, 단락이 좁은 경우나 여러 단락으로 구성된 경우에 사용하면 좋고요. 특히 좁은 너비는 포스터같이 표현이 중요할 때 사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퓨자〉는 본문용과 제목용 두 가지 인상을 다 지니고 있어 어느 쪽이든 잘 어울립니다.
¶〈퓨자〉을 그리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탤릭체를 그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퓨자〉이탤릭체 각도는 24도로 설정했는데, 다른 이탤릭체와 비교하면 많이 기울어져 있는 편이라 굵기 조절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퓨자〉 이탤릭체는 L, E, F, T 등 직선형 가로줄기 끝부분 각도가 90도를 유지하고 세로줄기 상단은 수평의 형태가 아닌, 각도에 따라 기울어집니다. (e.g. I의 상단부분) 이러한 부분이 퓨자 이탤릭체에서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모든 굵기에 어색하지 않게 보이도록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커닝 작업도 상당히 애먹었습니다.
¶〈오흐탕크 한글 텍스트/디스플레이〉는 어떤 글꼴인가요?
AGfont에 입점해 있는 라틴 글꼴 〈오흐탕크〉의 한글 컴패니언 버전이에요. 〈오흐탕크〉 라틴의 콘셉트를 한글에 맞춰 디자인한 글꼴입니다. 기하학적 느낌의 민부리 글꼴로, 텍스트 버전과 디스플레이 버전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특히 파격적인 디지털 형태를 지닌 〈오흐탕크 한글 디스플레이〉는 굵어질수록 디자인 의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이번에 소개할 글꼴은 파라메트릭 글꼴인데요, 파라메트릭 글꼴(Parametric Typeface)은 정의된 매개 변수 내에서 작동하며 엑스하이트(x-height), 선 너비, 글자 너비와 같은 패러미터(parameter) 값을 조절하여 글꼴을 변경할 수 있어요. 파라메트릭 시스템은 각 문자에서 둘 이상의 마스터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변 글꼴과 조금 다르게 작동해요. 가장 복잡하고 진보된 시스템이 똑똑하게 디자인된 하나의 마스터 글꼴에서 전체 글꼴을 생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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