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댄스 Aug 27. 2024

무수의 수

수(手).


10년 넘게 월급쟁이의 생활을 하다 보니 '수'에 꽂히게 됐다. 회사생활에선 하루에도 무수한 수가 오간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미리 수를 써두는 경우가 가장 다반사고, 내 수에 대한 상대방의 수를 예측해 한 번 더 수를 부리는 경우까지 가면 고수, 내지는 상수라 부를 수 있다.


가장 재밌는 광경은 바로 '하수'들이 어설픈 수를 쓰는 장면이다. 신입사원이나 연차가 낮은 사람이 어설프게 부리는 수가 대표적이다. 이건 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애석하게도 상대방은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다수는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 그걸 속아 넘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니 정말 같잖다. 하지만 너무 비웃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그 얕은수를 알아챌 수 있었던 건 그 시절에 다 한 번씩 부려봤기 때문이리라.


수는 타고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수를 쓰는 상상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삼국지」다. 제갈량과 순욱, 주유, 방통, 사마의 등 책략의 대가들이 쓰는 수싸움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중 으뜸은 제갈량. 수 마스터, 제갈량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도망치는 조조를 상대하는 부분이다. 


촉·오 연합군에 패퇴하고 도망치는 길에서도 자존심 센 조조는 제갈량의 아둔함을 비웃는다. 


이곳에 매복이 있다면 나는 틀림없이 죽은 목숨일 텐데 말야, 하하하하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마냥, 제갈량이 보낸 매복군이 조조를 향해 달려든다. 조자룡, 장비의 매복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주제에 마지막까지 제갈량을 비웃는다. 그리고 만난 끝판왕은 바로 관우. 


사실 제갈량은 관우를 매복으로 보내지 않으려 했다. 관우는 조조를 죽일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에 자신을 왜 보내지 않는지 따져 물었다. 제갈량은 이내, 관우가 예전에 조조로부터 은혜를 입었기에 살려 보낼 것이라며 당신을 보내지 않겠다고 일갈한다. 


결국, 조조를 살려 보내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관우는 매복지로 향했지만 제갈량의 예상대로 조조를 살려 보내고 만다. 


제갈량은 후일, 유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때 조조의 명이 다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관우에게 마음의 빚을 청산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속으로는 관우보다 자신이 2인자로서 우위에 있음을 각인시키고픈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글쎄, 이 정도는 돼야 수를 쓴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연차나 신입사원이 아닌 이들에게서도 얕은수를 쓰다 제 꾀에 넘어간 경우를 종종 본다. 엄청 머리를 굴려 만들어낸 수일 텐데, 대부분 망한다. 수가 잘 안 통하는 이유는 억지스러움에 있는 것 같다. 수를 쓰기 위해 만들어낸 상황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다음 이유는 오만함이다. 상대방이 나의 생각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착각, 거기서 비롯한 오만함이야말로 당사자를 우스운 꼴로 만드는 본질적인 이유다.


고수는 타고나야 하는 것, 그리고 앞서 밝힌 이유로 인해 나는 별다른 수를 쓰지 않는다. 어설픈 수를 쓰다 외통수에 갇히는 경우를 하도 보다 보니 이 사람이 '이런 수를 쓰는구나' 정도는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는 온갖 술수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거나, 피해가 최소화될 정도로만 준비를 한다. 기저에는 


나 같은 하수가 알 정도면, 웬만한 이들 눈에는 뻔하고 빤한 수겠거니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른 이들에 의해 탄로날 게 뻔하기에. 


타고남의 영역에 있는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없기에, 무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목표다. 경험이 말해준다. 웬만한 수를 쓰는 것보다 그 어떤 수조차 부리지 않을 때, 그것이 고수는 못돼도 중수(中手) 정도는 보장해 준다고.

작가의 이전글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을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