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누가 위인인가
프로불편러
에는 어떠한 뉘앙스가 담겨있을까. 누군가 프로불편러라는 말이야말로 가치중립적이라고 한다면, 왠지 그 사람이 불편해질 것만 같다.
단언컨대 프로불편러는 존재한다. 그것도 도처에. 그런데 그 프로불편러가 나라면? 누군가 나에게 프로불편러라고 하면 내 심기는 백퍼 불편해질 게 뻔하다. 이런 맥락 탓인지, 상당히 위험한 단어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다양한 의견은 '프로불편러'라는 낙인으로 묵살될지도 모르기에.
이렇게 단순한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반대의 입장에서도 얘기를 해보고 싶다. 내 자유나 재산권을 침해하려는 사람이 있다. 불편한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도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관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에휴, 저거 또 호구 잡혔네
프로불편러와 호구 중 하나가 되는 것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호구가 될 것만 같다.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서 그런지 싫은 소리를 잘 못하겠는 성정 탓이다. 상대적으로 호구가 되면, 호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욕하는 정서가 형성되면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프로불편러들이 정말 불편하다. 남들이 다 괜찮다고만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리 불편하기에 저렇게 티를 내고,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단 말인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자기 하나만 불편하면 될 것을, 자기 하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들을 다 불편하게 만드는 비합리와 비효율을 견딜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프로불편러가 바꿔 왔다. 프로불편러는 혁신가, 선구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한 마디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부정선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뭐 이런 거창한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용기 있는 프로불편러가 여기저기서 등장하면서 좀 더 편하게 살게 된 것도 맞다. 프로불편러가 보편화되면서 말 한마디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불편함에 당위가 더해지면 설득력을 얻는다. 불편함이 당위를 얻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가장 흔히 떠오르는 것은 절대다수가 같은 불편함을 겪는 상황. 그다음에 떠오르는 것이 실력이다. 실력 있는 사람이 불편함을 호소하면 누구든 귀를 기울이게 돼 있다.
저 사람이 괜히 저러는 게 아닐 텐데
여기서 다시 호구를 떠올려 본다. 호구 역시 '호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잘하는 사람이 참아야 관용이 되는 것이다.
때마침 월등한 실력을 가진 누군가가 불편함을 호소했다. 호구라 놀림받을까 실력을 키웠고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순간, 불편하다고 고했다. '시기가 잘못됐네,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족하네', 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해도 도통 외면할 수가 없다. 이토록 파괴적인 설득력은 처음 보거든. 이미 많은 이들이 같은 불편함을 겪었음에도 모종의 이유로 말하지 못했던 바다. 부디 큰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 낭중지추에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