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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Aug 29. 2024

청춘의 이데아*

신해철, 무한궤도, 그리고 <그대에게>

내가 신해철의 팬이라 자처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내가 아는 그는 솔로와 밴드활동으로 남긴 몇 노래들, 고스트스테이션(혹은 고스트네이션)의 마왕 DJ, <100분 토론>의 패널로 종종 참여했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누군가 ‘청춘'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신해철의 <그대에게>라고 답할 것이다.


정확한 답변은 바로 이 영상이다. 산울림의 <청춘>을 지나가 버린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라 감상했다면, 이 노래, 그리고 이 영상은 우리 생에 다시없을 ‘청춘'을 캡처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참가번호 16번, 서울대표, 그룹사운드 <무한궤도>


노래하는 부분도 압권이지만 앞부분의 인터뷰부터 꼭 보길 권하고 싶다.


김은주 아나운서(이하 김): 그룹 무한궤도, 이번 참가 팀 중 가장 뒤에 하고 있는데요. 기다리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신해철(이하 신): (생략) 빨리 집에 가서 엄마얼굴 보고 싶다는 생각 했었어요.

김: 여기 있는 팀 멤버들은 모두 다 유치원서부터 대학까지 동창관계로 얽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신: 불행히도 유치원서부터 대학교까지 쭉 같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얽히고설키고 그래가지고……

김: 우리 멤버들이 다들 미남이신데요. 여자친구는 있으세요?

신: 절대로 없지요.

김: 거짓말이라고 봐야겠죠?


달변가로 알려진 신해철이 긴장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능숙해 보이려 하는 인터뷰가 무척 재밌다.(긴장은 아나운서님이 더한 것 같기도 ㅋㅋ)


이어서 들리는 전주는 실로 역사적이다.


빰빰빰 빰빰빰 빰 빰,빰빰빰빰 빠밤~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이 장면에서 다들 들썩이면서 노래를 시작도 하기 전인데 이 노래가 대상이라고 흥분하는 장면이 나온다. 찾아보니 실제 반응이 그랬다고 한다. 무엇보다 마지막 16번째 팀이었다는 점, 앞 순서 참가자들의 출전 장르가 대부분 '발라드'였다는 점에서 이 신디사이저 전주의 등장은 치밀하고도 독창적이며 세련됐다. 가히 한국 가요사에 남을만한 센세이셔널한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신해철의 보컬이다. 이 보컬에는 신해철 특유의 매력적인 중저음과 카리스마 넘치는 샤우팅이…… 무르익기 전의 풋풋함과 어색함이 묻어있다. 앞선 인터뷰에서는 긴장감과 민망함을 감추고자 능청스러운 연기를 했다면, 노래를 시작한 신해철은 자신감 있으면서도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를 내지른다. (아마 그가 말초적으로 두려워한 것은 삑사리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 모습이야말로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무척 긴장되지만 참고 노래하는 그 마음,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이내 드러나고야 마는 떨림, 세련된 무대매너를 선보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돼 나온 이상한(?) 제스처, 그럼에도 어설픈 기교에 기대지 않고 핏대를 세워 질러 부르는 무모함 또는 열정. 청춘의 모든 면모를 이 무대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청춘에게 청춘이 무어냐고 물으면 쉽게 답하지 못하겠지만 그 모습 그대로 나오는 청춘 자체의 아름다움이 이 무대에 있다.


도입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원곡보다 3도 위의 음가로 부르는 것은 그가 엄청 긴장을 했거나,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당시의 음향사운드가 저음을 받쳐주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었으리라. 그곳에서마저도 나는 임기응변이라는 모습을 띤 청춘의 면모를 보았다.


모든 연주를 마치고, 신디사이저 단선율에 허스키한 가성을 얹는다. 고도의 긴장 속에서 이미 성대를 다 써버려 온전치 않은 목소리지만 읊조리면서도 울부짖는다. 마무리는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 간결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 그리고 짧은 미소가 전부다. 이 모든 것들이 청춘을 그릴 수 있다면 단 한 컷으로 남길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의 청춘은 이따금 그에게 빚을 졌다. 신해철은 그 후로 '마왕'이라 불리며, 수많은 청춘들을 위로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때로는 투사같이 부당함에 맞섰고, 때로는 츤데레 오빠같이 고민에 앞섰다.


팬은 아니지만 가끔 그의 목소리와 얼굴이 그립다. 그를 만날 수 있는 영상은 많지만, 그래도 나는 이 영상이 제일 좋다. 그와 같은 청춘을 누려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청춘 한가운데 있는 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청춘도 이처럼, 이토록 아름다웠을까.


아직도 길을 잃어버렸는지, 무한히 길을 찾아 떠나는 우리도 그대도,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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