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저냥 살았던 날.
죽음에 관련된 매체를 보면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돌아서면 잊는 날의 반복이다.
예고 없이 찾아올 마지막 순간은 감히 내가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여태껏 마주하려 했던 모든 순간이 그런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때면, 다시 그날을 떠올려 마음을 환기하곤 한다.
새하얀 방문의 손잡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날이 있었다.
어디선가 보았다.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겁이 많았고 천장 위에서 밑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나에게 문의 손잡이는 마치 꿈처럼 보였다.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은색 방문 손잡이에는 자주 착용하던 가죽 벨트가 걸렸다. 홀린 듯이, 홀린 듯이. 아마도 그때의 나는 무언가에 홀렸을지도 모른다. 새벽에는 못된 괴물이 자주 찾아오니까. 그러니 내 눈엔 보이지 않아도 새벽 공기에 섞여 들어온 괴물이 내 손을 잡아 벨트를 묶게 한 걸지도 모르지. 비겁한 변명에 정신을 맡겨 버렸고 괴물의 장난이 끝을 보일 때 즈음에는 이미 몇 번이나 기침을 뱉어대고 있었다.
이명이 들렸다. 두 눈이 빠질 듯이 아파왔다. 그래도 못난 나는 감히 살아서는 안 될 거라 생각해서 몇 번이나 스스로를 눌렀다. 더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무서웠다. 지금만 참으면 잠든 것처럼 편해질 거라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슬프게도 그 사이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눈앞이 흐리게 번지고 정말 죽을 것만 같으니 이제는 살고 싶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본능이란 게 참 무섭다. 우울이 불러온 충동은 본능마저도 거스르게 만드는구나. 충동이 가시고 나니 이제는 정말 본능대로 행동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겁이 많았던 나는 줄을 혼자서도 풀 수 있을 만큼 느슨하게 묶어뒀기에 간신히 괴물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흐릿하게 들리던 소리가 이제는 뚜렷이 들렸다. 잠긴 방문을 두드리며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건넛방에서 듣기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니 놀라서 달려오신 듯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못된 괴물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눈물이 잔뜩 고이신 어머니와 한참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 직접 실행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나는 못된 사람.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아니 자신마저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못난 사람.
찍어 먹어 봐야만 아는 어리석은 사람.
습관적으로 죽음을 찾았지만, 이제는 그 단어의 품이 그리 따뜻하지는 않다는 걸 안다.
그냥 살다 보면 그래도 좀 괜찮은 날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