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의사와 환자 이야기 / 바다출판사(2024)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 GP)는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배우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익숙치 않다.”
“이 의사는 환자들을 잘 안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여러 해에 걸쳐, 대를 이어서 지켜주는 사람이다.”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된 요소가 바로 비밀유지이다.
의사는 이렇게 해야만 자기 일의 중심에 있는 인간관계들을 진실되게 드러낼 수 있다.”
“매일 만나는 모든 환자의 이면에는
의료 기록뿐만 아니라 개인사, 경험과 감정으로 굽이진 통로, 환자의 인생 전체가 있다.
진료를 할 때 의사는 그 역사의 파편, 티끌만을 볼 뿐이다.“
“두꺼운 양장노트에 매일 가장 흥미로웠던 환자에 대해 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거나 경탄을 자아내는 사람, 혹은 좌절을 느끼게 하는 사람에 대해 쓴다.”
“자신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의사는 모든 책꽂이에 매우 특별한 이야기들이 꽂혀있는 아주 멋진 도서관을 뒤지는 사람이라고.”
“그 경험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통로, 그러니까 환자의 이야기가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안다.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이다.
의사는 그 미래에 대해서 역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낀다.”
“사샬이 오늘날 양극성장애라는 질환, 과거 ‘조울증’으로 알려졌던 질환을 앓고 있던 것은 비밀이 아니다.“
“사샬 선생님은 저에게 사람들을 돌보려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며,
개개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게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건강이라는 보다 폭넒은 맥락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죠.”
“의사는 이런 날들을 돌이켜 보며 두려움을 관리하기 위해,
두려움뿐만 아니라 실로 모든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그 지독한 시간을 꼭 거쳐야 했다고 생각한다.”
“외과의사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메스인 것처럼 일반의의 도구는 관계이다.
좋은 관계를 쌓으려면 순발력과 판단력이 좋아야 한다.
10분 단위로 새로이 공감 능력을 발휘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며, 협력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영리하게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 진료가 끝날 때마다 칠판을 깨끗이 지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일반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이와 같은 지적 곡예를 펼친다.
환자는 이를 볼 수 없고, 미소나 고갯짓, 세심한 배려만을 느끼지만
사실 무대 뒤에서는 복잡한 두뇌활동이 벌어진다.”
“의사는 힘들 때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들을 나열한다.
음악, 운동, 독서(한번에 소설 한 권과 비소설 한 권을 꼭 들고 다님), 자연, 동물, 가족.”
“요점은 들어주고 달래주는 행위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친절한 행위인 것이다. 친절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문제를 직시하고 왜 그 환자를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이 드는지 캐물은 다음,
그 감정을 재정의하고 반응을 조절하기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했다.”
“확실한 게 있다면 의사가 엿본 열아홉 가지 이야기가 저마다 아주 특별한 인생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골짜기 의사는 진료 중에 언제나 환자와 접촉하려고 애쓴다.
의사는 이 행동이 다리를 놓아준다고 말한다.
접촉은 중요하다.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2020년에 세상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환자들은 종종 말 그대로 선을 넘었다.
의사는 좀 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대개의 환자는 의사의 자유시간과 개인 공간을 존중해 준다.“
“더 마음 아린 공백도 있다.
떨어져 있어야 하는 가족,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견뎌내야 하는 이별.
그런데 알고 보면 나무와 하늘에도 이를 위한 언어가 있다.“
“가슴이 아파서 죽을 수도 있나요? 그럴 수 있다고 들었어요.
슬픔은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의사는 대답한다.
그리고 여자의 이름을 불러준다.“
“아버지의 철학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는데 있으며 다른 인간에게 온기와 친절을 베푸는데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이기는 해도 쓰러진 나무가 스스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사람에게도 구원의 순간이 찾아온다.“
“반복적인 일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덕을 수행하는 일이다.
알기보다는 되는 일이며 그 생명력은 신뢰에 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가 사적이든 직업적이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미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이 연구의 핵심은 의사와 환자가 어떻게 서로 원인과 결과,
그것도 유익한 결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복잡한 흐름도이다.
이 흐름도는 무엇보다 오랜 세월에 거쳐 맺은 관계가
신뢰의 핵심적인 바탕이 되는 친밀감, 공감, 이해, 상호의 책임감을 키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일의 본질이 되는 인류애가 존 사샬의 시대에는 당연시되었지만
이제는 전처럼 영원한 가치라고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골짜기를 위해 반평생을 바친 그 문제적이고 뛰어난 의사가 무덤 너머에서
나를 그의 후계자, 행운의 여자에게 소개해 주었을 지 모른다.“
Polly Morland는 영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이다. 15년 동안 BBC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감독했다. 이 책은 <<타임스>>와 <<뉴스테이츠먼>> 202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22년 베이리 기포드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