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 주세요. 기 빨리그등요~
직장 동료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싶지 않은 내가 이상한 건가?
직장에서든 학교서든 내가 원해서 고르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지낼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같다. 가보니 그 사람들이 있어서 사귀는 거다. 그런데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학교를 떠나 오래오래 만나도 좋은데, 왜 직장 동료들을 회사 밖에서 따로 만나기는 싫은 걸까. (나만 그런 건가)
개인적으로 식겁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회사 동료들과 퇴근 후 매일 술자리를 가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물론, 주말에도 같이 여행을 갔더라는 것이었다. 대부분 본의와는 상관없는 사회생활의 굴레에서 (자발적 선택을 빙자한) 반강제적 성격을 띠고 있겠지만, 진심으로 회사사람과 평일 저녁과 주말을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놀한 적이 있다.
물론, 내 맘보다 더 내 맘 같은 소울메이트를 회사에서 만났다면 딱히 반박할 마음은 없다. 그렇다한들 그런 경험이 정말 진귀하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회사 동료와 거리를 두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회사 동료는 직·간접적으로 일로 얽히기 마련. 늘 행복한 상황만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일을 맡아 상대방이 소외되는 상황, 내가 일을 넘겨 상대방이 짊어지는 상황, 네 실수를 나만 아는 상황...... 끝도 없이 업무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친한 동료라면 감정을 배제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 안팎에서 너무 밀접한 관계에 이르면, 업무적으로 냉정하게 처리해야 할 상황에서 감정 소모가 필요 이상으로 들기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아, 그래도 이 정도는 알아서 커버해 주겠지?
라는 마음도 스멀스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애초에 기대가 없었으면 될 것을, 괜한 기대는 청룡열차처럼 스스로를 실망의 바닥으로 메다꽂아버린다. 업무적으로 아는 사이였다면 그런가보다 싶은 것도 괜히 서운해지기 일쑤다.
핀트가 벗어난 얘기일 수도 있지만, 회사 동료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 피곤하다. 서두에 밝혔듯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 모두 내가 원해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 친구는 마음 맞는 친구들만 골라서 사귀면 됐다. 근데 회사 동료는 마음이 맞지 않아도 일로 엮이면 친한 척도 하고 신경도 써야 한다. 그것도 힘든데,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데, 굳이 따로 만나서 사적인 친분까지? 편한 이야기는 가족과, 친구와 해도 충분하다.
업무 외적으로 평판 관리에 힘쓰다 보면 정작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 전력을 다하기 어렵다. 몇몇 선배님들은 이런 내게 야망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정말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떻게 하나. 물론 입에 발린 말 못 하는 거 아니고, 낄끼빠빠 역시 시전하고 있다. 내가 싫다고 굳이 상대방의 기분을 흐트러뜨리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그 이상의 관계(?)를 요구한다면 내겐 무척 벅찬 일일 것이다.
1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한 번 더 강조해 봤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이가 있을까. 원치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는 불편한 이야기도 해야 하고, 대립각을 세워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이런 경우를 두고, '싸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싸움에는 필연적으로 감정이 실리게 된다. 그래서 업무상 대립 혹은 갈등을 싸운다고 얘기할 수 "없어야 한다". 각자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 입장을 전하고, 때로는 논리로, 때로는 권위로 결정되는 사항에 두말 않고 따르면 된다.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솔직히 안 좋은 이야기를 건넨 카운터파트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얘기하긴 어렵겠지만 그 어떤 감정의 골도 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사람과 또 일을 할 수 있다. 오히려 듣기 싫은 소리일지라도 정확하게 얘기하고, 일이 끝난 후 별도의 자리를 만들거나 간단한 사과의 제스처라도 보내는 쪽이 낫다. 어설픈 친분으로 해야 할 이야기를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최악이다.
이 글을 쓴 계기는 '최고의 복지는 동료'(a.k.a. 최.복.동.)라는 한 마디였다. 물론 최.복.동.이라는 말이 내 글에서 묘사한 것처럼 성격 좋고, 마음 맞는 동료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맥락을 알더라도 십분 동의하기는 어렵다.
친하게 지낼만한 인성 좋은 동료, 보고 배울 점이 있는 동료가 많다는 점은 행운이지, 회사가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복지는 아니다. 당연히 좋은 동료가 많으면 나쁠 이유는 없지만, 그것을 최고의 복지라고 주장한다면 부족한 처우를 커버하려는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 적 있다. 엄밀히 최고의 복지는 높은 연봉......이겠지? (이 표현을 꺼낸 넷플릭스는 물론 연봉이 높은 회사다 ㅋㅋ)
좋은 동료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좋은 동료를 찾기 전에, 내가 남에게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는 게 우선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동료란 자기가 맡은 일을 완벽히 해내서 다른 이에게 책임이나 부담을 넘기지 않는 사람, 그래서 업무적으로 다른 이들의 걱정이나 불편함을 사지 않는 사람이다.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더해, 동료가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쏟을 에너지가 내게는 없다.
하물며, 언제나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직장 동료와 퇴근 후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만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면 더욱 터무니없다. 그것이 좋은 동료라면, 나는 좋은 동료가 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굳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중에 다른 곳에서 일을 하더라도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씩 만나서 각자의 처지를 공유하며 술 한 잔, 커피 한 잔 나누는 사이 정도? 좋은 동료는 아니었을지언정, 좋은 사람으로 기억돼 언제고 연락해도 부담 없는 인연으로 남으면 좋겠다.
다들 잘 알고 있지 않나. 꼰대 상사, 개념없는 후배 뒷담화하기 제일 편한 사람은 이미 퇴사한 동료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