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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

by 이지원

안녕, 여러분.

어제는 몸을 깨끗하게 씻었어요. 매일 저녁마다 새로운 향기 속에 몸을 파묻고 씻어내지만, 어제만큼은 기분이 달랐어요. 그리 좋았던 건 아닌데요, 나쁘지도 않았답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썼던 글을 기억해요. 그때는 이리저리 도망을 치는 사람이었어요. 나를 먹어치우는 불안을 피해 빗속을 달리는 사람이었어요. 미끄러져도 개의치 않고 달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비인지, 사람의 눈물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정말 망연히 서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요, 장대비가 얇은 면티 한 장을 다 적시고 그 밑으로 분홍빛 속살의 윤곽이 보여도 감추지 못했답니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다 젖어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도, 아까 넘어져 상처가 난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와도 살필 수 없었어요. 다만 비어 버린 듯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었어요. 젖은 옷 밑으로 뜨거운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더군요. 죽은 줄만 알았던 것이…….


지금 저는 도망을 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파격적인 행동을 할 정도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니까요. 세상에 태어나고 새로운 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저에게는 다양한 이름표가 붙었습니다.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며, 몇 안 되는 누군가의 지인, 어느 대학교의 학생이지요. 그러니 오래전처럼 해야 할 일을 내던지고 도망을 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여기서 나가기 전까지는요.


삶을 끝마치는 것에는 고통이 따르지요.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제가 정말 죽는다 해서 행복할지 어떨지는 알 길이 없어요. 목을 조금만 졸라도 두 귀가 터질 것처럼 아프고 피가 몰려 얼굴이 새빨개지더군요. 몸에 상처를 내어 죽음에 이르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찰과상보다 배는 더 깊이 상처를 내야 한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견딜 수 없어서, 안식에 접어들기 위해 더한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지금 여기에 살아 있습니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을 꺾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내 목을 부여잡은 가죽 벨트를 끊어내기 위해 가한 힘은 내가 삶을 끝마치기 위해 그것을 문고리에 매달던 힘보다 몇 배는 더 강했습니다. 별로 의미는 없어도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요? 어깨가 무겁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당장의 고통을 피하고 싶었던 걸까요? 따지고 보면 죽음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했던 것도 당장의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였을 텐데요.

아무튼, 몸이 행한 일이니 제가 무어라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과 머리가, 나의 발끝으로부터 이어져 나온 낡은 그림자가 입을 모아 죽음을 외치는데도 기가 막힐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해 나를 그곳으로부터 떼어놓았어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어요.


최근에는 또 마음과 머리가 나름의 저항을 하는 중인가 봅니다. 방해꾼을 아예 망가뜨리려는 생각인지, 필요로 하는 물도 음식도 주지를 않는군요. 맛이 느껴지는 것을 입에 대면, 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맹맹하게 느껴진답니다. 저는 아직까지 음식을 게워내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먹는 것이 마치 죄악으로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이 밖의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음식과 물을 주지 않는 것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맞다고, 그렇게 고쳐주고 싶으시겠죠. 그 생각이 맞을 거예요.


방금 커튼을 들추고 새 햇빛을 보았어요. 꽤 자주 보았던 풍경인데, 정말 낯설었어요. 내가 갈 수 없는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가슴이 아파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더운가 봐요. 옷차림이 부쩍 얇아졌어요. 저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이 방과 다르게 바깥은 참 따뜻해요. 무서울 정도로.


이번에는 또 누가 이길까요? 아무리 마음이 완강하다 해도 몸을 이길 수가 있을까요? 반대로, 말단부터 망가져 가는 몸이 마음을 꺾을 수가 있을까요? 지켜보는 저로서는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지 잠이 쏟아질 뿐이에요. 다만 이제껏 그래왔듯이 저녁때쯤 음식을 다시 입에 넣을지도 모르지요. 겨울이 잠에 빠지고 봄이 깨어났듯이, 이 마음과 몸에도 새로운 생명이 피어날까요? 그리고 그것을 구원이라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긴 푸념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생각이 잉크가 되어 백지를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행복이라 말한다면 행복이겠지요. 오래오래, 나름의 봄을 만끽하며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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