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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Jan 09. 2024

Our season

따뜻한 겨울이 다시 돌아왔어.

햇수로 치면 7년 차입니다.

7년 전 겨울, 꽤 시리도록 아팠던 것 같습니다. 너무 반짝거리고 아름답던 제 우상이 아주 길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9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무심코 한 대답. 그 대답에서 시작해 15년 차 팬이 된 24세 자영업자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땐 아무것도 몰랐지만 너무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TV를 틀었을 때 나오는 저 사람들이 좋았고, 음악 하나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2017년, 17살인 한 학생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다가 교실 한 편에서 누군가 울고, 그 주변의 친구들이 '얘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필 우는 친구가 학생과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던 차라, '설마'라는 생각을 하며 자율학습시간 1교시를 마쳤습니다. 

혹시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네이버 홈에 들어갔을 때에는 학생은 학생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지내 보이는 것 같았던 자신의 우상과 관련된 속보가 뉴스 홈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오보이길 바라며 새로고침을 하고, 또 새로고침을 하며 '제발'이라고 마음속 수천번 외쳤습니다. 아쉽게도 오보가 아닌, 현실이었고 그날은 너무 추웠습니다. 

눈이 녹고, 새하얗던 눈이 녹아 어느새 까맣게 물들고 있던 시기. 녹은 눈이 다시 얼고 도로는 새까만 얼음으로 얼어가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더 이상 학교에서 버티고 있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길로 학교 선배에게 보고를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빠, 나 좀 데리러 와줘요.'

길이 얼어 오는데 시간이 걸리던 아버지를 기다리던 학생은 도로에 우두커니 서서, 까맣게 물든 눈을 쳐다보며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현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도, 우상의 노래를 들어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인스타그램에 종종 안부를 전하던 그였기에 사실일 리 없다 생각했습니다. 기적적으로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믿지 못하고 아파했습니다. 믿지 못해 너무 아팠습니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부고를 인터넷으로 접할 때마다 학생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학생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장례식이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학생의 부모님은 완강했습니다. 

'너 거기 다녀오면 더 상처받을 것 같아. 안돼.'


학생은 부모님의 의견에 반항할 힘조차 없었습니다. 며칠 밥도 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울기만 하다 열병을 앓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슬퍼하는 것뿐. 

여전히 무엇이 답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나의 우상을 어찌 애도해야 했을까요. 그때, 인사를 했다면 지금은 덜 힘들었을까요?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리고 이젠 7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꽤나 많이 아파했습니다.


한 번은, 꿈에 우상이 나왔습니다. 우상과 아는 사이의 제삼자가 나타나, 그 사람을 붙잡고 애원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달라고.' 

꿈에서조차 나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그의 선택에 제가 관여를 하려 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게 들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쩌면 나의 미련 때문에 더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참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선택이던 그의 가장 숭고했던 마지막 선택이었을 텐데 집착을 하는 것도 그를 힘들게 하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책을 하기엔,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응원을 하던 팬이었으니까요.

남들처럼 열심히 응원을 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신곡이 나오면 좋아하는 정도, 멋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영상을 돌려보는 정도가 끝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렇게 그리운 건, 또 미안하고 아픈 건 왜일까요. 저도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는 사실 저의 도피처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를 찾습니다. 그저 그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여행을 떠난 지금도 너무 힘들 땐, 혹은 좋은 일이 있을 땐 그의 인스타그램 DM에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입니다.

'오늘도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잘 지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저의 도피처이자 지지대였습니다. 참 다시 생각해 보면 미안한 일입니다. 나 힘들다고 징징대는 모습만 보이니, 꽤 힘들었겠습니다. 


올해의 겨울은 유독 따뜻합니다. 그의 노래 중, <따뜻한 겨울>을 꽤 많이 좋아합니다. 그의 부고를 듣고 처음 들은 노래였는데 그를 닮은, 또 그의 마음이 녹아있는 노래여서 수백 번은 들었습니다. 올해 그의 기일, 드디어 그를 마주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빈자리를 7년이 지나서야 마주했습니다. 외면하고 회피하다, 이젠 인정하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올해는 유독 따뜻하네요. 이 노래에는, 


고마운 마음이 자꾸 많이 남아서,
내게 해줬던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아서
오늘도 전혀 안 추워
따뜻한 이 겨울엔
내 곁에 항상 너, 항상 너 곁에 있으니.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그 같은 노래네요. 제 마음을 그대로 담기도 해서 한동안 이 노래를 오래 들을 예정입니다. 





항상 고마웠고, 그대가 해준 따뜻한 말들이 귓가에 맴돌아서 이젠 춥지 않아요.

그대가 있어서 나의 삶은 참 따뜻합니다. 그대도 이젠 아파하지 않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잘 지내요 나의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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