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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Mar 27. 2024

버린 음식물을 먹기 위해 돌진하는 중학생

IQ85 돌고래인간을 살린 쓰레기의 재발견

LPG 통 삼총사의 대형사고


노력의 배신을 당한 초등학생 돌변은 상처받은 영혼.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이후 야구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운동 센서가 대량 누락된 안타까운 몸의 주인. 야구 선수로 조기 은퇴했다. 공부도 운동도 못해서 방황하는 시기에 다른 이유로 방황하는 꼴통 친구들을 만났다. 소심했던 나도 이 친구들 때문에 조금 담대해졌다고나 할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친구의 이름은 영재와 훈영이.


영재는 염색으로 오해받을 만큼 밝은 갈색 머리 소년. 훈영이는 깡마른 체형에 흑인 같은 검은 얼굴로 눈에 점이 하나 있는 재밌는 친구였다. 삼총사 중에서 영재가 배짱이 두둑했고 리더였다. 영재가 미친 척하고 사이코 짓을 할 때면 심장이 쫄깃했다. 신기한 것은 소심한 내가 그런 미치광이 장난에 마약처럼 중독됐다는 사실.

"오늘 또 무슨 사고를 치지? 가슴 콩닥 뛰는 일 없나?"란 기대감을 갖고 등교했다.


영재는 새아버지와 훈영이는 새어머니와 살았다. 우리 집은 이혼 가정이 아녔지만, 이혼하지 않은 것이 미스터리였다. 삼총사는 삶의 아픔과 상처를 공유했는데 꼴통보다 심각한 LPG 가스통이었다. 장난 이란 이름의 테러를 저지르고 다녔다.


하루는 셋이서 근린공원에 올라가던 중 영재가 라이터를 줍는다. 영재는 라이터로 종이 태우는 놀이를 한다. 그때 눈치 없는 훈영이가 영재의 손을 친다. 불붙은 종이는 이내 잔디밭 위로 떨어진다. 삼총사는 불붙은 잔디를 달걀을 품는 에디슨과 같은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호기심은 1분도 지나지 않아 공포로 바뀌고 불이 급속도로 커진다. 진화를 위해 토종닭처럼 푸다닥 거리며 온 잔디를 밟았지만 이미 늦었다.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우리는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바로 119에 신고했다. 무사히 진화되었지만, 당시에 초등학생이 라이터로 장난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우리는 참으로 미친놈들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싶어 한 중학생


영재와 훈영이의 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재와 훈영이는 점심에 도시락 먹는 것을 싫어했다. 먹지 않은 도시락을 갖고 가면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니 영악한 초딩들이 매일 같이 담벼락에 도시락을 버렸다.


그날도 평소처럼 도시락을 버리고 있었다. 영재의 밥을 버렸고 반찬을 버리는 찰나 교복을 입은 중학생 형이 전속력으로 뛰어온다.


"하지 마"

라고 외치며 다급하게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며 계속된 중학생의 말 한마디가 지금도 생생하다.


버리지 마! 그... 밥... 내가 먹어도 되겠니?



무섭게 달려오는 중학생은 영양을 잡는 사자 같았다. 초딩 3명은 발바닥이 땅에 붙은 채 얼었다. 사자가 도시락을 버리는 건방진 초딩을 때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달려온 굶은 사자였다. 무릎을 꿇은 채 초등학생 3명 앞에서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어치웠다.


맹수의 왕이 식사할 때 건드리는 동물에게는 죽음뿐! 삼총사는 숨죽이고 바라본다. 입 주변에 묻은 케첩이 초식동물의 혈흔처럼 보여 영락없는 사자였다. 어찌나 배고팠는지 포크와 수저라는 문명의 산물을 포기하고 동물적으로 식사하는 굶은 사자. 뜯어진 교복은 사냥 중에 다친 피부와 같고 떡져있는 머리는 수사자의 갈기처럼 솟아있었다. 식사를 마친 맹수는 순한 양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친구들이 도시락을 버리면 음식물 쓰레기가 됐을 텐데...

