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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Sep 30. 2024

빌딩 부자가 경차 타는 속사정

똥차 INSIDE 3 (진짜 부자이야기 2)

빌딩 부자가 2억짜리 벤츠를 팔고 경차를 탄다


'곰대표'란 별명의 가까운 지인이 있다. 곰을 연상하는 본명과 큰 풍채 덕에 나에게는 '곰대표'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인 만큼 부르주아다. 반면, 나는 서민이다. 프로레타리아를 닮은 프로박테리아라고나 할까? 사회에서 만나 계산기 두드리며 친해진 사이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하던 사이다. 그 덕에 프로박테리아 신분 주제에 부르주아에게 자주 까불고 덤빌 수 있다. 나는 '곰대표 월드 자유이용권'을 갖고 있다.


미련곰탱이라는 표현은 똑똑한 곰에게는 모욕적인 인간세계의 언어. 알을 낳기 위해 영차영차 본향으로 돌아가는 연어 떼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흐으르는 가앙무울을 거어꾸로 거어슬러 오오르는 연어들의~" 오래된 강산에 씨의 노래가 절로 나온다. 본향을 향하는 연어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숭고하다 못해 비장하다. 태어난 곳에서 알을 낳고 그곳에서 죽는 철학 넘치는 녀석을 입에 넣었던 나 자신이 미울 정도. 그때 감동파괴자 흑색 덩어리 곰이 등장한다. 곰은 연어의 귀향길을 급습한다. 그리고 무식하게 큰 두 손으로 연어를 패대기친다. 정말 똑똑하다.


곰대표도 곰처럼 현명하다. 젊은 시절 연어를 잡아먹는 곰처럼 돈이 가는 길목에서 돈사냥을 잘했다. 자산이 상상을 초월한다.


얼마 전 BMW 팔고 나서 영입한 중고차 "파랑새"를 몰고 곰대표를 만나러 갔다.


"형 나 차 바꿨어 파란색으로.. 웃기지? 색상명이 캐리비안블루야"라고 말하자 그가 말한다.


"형도 사업이 안 좋아서 벤츠 팔았어. 회사가 적자는 아닌데 불경기라 돈이 안도네"


"형은 부자니까 작은 건물 하나 팔면 되지 않아?"라고 말했더니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인마 건물을 팔 순 없지. 잠깐 어렵더라도 자산은 미래를 위해 최대한 지켜야 하는 거야"


"형 그럼 뭐 타고 다녀?"


"응 나 경차 타고 다녀~  10년 된 회사차인데 레이 알지? 박스차"


물론 곰대표는 차가 몇 대나 더 있고 형수님도 고급차를 탄다. 그래도 빌딩을 몇 채나 보유한 부자가 경차를 타니 새삼 놀랐다. 더군다나 오래된 회사차라 부식의 흔적까지 보일만큼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엄청난 부자도 경차를 타는구나.
부자가 차는 팔더라도 자산은 미래를 위해 지키는구나.



현재를 보면 '탈 수 없는 이유' VS 미래를 보면 '탈 수 있는 이유'


곰대표를 만나 벤츠를 '탈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알게 됐다. 단기적으로 현금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경차를 '탈 수 있는 이유'를 얘기해보고 싶다.


남들의 이목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곰대표. 차를 팔고 속상할 수도 있는데 그는 유쾌하고 긍정적이었다. 차에 대한 열등감은 1도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미래의 사업구상을 할 땐 연어사냥하는 곰처럼 냉철하지만, 인간적이며 진실했다.


반면 과소비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그 차를 '탈 수 없는 이유'는 참 많다.


이 정도 지위가 되면 이 정도 차는 타야지...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이 정도 차는 타야지...

이 정도 연봉이면 이 정도 차는 타야지...

이 동네에서 학부모들 만나려면 이 정도는 타야지...



'이 정도'라는 것도 보여주기식 허세인생이 극에 달하는 시기에 근거 있는 기준점인지 헷갈린다. 이쯤 되면 사람이 차를 끌고 가는 것인지 사람이 차에 끌려가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자신감이 없기에 좋은 차로 자신을 '거짓 자신감'의 세계로 멱살 캐리하는 것은 아닐까?


곰대표에게는 경차를 '탈 수 없는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차를 '탈 수 있는 이유'가 보였다.

자기 삶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며 남들의 이목은 중요치 않다는 삶의 주도성이 보였다.



부자가 경차를 타는 이유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기 때문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고귀한 자존감의 아이콘 곰대표의 차를 실물로 영접했다. 박스카 스타일의 경차로 작은 타이어가 깜찍했다. 차에는 회사이름이 버스광고판처럼 도배되어 있었다. 파랑새도 많이 튀는데 그의 차는 이동 광고차량 수준으로 정말 튄다. 어쨌거나 빌딩 부자의 2억짜리 벤츠는 경차로 바뀌고 나의 BMW는 파랑새로 바뀌었다. 서로의 차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곰대표의 깊은 보조개만큼이나 깊은 자신감이 보였다.


몇 달 만에 고급차를 팔고 '똥차 실험'을 하고 있는 우리는 그날만큼은 친형제였다. 부르주아와 프로박테리아는 그렇게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뛰어넘어 하나가 됐다. 그리고 작은 공화국은 만들었다. 국가명 똥차 공화국.


경차라도 '끌고 다니면 주인'이고 고급차라도 '끌려 다니면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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