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었다. 중간고사 과목들 중 가장 힘들었던 과목을 넘긴 주였다.
엄마는 전에 말속에 쐐기를 넣어 던졌던 것을 못내 미안해하고 계셨다. 구태여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주 또렷이 보였다. 나를 향한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전에는 없던 온기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생긴 새로운 변화라고 할까, 엄마는 나를 다그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진 뒤에 차분한 목소리로 날카로운 말의 겉껍질을 벗겨내셨다. 알아서 감정을 추스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의도를 명확하게 다시 전해주시려 노력하시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엄마는 네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자꾸만 신경을 기울이느라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속상했어. 곁에서 널 응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모습도 그랬고."
낯선 온도의 목소리가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나는 얼빠진 표정을 하고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를 귀에 흘려 넣었다.
"그리고 네가 가진 게 왜 없겠니. 엄마가 봤을 때 너는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 잘하는 것도 많고. 세탁기도 못 돌리던 아이가 기숙사에 가서는 세탁기도 척척 돌리고, 먹고 싶은 것도 용기 내서 주문하고. 사람 무섭다고 밖에도 못 나가던 아이가 이제는 멀리 떨어진 학교랑 집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잖아. 엄마는 너의 그런 성장이 정말 기뻐."
"응..."
입에서 들릴 듯 말 듯 가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너만 바라보렴.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도 타고난 성격도 다 다르단다. 저 사람이 너보다 더 잘나 보인다고 해서 너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미워할 필요는 없는 거야. 엄마는 네가 지금 마음껏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소한 것이지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이 참 많아.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 한 끼도 먹을 수 있고, 같이 산책도 할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얼마나 감사하니.
지원아, 과거도 미래도 없는 거야. 그저 지금 이 순간의 너만 바라보렴.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앞서서 걱정할 필요는 없어.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면 그걸로 된 거야."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따스하고 부드러웠던 엄마의 말이었다.
"우리 딸, 참 잘하고 있어.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나는 쭈뼛거리면서도 우물우물거리며 대답을 휴대폰 너머로 흘려보냈다.
"응, 고마워. 나도 많이 사랑해."
"그래, 끊는다."
생각이 많아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그 낯선 온기 덕에 조금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엄마,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여태껏 수수께끼였던 엄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이 말들은 한순간에 터지는 별빛이 되어 저문 듯 보이지만 내 마음에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어 예쁜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도 이 별을 전해줄 수 있겠죠.
고마워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