가난한 중학생의 뱃속으로 들어가니 사람을 살리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은 삼총사의 일기장에 모두 기록될 만큼 삶을 변화시킨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불우한 환경에 대한 삼총사의 분노가 잠재워질 만큼 우리 셋은 충격받았다. 반성과 회개의 마음도 공동구매가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중학생을 만난 후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끝까지 노력해 보자



초등학교 때 저질렀던 기행과 방황이 약이 되어 청소년기 때 탈선하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꼴찌 그룹에서 출발해서 중상위권 이상의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쓰레기를 주워 공부하는 다른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늘 발목을 잡은 것은 기초의 부재. 철근 빼먹은 부실공사 아파트처럼 공부에 필요한 기초 철근이 빠져있었다. 지반은 틈만 나면 무너졌다.


가령, 언어영역 시험 시간에 "윗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은 무엇인가요?" 따위의 문제가 제일 싫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구분해 놓고 나보고 수사반장이 되어서 거짓말쟁이를 찾아내라고?


문해력이 부족했던 터라 수사반장 문제만 나오면 정신이 수갑 차고 유치장에 감금됐다. 과도한 집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깨에 담이 올 정도로 집중하고 지문을 읽어도 결과는 같았다.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철창의 봉인이 해제됐으나 절망의 봉인도 함께 해제됐다.


보통 이 정도 되면 공부를 포기한다. 하지만, 투지 충만 흙수저 오뚝이 돌변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 가출해서 돈을 벌거나 공부하는 일 밖에 없었다. 공부를 선택한 만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공부 좀 한다 하는 친구들과 여러 교과목 선생님들이 인정할 만큼 성실한 학생이었다.


얼마 뒤 찾아온 또 다른 위기. 어머니가 동업 사기를 당한다. 피사의 사탑처럼 이미 기울어진 가세는 손가락으로 톡 치면 붕괴될 것 같았다. 이후 수학 문제집 살 돈도 없는 빠듯한 상황이 찾아온다. 이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공부... 이젠 정말 그만하고 가출을 해서 돈을 벌까?


머리 나쁜 내가 공부를 계속하면 가족 모두에게 비극이 될 것 같았다. 많은 고민을 하던 차에 버린 도시락을 먹던 그분이 생각났다. 바로 맹수처럼 맨손으로 도시락을 먹었던 중학생. 돌변에게 필요한 것은 살기 위한 간절한 투지였다.


"간절하면 길은 열린다"


버린 도시락을 먹는 굶은 사자처럼 나는 문제집을 찾아 나섰다. 우연히 남이 버린 수학 문제집을 찾았다. 나에게 필요한 그 책이었다. 그런데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 책은 중고로 재활용하기 참 까다롭다. 답과 풀이 과정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답과 풀이 과정을 지우개로 지웠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공부를 방해했다. 어머니가 아이디어를 주셨다.


"검은색 채점용 색연필로 칠해보자"

한석봉과 어머니처럼 엄마가 지우개로 문제집을 지우면 아들은 검정 색연필을 칠했다.


친구들이 가끔 내 문제집을 보면 신기해서 물어본다.

"돌변아! 문제집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색연필이 칠해졌어?"


내가 대충 둘러댄다.

"응 2번째 풀었거든 답이 안 보이게 하려고 덮어버렸어"


그 책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수학 성적은 많이 올랐다. 물론 최고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굶은 사자 중학생이 힘들 때마다 방향을 안내하는 조력자가 돼주었다.



쓰레기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놓인 것


오래전 친구들이 버리려던 도시락은 음식물 쓰레기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배고픈 중학생을 만나 사람 살리는 음식으로 가치가 재발견됐다.

버려진 수학 문제집은 재활용 쓰레기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나를 만나 지식 창고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간절할 때 옛날 생각이 난다. 일을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내가 관찰하지 않은 반대쪽 단면을 밝히 비추어보려고 한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


물건과 음식도 이렇게 소중하거늘 사람은 말해 무엇할까?

음식물이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면 그것의 "버렸다"라는 행위의 결과이다.

하지만, 버려진 음식물에 흙이 묻을 수는 있어도 음식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버렸다"라는 행위에 집중하기에 "버림받음" 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버렸다"라는 행위에 상처받지 말자. 사람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잠시 놓인 것이다.

다른 상황에 놓일 순 있어도 버릴 수 없다.



놓일 순 있어도 버려질 순 없다.
무가치한 존재는 없다. 가치는 끊임없이 재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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