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어쩌죠 ㅠㅠ
ㅡ 아빠, 우리 반 ▲▲이, 훌라후프를 3분이나 돌려요.
ㅡ 우와, ▲▲이 대단하네. 엄청 잘하네.
ㅡ 그럼 나는? 나는 잘 못해요? 나는 왜 훌라후프 못해요?! 으아아아앙~
우리 아들만 아니면 한 대 쥐어박았을 거다. 아닌가. 아들이라 쥐어박았어야 했나.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일이 너를 비난하는 일은 아니라고. 다정하고도 단호히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비교와 경쟁의 굴레에 갇힌 아이에겐 나의 언어도 맥락도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 이내 말문이 막혀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주입식 교육으로 아들이 몸서리칠 때까지 말하고 또 말할 것이다. 어른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부디 상대방의 말 너머에 숨은 뜻을 짐작하려 애쓰지 말라고.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받아들이라고. 설령 나중에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말이다.
내가 제일(감히 제일이라고 붙여도 된다. 진심이다) 싫어하는 화법은 바로 이런 식이다.
ㅡ 너 오늘 옷 잘 입었다
ㅡ 그럼 어제는 별로였어?
ㅡ OO대리 PPT 만든 거 봤어? 엄청 잘하던데?
ㅡ 과장님, 제 PPT는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ㅡ 닝닝 어때? 예쁘지 않아?
ㅡ 어, 요즘 괜찮은 것 같아
ㅡ 그럼 닝닝이랑 사귀어
ㅡ 아이, 걔가 나랑 왜 사귀어
ㅡ 그럼 너랑 사귀는 나는 그정도라는 거야?
ㅡ 아니, 자기가 제일 예쁘지
(요건 좀 다른 케이스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사람하고 5분만 얘기해 보면 다들 어떠신지. 내가 분명 A라고 말한 것에 대해 a나 A', 심지어는 B로 이해하고 쏘아붙이는 식의 화법. 이렇게 저의를 넘겨짚어 전의에 불타오르는 이들을 볼 때면 너무 지치면서도 안쓰럽다. 물론, 실제로 말보다도 넘치는 의도를 담아 건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말 너머의 의도를 지레짐작하고 긁히는 사람들, 의도가 불투명한 말로 듣는 이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까지 모두 이해하고 살기엔 나의 에너지가 무한히 샘솟지 않는다. 쉽게 말해 너무 기빨린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 중 한 부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특별한 왕도는 없다. 끊임없이 상대방의 기분과 처지, 상황을 헤아리고 그에 특별히 어긋남이 없도록 말하는 사람. 근데 어쩌면 이건 조금 낮은 레벨의 커뮤니케이션일지도 모른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담백하면서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보다 때때로 과장된 말투로 빈말을 주고받기도 해야 한다. 상대방의 기분만을 배려한다면 싫은 소리는 굳이 피하게 되고, 부정적인 피드백은 아끼게 된다. 내 말 너머에 있는 의도치 않았던 의도는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도 의식하기 마련이다. 나는 요즘 빈말을 하느니 차라리 말을 아끼는 편을 택했지만,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아끼는 건 진정으로 아끼는 것이 아닐진대.
몇 년 전부터 이 영상을 피드백의 표본으로 삼으며, 견지해야 할 태도로 여기고 있다.
리정, 춤을 정말 잘 춘다. 춤도 춤이거니와 내가 리정에게 가장 놀랐던 점은 본인의 지위와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듣는 사람을 배려하면서도 사족 없이, 담백하고 정확하게 피드백을 한다는 점이다.
ㅡ 전반적으로 동작이 다른 애들에 비해 작고, 약해
ㅡ 너는 몸을 많이 아껴. 땀도 안 흘릴 것 같은 느낌?
ㅡ 그런데 아낄 때가 아니잖아
ㅡ 근데 넌 안 해
ㅡ 이런 타점이 하나하나가 다 달라
이런 피드백에도 상처를 입는다면 그 사람과는 '우쭈쭈~ 그랬쪄염' 같은 말 이외의 그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으리라. 내가 이런 피드백을 받는다면 가장 먼저 고마운 마음이 들 것 같다. 감정은 1도 섞여 들어가지 않은,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문장들. 막연하거나 애매한 구석 하나 없는 정확한 단어들로만 이뤄진 피드백. 더욱 놀라운 것은 리정의 말에 멸시나 조롱, 힐난 같은 저의가 전혀 없다(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정확함만한 배려는 없다.
물론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담백하고 정확한 얘기들을 일부러 나서서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오늘의 글은 부디, 그저 많은 사람들이 행간에 담긴 의미를 찾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저의로 쓴 글이다. 어떨 때는 나조차도 가끔, 그 행간을 읽어주기 바라며 뻔하고 빤한 저의를 담아 말을 건네는 이에게 전의를 불태우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거지?!
사실 그 저의 자체가 곧 전의에 다름 아닐 테니. 불순하고도 무수한 저의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직독직해뿐. 알아서 알아듣는 게 너무 어렵다면 더러는 모르는 척도 좀 하고. 정작 나중에 딴소리해도
어? 그게 그런 뜻이었어요? 저는 괜찮다고 말씀하셔서 진짜 괜찮으신 줄;;
하며 물색없는 척, 맥여보기도 하고 말이다. 눈치가 빠르면 눈치를 보느라 힘들다. 눈치 없는 사람이 왜 부럽기도 하지 않나. 눈치 없다고 꼽을 준대도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