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다.
옛날엔 결혼하면 정말 아내들이 시집에 들어갔으니 저 말을 했겠지. 남자도 장가(家)를 간다고는 하지만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남자가 가야 하는 장가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 이벤트에 가까운 데 반해, 여자가 가야 하는 시집은 삶, 생활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시'와 '장'의 밸런스는 이때부터 엉망진창이었던 셈이다.
'시-'의 의미와 맥락이 예전엔 그저 절대악으로 보든 절대규범으로 여기든 '절대적'인 가치였다면, 요즘 시대와 세대의 '시-'는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특히 '시어머니'가 그렇다. 물론 대체로 안 좋은 쪽이지만 기혼의 남자로서 '시-'의 행간을 해석하는 것은 여간 단순한 일이 아니다.
결혼 전의 내겐 시어머니를 생각할 일도, 이유도 많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결혼할 사람이 우리 엄마한테 뭐라고 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조짐이라도 보이면 결혼 엎는다
에 가까운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사회초년생 때 만난 여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던 중, 일이 늦게 끝난 엄마를 모시러 간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효자네
라고 했다.
이걸 들려줄 방법이 없어 몹시 안타까운데, 그 톤과 억양이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맥락을 풀어보자면, '그렇게까지 하다니 너 정말 효자구나, 근데 너랑 결혼하기는 힘들겠는걸?'이랄까.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그녀와는 '효자네'와 비슷한 결의 이유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때도, 지금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결혼했다.
신혼 시절, 시댁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어김없이 했던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엄마를 욕보이면 결혼을 엎겠다던 패기 가득한 20대의 효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도저도 아닌, 아내의 편도 엄마의 편도 아닌, 애매모호한 스탠스에서 애매모호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말해도 아마 마음은 엄마에게 기울었던 적이 많았으리라.
30년 넘게 살아봐서 알아, 절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냐
말은 의도보다 현상이 앞선다. 그렇게 말한 의도는 설명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아니, 설명한다고 해도 해명이 아닌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아내는 이미 상처를 받았고, 말한 당사자는 정작 그것이 상처였는지 알지 못한다. 아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도, 당사자가 별 뜻 없이 말했다는 것도 모두 아는 나는 그저 가슴만 칠 뿐이다.
결혼 전, 같이 살던 엄마는 투명한 사람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 말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서운한 것이 있으면 티가 났다. 개중 더러는 티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는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말수가 줄었다기보다 말을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나만 알 수 있다.
종편에서 흔한 <동치미> 류의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이 봤겠나. <동치미>를 보면 못된 시어머니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몇몇 중견 연예인들이 나오고, 거기에 속시원히 할 말 하는 며느리 대표 연예인들이 나와 시어머니들의 어떤 행동이 잘못됐는지, 어떤 생각이 못마땅한지 털어놓는다. 며느리도 해봤던 요즘의 시어머니들은 그걸 보고 나름의 선을 정한다. 그것이 진심인지, 욕먹기 싫어서인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의 시어머니들은 아들집에 연락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함부로 가지 않는다고들 한다.
엄마도 그랬겠지. 그러다 무심결에 나온 말들에 가시가 담겼다. 나는 그것이 물색없음의 결과라 확신했지만, 아내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아내도 앞에서는 참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모든 이야기를 내가 듣게 된다.
나는 점점 비겁해지고 말았다. 진심으로 아내의 생각에 동조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 엄마가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아들이자 남편이 됐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말은 의도보다 현상이 앞서는 것이니. 엄마에 대한 죄책감도 옅어져만 간다. 나만 그러고 사는 건가.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그러고 산단다. 효도는 셀프, 다들 그렇게 불효자가 된다.
결혼하고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서야 비로소, 엄마를 만날 때면 최선을 다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말은 의도보다 현상이 앞선다. 마음이야 어찌 됐든 앞에서만 잘하면 그만이다. 정말 간절히 바란다. 저렇게 잘하려고 하는데, 우리 엄마도 따뜻한 말한마디 좀 더 자주 해주면 참 좋겠다고.
마침 아들이 태어났다. 결혼이야 아들의 뜻에 달려 있지만 별일 없으면, 우리집은 시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아들이 결혼한다면 돈만 주고 인연을 끊자고. 하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천륜이 그렇게 되나
우리 엄마도 그런 생각을 하겠지? 말로만 엄마 편들고, 실제로는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도 자주 까먹는 나는 효자인가, 불효자인가. 도통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