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과 틀린 것은 엄연히 다르지만, 저건 대놓고 틀렸잖아!
오래전 같은 팀 후배가 맞춤법을 잘 알고 있다며 내게 '세종대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순신 역할을 제안받은 최민식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에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한편으로 기분이 무척 좋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정색하고 말했어야 했는데...... 싶은 후회가 남는다.
당연히 위대한 그분을 별명으로도 가지면 안 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방대한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우쭐하는 순간, 늘 오답을 고르기 때문이다. 더 나은 표현과 그렇지 못한 표현을 가려 쓰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틀린 표현을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은 맞춤법 얘기를 하고 싶다.
PD 지망을 위해 준비했던 <한국어 능력시험> 1급 자격에 취해 저질러 버린 낯 뜨거운 일화를 소개한다.
후배: 선배, 메일 보니까 '염두해 주시길 바란다고 썼던데, '염두에 둬' 주시길 바랍니다 아니에요?"
나: 아니야, 염두하다라는 말도 맞고 염두에 두다는 말도 맞아. 나 이래 봬도 한국어 능력시험 1급이거든, 너도 알지?
후배: 그런가......
아직도 그 후배를 만나고 있지만, 차마 이 얘기는 하지 못했다.
그때 네 말이 맞아. 늘 염두에 두고 있을게
이 일 이후로, 내겐 맞춤법 강박증이 생겨버렸다. 상대방의 맞춤법을 지적하던 버릇도 고쳤다. 딴에는 배려한다고, ‘어의없다’고 하면 ‘왜 그렇게 어이없었는데?’라고 반문하던 버릇도 없앴다. 언제든 나도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로 아리송한 상황이 생기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 거창한 팁은 아니지만 나름 유용할 것이다. (공적인 문서에서, 그리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카톡할 때 반드시 맞춤법을 꼼꼼히 챙길 것을 강추한다.)
① 네O버 검색
- '헷갈리는 두 표현 + 맞춤법 검색 ex) 안 않 맞춤법
- '헷갈리는 표현 + 띄어쓰기' 검색 ex) 수밖에 띄어쓰기
② 국립국어원 <한국어 어문 규범> 검색 (https://kornorms.korean.go.kr)
- ①과 동일, 네O버에서 만족스런 답변을 얻지 못했을 경우 활용
③ 브런치 활용
- 텍스트가 길 경우, 브런치 글쓰기를 열고 전체 텍스트를 옮겨 붙인 후 왼쪽 상단을 보면 '맞춤법 검사' 버튼이 있다.(웹페이지 기준, 앱에서는 저장 단계에서 '맞춤법 검사' 옵션을 선택하면 된다.)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맞춤법이 훌륭하다고 좋은 글이 될 수는 없지만, 좋은 글은 맞춤법을 잘 지켜 쓰기 마련이다. 그래서 맞춤법은 가급적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고 맞춤법에 어긋난 글이 무조건 수준이 낮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런 점에서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이라는 책에서 건네는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장면'과 '짜장면'을 둘러싼 100년에 걸친 싸움은 현실의 요구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짜장면'이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귀로는 '짜장면'으로 들리더라도 언어학적 지식을 총동원하고,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을 최대한 일관되게 적용하면 '자장면'이 맞습니다. (중략) 그러나 '짜장면'은 '국어쟁이'들이 언어학적 지식과 원칙을 포기하고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현실의 요구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바꿔치기하면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둘 다 인정하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중략)
말이 바뀌니 규범도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그 속도와 강도의 차이가 있으니 다양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P.303~305 中 발췌, 한성우 저)
우리가 하는 모든 언어생활의 기반은 이해와 공감에 있다. 맞춤법은 늘 정답이 있지만, 때로는 정답이 아닌 해답도 필요하다. 브런치 글 역시 발행 전에 반드시 맞춤법 검사를 돌려보는데, 보통 A4 1장 ~1장 반 분량의 글을 쓰면 수정사항이 5개 이하로 나오면 선방한 거(라고 스스로 여긴)다. 다만 굳이 고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간혹 브런치 같은 공간에서 '땡긴다, '우동사리' 이런 표현이 맞춤법에 어긋났다며 붉게 변해도, 무시하고 그냥 둔다. 맞춤법의 정답은 '당긴다'와 '가락국수사리'
그런데 오늘 내가 간절하게 닭갈비를 먹고 싶을 때,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면
오늘 닭갈비 땡긴다, 우동사리 2개 넣어서
vs.
오늘 닭갈비 당긴다, 가락국수사리 2개 넣어서
어떻게 말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공감될까. 후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친해지기 어려울 것만 같다. 언어는 언제나 변하고, 소통에 지장이 없다면 맞춤법이 좀 틀려도 상관없다. 정말 눈에 거슬린다면 딱 세 번만 참아보라. 어차피 욕먹는 건 그 사람인 것을. 소중한 사람이 실수를 반복한다면, 네 번째쯤 얘기해 주면 되지 않을까. 그 정도라면 지적질이라도 큰 무리없이 넘어갈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