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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의 꽃

by 이지원


두 눈이 뜨거워졌다.

이제는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에 절여진 이마를 짚고, 식은 물로 약을 삼키고, 데어 버릴 정도로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버려진 것 같으면서도 버려지지 않았고, 얼굴 위의 꽃이 일그러진 것 같으면서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나의 한 조각이 머무르는 가족의 등은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그렇다고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손을 붙잡기에는 너무 늦은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 손이 떠나는 사람의 등을 잡기엔 너무나도 말캉하다는 것을 알아서, 그냥 삼십 대 여인이 나를 여전히 등지고 있는 채로 늙어가는 것을 보았다.


돌아갈 곳이 필요해요,라고 전에 보았던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말했다. 따뜻한 색채라고는 좀처럼 뵐 수 없는 거실에서, 식탁을 앞에 두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테이블을 훑는 까만 눈 안에 쓸쓸한 먼지가 가득 쌓여 있던 것을 보았다.


나는 아직도 지독한 꿈을 걷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어쩌면 썩은 부분만을 파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똑같고, 아직 썩지 않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검게 무른 표면에 발을 담그며 우두망찰 바라보고 있는 걸까.


몸에 피었던 파란 꽃의 뿌리가 깊이 박힌 것을 나는 이제야 마주했다. 자꾸만 새로운 아픔이 비료가 되어 몸을 뒤덮는다. 자라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남의 입술로 그것을 옮기고, 빨아 삼키면 좀 나아질까. 그러나 떫기만 한 꽃을 누가 빨아 삼킬까. 단맛이라고는 없는, 먹어서는 안 되는 꽃을 누가 입술과 혀로 옮기고 핥아낼까. 나는 벌어진 상처를, 하얀 뿌리가 독한 생명을 품고 파고든 그곳을 미지근한 혀로 핥으며 살아가고 있다. 덧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밖엔 방법이 없어서.


아무 일도 없다고, 어린 나는 이십 년 동안 입이 닳도록 말을 하며 살았다. 벌건 빛과 열기가 가득한 마음 안에서, 그 작은 어린아이가 역시 두려움에 집어삼켜진 눈을 하고 말을 했다.


어쩌면 이건 꿈일지도 몰라. 원래 꿈에서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르기만 하잖아. 다 그런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깨어나면, 우리가 여기서 나가게 되면,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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